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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제동씨의 성주 연설을 유튜브를 통해 봤다. 나름 수험서로나마 헌법을 배웠지만, 김제동씨처럼 말할 수 없다는 데 묘한 열등감도 들었다. 무엇을 위해서 공부를 했을까? 생존을 위한 인문학과 밥벌이를 위한 헌법 공부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지역에서 청년운동을 하며 '안정적인 수입'이라는 프레임을 깨야 청년 문제의 본질이 보인다고 주장하고 다니면서, 여전히 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책과 인연이 닿았다. 가톨릭 신부이자 철학자, 사회활동가인 그레그 맥레오드의 <협동조합으로 지역 개발하라>는 책이었다.

2008년 시작된 세계 공황이 지속되어 2012년 현재에도 세계 전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페인의 실업률은 25%에 육박했지만, 스페인 북부 몬드라곤 계곡의 작은 마을들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몬드라곤 협동조합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세계 대기업들처럼 17개국에서 8만여 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2백억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협동 조합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몬드라곤은 이미 협동조합의 대명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은 아니었다. 우선 협동조합의 개념부터가 생소하였고, 어떻게 이것이 작동되는지 궁극에 고용불안과 적정선의 수입이 보장되어 운영되는 것인지, 대규모 자금 중심의, 지금의 산업체제에서 이러한 조합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지 등등 수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특히 이것이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내가 사는 지역에 어떻게 적용할까를 두고는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협동조합이란 단순한 법적 구조가 아니라 경제 사회 철학이다. 인간이 무엇인지, 지역사회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방법이다. 경영진이든 가게 점원이든 상관없이 단체의 구성원들 간에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최근 갑을오토텍 사건을 기사로 목도하면서, 이 사안을 누군가의 밥벌이에 관한 이해 득실로만 볼 게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이고, 국가라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대한민국에 인권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자문답한 경험이 있다.

저자는 "관찰자들은 흔히 몬드라곤에서 비법을 찾으려고 한다. 기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기법 또는 일부 재정지원체계 측면을 중심으로 그릇된 영역에서 분석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답은 가치 체계라고 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고 말한다.

상업 회사법인의 이상적 모형은 공공재를 위해 효율적이며 생산적인 것이어야 하고 인간적으로 작동되어 근로의 경험이 근로자의 긍정적 발전을 돕게 하는 것이어야 했다. 이러한 변증법적인 긴장과 모순의 결과는 개인과 사회의 진보를 창출하는 긍정적인 종합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11p)

흔히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가족 의식, 주인 의식'의 진짜 개념이 여기에서 나온다. 근로자에게 가족 개념과 주인 개념을 주입해봤자 나는 월급쟁이일 뿐이라는 일종의 선 긋기는 뻔한 결과이다.

그레그 맥레오드 <협동조합으로 지역개발하라 >
 그레그 맥레오드 <협동조합으로 지역개발하라 >
ⓒ 한국협동조합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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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거짓 유대를 진짜처럼 요구한다. 하지만 협동조합에서 '인간적이다'라는 것은 거짓 없는 연대를 말하고, 풀뿌리 네트워크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말이 조금 어려운 것 같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금이 탄탄한 한 사람의 오너가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의 부하 직원을 두는 수직적 관료 모형의 회사가 아닌, 그들 각자가 물질적, 혹은 재능을 근로로 환원함으로써 협동조합은 수평적 네트워크를 가진다. 더 쉽게 말하자면, 그룹 회장이 출근한다고 해서 인사를 90도로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군대식의 계급제가 아니다보니 의사표현 면에서도 좀 더 자유롭다. 근로 환경면에서도 다채로운 이야기가 오고 갈 수 있다. 그러다보면 창의적 아이디어를 좀 더 많이 공유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근로자 개인의 긍정적인 발전과 더불어 개인과 사회에 진보를 창출하는 열매도 맺게 된다는 내용이다.

특정 써클 내부에는 주택 협동조합과 접촉 경험이 있었으며 건설업계에서 일해 본 연장자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결국 그의 헌신적인 토론 참여로 이 그룹의 구성원들은 지역에 돌아가 주택 사업을 개발하겠다는 발상을 하게 되었다. 이 그룹에는 경영학을 공부한 청년과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공부한 적 있는 젊은 건축가도 참여하고 있었다. 이러한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은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180~181p)

주택 건설 뿐이겠는가. 청년 네트워크의 시작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단군 이래 가장 공부를 많이 한 세대가 바로 2030세대이다. 그들의 지식을 돈으로 환원하자면 셀 수 없는 가치일 것이다.

똑같이 공무원 시험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이 친구들의 창의적인 생각과 기성세대들의 경험을 더하는 방식은 어떨까? 새로운 조합의 탄생이자 유통 방향의 모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주어진 자원을 활용하는 인적 네트워크의 탄생이고, 이것에서부터 협동조합은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것은 이윤을 창출하게 만들어 줄 경영에 있다. 협동조합은 전통적인 경영 방식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전통적 경영이란 CEO에 집중이 되어있지만, 협동조합은 분산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책임 소재에 있어 정확한 분별이 어려운 점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협동조합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 무턱대고 도전하라고만 할 수도 없다. 하지만 협동조합의 본질이 참여인 만큼, 다각적인 사람들의 지성이 모이면 해결할 고리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승자독식의 게임에만 머물러 청년들 스스로 가혹한 채찍질을 스스로에게 계속할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연대하여 모색할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렸을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서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2030 세대의 고용불안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말이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청년의 문제는 청년이 대안을 마련해본다는 취지로, 책을 읽고 그 내용이 작은 골조가 되어 집을 지어보려고 합니다. 한사람의 목소리는 허공에 흩어져 헛소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 세 사람이 이구동성한다면 우리 사회는 그만큼의 변화를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청년의 시각으로 정도를 걷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협동조합으로 지역개발하라 - 몬드라곤을 보는 또 다른 시각

그레그 맥레오드 지음, 이인우 옮김, 한국협동조합연구소(2012)


태그:#청년, #김제동, #고용불안, #협동조합, #N포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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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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