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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기 호수의 일출. 어젯밤 일몰의 장관에 이어 아침 해의 감동이 다시 이어진다. ⓒ 노시경
간밤에는 몽골 중부의 어기 호수(Ogü Nuur)를 앞에 두고 곤하게 잠을 잤다. 집에서 머나먼 몽골 호수 앞에서의 잠이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다. 몽골 여행 중에 크게 피곤함을 느끼지는 않았는데 생체시계는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약간 피곤했지만 이대로 침대에 계속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게르 밖으로 나와서 게르의 문을 밖에서 잘 잠그고 호수 쪽으로 걸어갔다.

호수에는 어제 일몰의 감격을 다시 상기시키려는 듯 시뻘건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일어난 서양인 청년 한 명이 선 자세로 움직이지 않은 채 일출 장면을 홀로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앞으로 나가지 않고 그의 뒤에서 태양과 한 인간을 함께 바라보았다. 큰 호수 앞에 사람이 홀로 서 있으니 마치 사람이 물가의 한 점 같이 보인다. 이른 아침이지만 호수에서는 벌써 수많은 말의 무리가 목을 축인 후 호수 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기 호수는 해마다 몽골 국제 낚시대회가 열릴 정도로 낚시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추어진 호수이다. 이 어기 호수에는 민물연어의 일종인 타이멘(Taimen)이 가장 많고, 강꼬치고기, 열목어, 메기, 등목어 등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게르로 돌아온 나는 그래서 아침 식사로 이 호수 주변에서만 먹을 수 있는 물고기 요리를 먹어보기로 했다.

바다가 없는 대륙국가인 몽골에서는 물고기가 흔치 않은 음식이다. 어기 호수와 같이 큰 호수 주변에서나 싱싱한 민물고기를 먹을 수 있을 정도이다. 유목국가여서 가축을 통해 고기를 얼마든지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육지 가축에 비해 크기가 작은 물고기는 음식 취급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몽골의 개들도 몽골의 호수에 많이 살고 있는 물고기에는 관심이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 물고기들을 유일하게 먹이로 생각하는 것은 멀리서 이 호수를 향해 날아오는 새들과 외국에서 온 여행자들뿐이다.

우리나라 '고수레'가 몽골에도?
아침식사 할키. 어기 호수에서 자라는 할키라는 강꼬치고기로 아침 식사를 했다. ⓒ 노시경
나와 아내는 우리 게르에서 언덕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 있는 게르 캠프의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식당 종업원에게 어기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 요리를 주문하고, 물고기 이름이 무엇인지도 물어보았다. 식당 종업원은 친절하게 냅킨 위에 물고기의 이름을 영어로 적어주었다. 내가 주문한 물고기 요리는 어기 호수에서 나오는 물고기인 '할키'로 만든 요리인데, '할키'는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강꼬치고기'라는 물고기이다.

어기 호수의 물고기 할키는 꽤 살이 많이 붙은 몸통을 가지고 있어서 한 끼 식사로는 양이 넉넉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할키 요리는 겉모습은 튀긴 것 같은 모습인데, 그 속살은 마치 찐 것 같이 하얗고 도톰했다. 할키의 육질은 너무나 부드러운데 맛은 무덤덤한 편이다. 몽골에서는 생선 요리법이 발달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기 살은 통통하니 우리나라의 생선구이에 바르는 매콤한 생선양념만 겉에 발라주면 정말 맛이 좋을 것 같다.

식당 밖으로 나오니 하늘 위로 올라온 아침햇살이 호수를 밝게 물들이며 호수를 깨우고 있었다.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몽골 친구가 호수 주변에 어기 호수 자연박물관이 있는데 한번 가보지 않을 거냐고 묻는다. 호수 주변에서 조용히 휴식만을 취하고 있던 터라 나와 아내는 흔쾌히 어기 호수 자연박물관에 가보자고 했다.
몽골의 고수레. 게르 캠프의 젊은 직원들이 우리의 여행길을 기원하는 고수레를 해 주고 있다. ⓒ 노시경
우리가 짐을 꾸린 후 차를 타고 게르 캠프를 떠나려는데 캠프의 젊은 직원들이 나와서 우리들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젊은이들은 우리들 앞에서 한국의 민간신앙인 '고수레'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 젊은이들이 작은 그릇에 말젖을 담아 와서 허공에 뿌리는데 몽골 사람들이 초원에서 음식을 먹을 때 하는 고수레와 같은 행위라고 한다.

"앞으로의 몽골 여행도 좋은 여행 되세요. 차 사고 없이 잘 여행하시고,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만나요."

이들은 길 떠나는 우리들에게 행운이 오고 우리의 몽골 여행길을 잘 지켜달라는 기원을 해주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하는 행위도 아니고 젊은 직원들이 모두 웃으며 진심을 담아 말 젖을 허공에 뿌리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포근해지면서 이 젊은 아가씨들의 인생에도 밝은 날들이 이어지기를 기원해 주었다.

게르 캠프를 나온 우리들은 호수 주변을 삥 돌면서 어기 호수 자연박물관을 찾아갔다. 박물관을 찾아가는 우리의 몽골 친구 기사는 몇 차례나 두리번거리면서 길을 찾고 있었다. 급할 일 없는 나와 아내는 멈춘 차 안에서 호수 주변의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호수 앞에 차를 대고 아침 호수의 햇빛을 받는 사람들이 참으로 편안해 보였다. 몽골에는 바다가 없으니 시원한 호수에서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곳 어기 호수의 가장자리는 수심이 그리 깊지 않고 바닷가와 같이 모래 바닥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여름에는 훌륭한 해수욕장이 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꼭 한번 들러봐야 할 '어기 호수 자연박물관'
어기 호수. 여름 아침의 호숫가에서는 더위를 피해 호수를 찾은 몽골의 캠핑족들을 만날 수 있다. ⓒ 노시경
어기 호수 자연박물관. 작은 박물관이지만 어기 호수의 다양한 새와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다. ⓒ 노시경
박물관 앞에 도착했는데 몽골 친구 기사는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는 잠깐 우리를 기다리게 하고는 박물관 주변을 다시 왔다갔다하면서 사람을 찾는다. 어기 호수 자연박물관 건물 주변이 너무나 한적해서 아내가 이 건물이 박물관이 맞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나의 몽골 친구는 박물관 안팎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무도 없어요? 여기 박물관 문 좀 열어줄 사람 없어요?"

잠시 후 어디선가 잠이 덜 깬 얼굴의 한 박물관 안내원이 숙소로 보이는 곳에서 나왔다. 성격 좋아 보이는 이 박물관 안내원은 세상 급하지 않은 속도로 박물관 문을 열어주었다.

"평일이고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박물관 문을 닫아 두었어요. 호호"

아무튼 다른 입장객은 아무도 없는 자연박물관 안에 우리 부부만 들어왔고 박물관 여직원으로부터 우리는 어기 호수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을 독점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박물관 입구에서 보니 일본국제협력기구인 자이카(JAIKA)에서 이곳 어기 호수에 자연박물관을 지어주고 습지와 철새보호에 노력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진 몽골에서 투자를 늘리기 위한 일본의 노력의 일환이겠지만 어기 호수의 철새와 물고기, 호수를 보존하는 데에 이 박물관은 기여를 하고 있었다. 어기 호수에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은 어기 호수에 도착한 후에도 잘 몰랐었는데, 자연보호 활동이 상세하게 전시된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이 박물관은 꼭 한번 둘러보아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어기 호수 안내원. 어기 호수의 지도와 새들의 사진을 가리키며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 ⓒ 노시경
전시관 안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전시하고 있는 것은 몽골과 아시아 국가들을 잇는 조류의 이동경로이다. 어기 호수에 이토록 새들이 많이 찾아오는 이유는 어기 호수와 주변 습지에 새들의 먹잇감이 되는 물고기들이 풍부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호수를 찾는 새들 중에는 두루미와 같은 각종 희귀 조류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시관 벽면을 가득 메운 새들의 사진 중에는 두루미 사진도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두루미의 이동경로에 한반도가 빽빽하게 표시되어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

광대뼈가 크고 복스럽게 생긴 박물관 여직원이 어기 호수의 새와 물고기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젊은 몽골 아가씨가 몽골어로 설명을 하면 한국어가 유창한 나의 몽골 친구가 세심하게 번역을 해주었다. 박물관 안에 다른 여행자가 없기 때문인지 이 안내원은 전혀 서두르지도 않고 지도를 가리키며 호수의 곳곳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어기 호수 자연박물관 답사는 여유있고 지적인 충만감이 느껴지는 여행의 순간들이었다.

호수 쪽을 보니 호수를 향해 열려 있는 창을 통해 조류를 관찰하는 망원경이 큰 삼발이 위에 서 있다. 망원경은 새들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초록색 보호막으로 싸여 있었다. 박물관 안에서 호수의 많은 조류들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망원경인 것이다. 안내원 아가씨가 우리에게 시범을 보여준 후, 나와 아내는 망원경을 통해 호수 위의 새들을 찾아보았다. 작은 새가 망원경에 잡혀서 안내원에게 물어보았더니 야생오리의 일종인 황오리라고 한다. 이름을 알기 전에는 평범해 보이는 새였지만 이름을 알고 다시 관찰하니 더 정겹게 다가온다.
새 관찰. 안내원의 새 관찰 시범에 이어 나와 아내도 망원경으로 호수의 새들을 관찰하였다. ⓒ 노시경
새 관찰 기록. 호수에 서식하는 새들의 관찰횟수 등 여러 정보들이 기록되어 있다. ⓒ 노시경
새들의 사진 옆에는 박물관에서 오늘 관찰하고 적어놓은 새들의 현황이 세밀하게 적혀 있다. 오늘 새의 출현 빈도, 개체 수, 그리고 새들이 이 호수에서 머물다 간 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는 내가 방금 전에 관찰한 황오리도 예쁜 사진과 함께 관찰일지가 적혀 있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관리를 하는 새들을 보니, 이 새들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에도 잘 관리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몽골 북동부에 사는 큰 백조(Whooper Swan)도 내몽골 지역과 만주를 지나 한반도로 날아가는 경로가 명확히 표시되어 있다. 큰 백조는 우리나라의 충남 지역과 낙동강 유역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 머나먼 길을 비행기도 타지 않고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는 큰 새들의 이동경로는 다시 봐도 경이롭기만 하다.
호수의 새들. 어기 호수의 새들은 더할 나위 없이 여유롭게 호수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 노시경
호수의 물고기들. 민물연어와 강꼬치고기 등 소중한 물고기들이 박제되어 전시돼 있다. ⓒ 노시경
박물관 내부 가장 안쪽의 전시관에는 어기 호수에 서식하고 있는 다양한 어류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 민물연어의 박제는 상상 외로 크다. 내륙의 호수에 이렇게 큰 연어가 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크다. 호수가 크니 큰 호수에 사는 물고기들도 큰 덩치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식사로 먹었던 강꼬치고기도 열목어, 메기, 등목어 등 다양한 물고기들과 함께 전시관 안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초원의 나라 몽골에서 보기 드문 물고기들의 향연을 나는 오늘 이곳 어기 호수 자연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작지만 알찬 이 박물관을 먼저 둘러보고 호수 주변을 여행했으면 더 알찬 여행을 했을 것 같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호수의 새와 물고기에 대한 지식을 알고 호수를 봤더라면 더 아는 만큼 더 많은 것들이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내 머리 속을 따라다녔다.

우리는 다시 차를 몰아 몽골의 초원에 펼쳐진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어기 호수의 물가에는 더위를 피하는 말들이 모여서 시원한 물 속에 다리를 담그고 있었다. 호숫가에서 수많은 염소들을 몰던 목동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든다. 우리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어기 호수를 떠났다. 이 장쾌한 파노라마 같은 어기 호수에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차는 계속 달리고 달려 몽골 초원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어기 호수, #박물관, #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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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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