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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에서 내려다 본 한강 이 맛에 새벽산을 오릅니다 그려 ⓒ 이희동
주중 새벽에 일어나 산을 오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무거운 눈꺼풀과의 싸움이 가장 큰 난관이지만, 매번 같은 산을 오르다보면 느낄 수 있는 매너리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물론 운동을 위해 산을 오르면서 무슨 매너리즘을 느끼느냐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산을 오를 때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날씨와 식생들을 보면서 그 차이점을 느껴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접 산을 올라보시라. 날씨가 좋아 풍경이 기가 막힐 때야 산을 오르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나 자신과의 싸움으로 점철되는 것이 산행이기도 하다.

그럼 이런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각자의 묘수들이 있겠지만, 내가 나름대로 찾은 방법은 등산로를 바꿔가며 산을 오르는 것이다. 정상을 고집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다니는 산을 모두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주요 등산로가 아닌 곳에 위치한 절경들을 만날 수 있으며, 지도상에 없는 오솔길도 걸을 수 있다.

1년 전 암사동으로 이사한 이후 다니는 아차산은 그렇게 새로운 길을 찾아 걷기에 안성맞춤인 산이었다. 비록 그 전에 다녔던 검단산 보다는 높지 않지만 아차산은 용마산, 망우산과 이어져 있어 속속들이 구경할 곳이 많았고, 한강 옆으로 시야가 트여져 있어 내려다보는 풍광이 절경이었으며, 바위가 많아 등산로도 내가 개척할 수 있었다.
아차산 사모바위 대부분의 사모바위와 비슷한 전설을 지녔습니다 ⓒ 이희동
보통 시간이 없을 때는 아차산 생태공원-낙타고개-고구려정-아차산 5, 3보루-아차산 정상(4보루)-긴고랑 계곡-아차산 생태공원 코스를 기본으로 선택하지만, 여유가 있을 때는 앞선 코스에 용마산 정상을 덧붙이거나, 아예 다른 곳에서부터 등산을 시작하기도 한다. 아치울 마을이나 고구려대장간마을, 구리시청 등에서 오르기 시작하면 아차산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곡동 쪽의 용마산 코스도 많지만 집에서 가기 어려운 관계로 늘 제외한다.)

그럼 아차산의 주능선 외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구리 고구려대장간마을에서부터 시작해 아차산 범굴사를 거쳐 정상을 찍은 뒤 명빈묘로 내려가는 코스를 살펴보자.

고구려대장간마을에서 범굴사까지
고구려대장간마을 전경 고구려대장간마을과 워커힐 골프연습장 ⓒ 이희동
구리시에 위치한 고구려대장간마을은 한때 구리시가 명소로 꾸미려고 했던 곳으로서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촬영장으로도 이용됐었다. 구리시는 아차산에 있는 고구려 보루를 이유로 꽤 오랫동안 고구려 마케팅을 해 왔는데 고구려대장간마을은 그 일환으로 지어진 곳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무슨 일인지 관리되지 않는 듯했고, 그 주차장은 나와 같은 등산객의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더 이상 고구려 마케팅이 유효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고구려대장간마을 옆에는 워커힐 호텔의 골프연습장이 큼지막이 자리하고 있었다. 뒤에는 멋있는 아차산이 펼쳐져 있고 앞에는 한강이 유려하게 흐르는 그곳. 그곳에서 골프연습을 하면 더 잘 칠 수 있을까? 부럽다는 생각보다는 씁쓸함이 앞섰다. 워커힐이 이곳 아차산에 들어서게 된 3공화국 당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독점된 조망권은 또 하나의 특권으로 이 사회가 지속되는 한 계속 이어지겠지.

산을 조금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한강이 금세 눈앞으로 시원하게 펼쳐졌다. 이 코스의 백미 중 하나는 바위를 타는 것이었는데 기본 코스의 낙타고개 밑 큰 바위만큼은 아니었지만 작은 기암바위들이 곳곳에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상상을 가능하게끔 만들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바위에 이름 붙이는 놀이를 하면서 꽤 많이 올라갈 수 있을 듯.
두꺼비 바위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 이희동
아차산의 기암괴석 혹자는 강쥐바위라 부르던데.... ⓒ 이희동
다시 능선에서 계곡으로 내려오자 오래돼 보이는 약수터 옆에 건립연대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작은 석탑이 서 있었다. 온달샘석탑이라 불리고 있었는데 안내판은 이 석탑을 근거로 이곳에 작은 사찰이 있었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샘터가 고구려 온달장군과 관련된 전설을 품고 있으니 그 사찰은 고려시대, 흘러간 영광을 위해 만들어진 사찰이었을까?

그러고 보면 아차산에는 그 명성에 비해 유명한 사찰이 없는 편이었다. 물론 오래된 사찰로 영화사와 범굴사가 있고 그 외에 기원정사 등이 있지만, 어느 사찰 하나 아차산을 떠올릴 만큼의 대표성을 가지진 못했다. 서울에 있는 산사들이 대부분 그러한데 이는 조선시대 숭불정책과도 어느 정도 관련을 지닌 듯했다.

다시 계곡에서 능선을 타고 길을 걷다보니 아차산 범굴사(대성암)가 나타났다. 그곳은 과거 의상대사의 수행처로서 사찰 뒤 쌀이 나왔다는 쌀바위가 유명했는데, 1920년대, 1970년대, 1990년대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했다. 워낙에 많은 전설이 켜켜이 쌓여 있었으니 가능한 재건이었겠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한강 풍경만으로도 충분한 듯했다. 어쨌든 산사가 있는 곳은 대개가 명당 아니던가.
아차산 온달샘석탑 우리가 추측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 이희동
아차산 대성암 혹은 범굴사 의상대사가 창설했다는 사찰 ⓒ 이희동
아차산 3층석탑을 지나 정상으로

이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산 입구에서부터 범굴사까지는 쉽게 갈 수 있었지만, 범굴사에서 아차산3층석탑까지 가는 길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표지판도 제대로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잘 안 가는 곳이기에 거기까지 가는 등산로 역시 티가 나지 않았다. 인터넷을 보니 한 번 헤매기 시작하면 1시간도 넘게 걸릴 수 있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는 스마트폰의 지도로 GPS좌표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쉽지 않은 탐색이었다.

길을 못 찾아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 하였을까. 무심코 올려다본 바위 위에 드디어 아차산3층 석탑이 보였다. 역시나 정상까지 가는 등산로에서는 한참이나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많은 석탑들이 그렇듯 그곳에서 바라보는 한강 풍경은 빼어났다. 그러니 굳이 이런 곳에다 석탑을 지으려 했을 것이고, 많은 민초들이 와서 탑을 돌며 소원을 빌었을 테지. 아차산을 좀 안다 이야기하려면 아차산3층석탑은 다녀와야 한다더니 왜 그런지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아차산3층석탑 아차산 좀 다녔다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는 ⓒ 이희동
아차산3층석탑에서부터 아차산정상까지 가는 길은 주능선을 따라 가는 기본 코스와 느낌이 매우 달랐다. 우선 사람이 없는 것도 좋았지만 더 많은 바위를 타야했고, 바위가 많은 만큼 내가 가는 길이 곧 하나의 등산로가 되었다. 바위를 걷되 밑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저 멀리는 하남의 검단산과 남양주의 예봉산, 예빈산이 보이는 풍경.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30분이 지났을까. 고구려4보루 아차산 정상이 나왔다. 멀리 불암산과 수락산이 보였고 긴고랑계곡 건너편으로는 용마산이 늠름하게 서 있었다. 해발 300m도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려다보는 풍광이 매우 수려한 아차산. 그것이 이 이른 시각에도 많은 어르신까지 불러들이는 아차산의 힘이리라.

여느 때와 달리 아차산 생태공원이 아닌 동사골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 않는 코스지만 저 너머 용마산 바위능선을 보는 맛이 꽤 쏠쏠했으며, 그 끝에는 아차산 동사골 내 명빈묘가 자리하고 있었다. 명빈묘의 주인 명빈은 조선 태종의 후궁 중 한 명으로서 역사적으로 출생 연도나 행적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고 했다.
아차산 명빈묘 아차산 동사골에 위치해 있습니다 ⓒ 이희동
군사시설보호구역 무엇을 지키기 위함이었을까요? ⓒ 이희동
그러나 정작 산을 내려오자 눈에 띄는 건 명빈묘가 아니라 동사골 끝자락에 흩어져 있는 군사시설보호지역 표시였다. 왜 이곳에까지 이 표시가 있는 것일까. 군대가 주둔했었을까? 한강변을 따라 무언가를 매설했던 표시일까? 이 땅을 여행을 하다보면 쉽사리 볼 수 있는 분단의 표상들. 이 익숙한 것들이 나중에는 분단의 흔적으로 드물게 남아 보전의 대상이 될 때가 오겠지. 부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아차산을 바라본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따라 길쭉하니 무덤덤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차산. 다음에는 어떤 코스를 올라볼까.
태그:#아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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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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