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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여기 오리있어요 오리."
"어디, 어디? 난 아직 안보여."

지난 17일 오전, 속초 엑스포 공원. 이기영(45)씨가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며 수맥을 찾듯 아들 주변을 조심스럽게 배회한다. 이윽고 '고라파덕'이 화면에 나타나자 능숙한 손길로 수집하는 이씨.

그는 '어떻게 오시게 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생각보다 이게 재미가 있네요"라는 짧은 말만을 남기며 아들의 손에 이끌려 청초호 방면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푹 빠진 게임은 최근 세계적인 화제로 떠오른 '포켓몬 GO'. 지도정보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장소는 강원도 속초시 인근 뿐이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의 뜨거운 반응은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기자가 1박 2일동안 속초에서 체험해본 포켓몬 GO는 종합적으로 무척 잘 짜인 게임이었다. 조작이 쉽고 콘텐츠 자체의 재미도 뛰어났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게임이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면에서 이전의 모바일 게임들은 하지 못했던, 미답의 경지를 개척했다는 점이었다.

기자는 1박 2일동안 총 46종, 170마리 정도의 몬스터를 수집했다. 실제 게임을 플레이한 시간은 총 8시간 정도. 한시간에 20마리정도 잡은 셈이다. 경춘 고속도로를 타고 속초로 향할 때는 미시령 휴게소, 강릉 방면에서 해변을 따라 이동할 때는 양양 인구해수욕장 부근부터 몬스터를 만날 수 있다. 시속 80km정도의 속도라면 움직이는 차 안에서도 잡힌다.

'포켓몬 GO'의 몬스터 수집 화면. 하단의 붉은색 '포켓볼'을 손가락 드래그를 이용해 몬스터에게 던져 잡는 형식이다. 화면에 보이는 몬스터는 '고라파덕'.
 '포켓몬 GO'의 몬스터 수집 화면. 하단의 붉은색 '포켓볼'을 손가락 드래그를 이용해 몬스터에게 던져 잡는 형식이다. 화면에 보이는 몬스터는 '고라파덕'.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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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몬스터 잡고, 다시 걷고...'웰빙' 유도하는 게임 '포켓몬 GO'

이 게임의 일차적인 목적은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를 수집하는 것이다. 수집한 몬스터는 자신의 소유가 되며 몬스터를 강력하게 훈련시키면 이를 이용해 특정 지점에 자신의 아이디가 새겨진 체육관을 지을수 있다(남의 체육관을 뺏는것도 가능하다).

몬스터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게임 내 플레이어가 일정 거리 이상으로 가까이 다가가야만 화면에 나타난다. 게임 내 지도가 실제 현실 지도와 1:1로 연동되기 때문에 게이머는 우선 몬스터를 찾기 위해 스마트폰을 쥐고 최대한 발품을 팔아야만 한다.

발견한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는 '포켓볼'이라는 게임 내 아이템이 필요한데 이건 두 가지 방법으로만 구할 수 있다. 돈을 주고 사거나 '포켓스탑'이라는 게임 내 특정 지점(속초의 경우 버스터미널, 시청, 중앙시장 등)을 방문하는 것이다.

포켓볼이 다 떨어졌는데 돈을 주고 결제하거나 포켓스탑 방문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게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몬스터는 계속 나타나지만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통상 모바일 게임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게임 내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방식을 쓰고 있는데 포켓몬 GO는 이런 게 없다.

포켓볼을 던지지 않고 몬스터를 수집하는 방법이 하나 더 있긴 하다. 몬스터 알을 게임 내 부화기에 넣고 부화기가 요구하는 거리를 이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도 조건이 붙는다. 자동차 등을 이용해 대략 시속 25km가 넘는 속도로 움직이면 그 거리는 부화기에 기록되지 않는다. 결국 공짜로 게임을 하고 싶으면 무조건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17일 오후, 속초 해수욕장 입구의 한 건물 뒷편에 포켓몬 GO 게이머들이 자리를 깔고 게임을 하고 있다. 이 자리는 4개의 포켓스탑이 겹치는 자리라 게이머들 사이에서 '명당'으로 꼽힌다.
 17일 오후, 속초 해수욕장 입구의 한 건물 뒷편에 포켓몬 GO 게이머들이 자리를 깔고 게임을 하고 있다. 이 자리는 4개의 포켓스탑이 겹치는 자리라 게이머들 사이에서 '명당'으로 꼽힌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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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포켓몬 '명당'은 해수욕장과 엑스포 공원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게임을 이해한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포켓스탑을 따라 순례하듯 움직인다. 게임에 돈을 안 쓰려면 포켓스탑에서 포켓볼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속초에서 포켓몬을 잡고 있는 게이머들의 동영상이 공개됐을 때 '좀비 같다'는 평이 나왔었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이머들은 포켓볼을 충전하기 위해 다음 포켓스탑을 향해 움직이다가 몬스터가 나타나면 잡기 위해 멈춰 선다. 그리고 몬스터를 잡으면 다시 포켓스탑을 향해 움직이는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포켓스탑이 한 지역에 몇 개씩 뭉쳐있는 경우도 있다. 게이머들은 이를 '명당'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곳은 적게 걸어도 포켓볼 충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 속초의 경우 엑스포 공원에 포켓스탑 3개짜리 명당이, 속초 해수욕장에 포켓스탑 4개짜리 명당이 있다. 특히 속초 해수욕장의 포켓몬 GO 명당은 해변과 약간 떨어져있는데 그렇다 보니 바닷물이 들어오는 해수욕장 모래사장보다 이곳에 사람이 붐비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게임이 화제가 되자 일부 언론에서는 좀비처럼 계속 화면을 주시하다가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게임이 위험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게임을 직접 해보면 그게 괜한 오지랖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게임 화면만 켜두면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즉각 진동으로 알림이 오기 때문이다. 게이머가 굳이 안전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계속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있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이 게임이 재미있다는 방증이다.

좀비도 재미있는 표현이지만 기자는 포켓스탑을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주올레의 올레꾼들을 떠올렸다. 가능하다면 제주올레길을 따라 포켓스탑을 설치하고 길의 특성에 따라 그곳에만 등장하는 몬스터를 설정해둔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게임을 위해 속초에 가듯 제주로도 달려갈 것이다.

17일 오전 속초 엑스포 공원에서 포켓몬 GO를 하고있는 게이머들. 비가 오자 우산이나 우비를 쓰고 몬스터를 잡고 있다.
 17일 오전 속초 엑스포 공원에서 포켓몬 GO를 하고있는 게이머들. 비가 오자 우산이나 우비를 쓰고 몬스터를 잡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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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안 사는 '무과금 고객'들도 돈 되게... 새로운 가능성 열어

포켓스탑은 이 게임의 수익모델에서도 상당히 주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이전까지 모바일게임들의 고민은 게임하는데 결제를 하지 않는, 이른바 '무과금고객'들이었다. 만들어놓은 게임이 아무리 다운로드가 많이 돼도 결제하는 게이머가 적으면 장사가 안 됐다. 그러나 포켓몬GO는 다르다. 포켓스탑이 일종의 광고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사도 이 점을 십분 고려한 아이템들을 이미 게임 내에 넣어놨다. 이를테면 '루어모듈'은 포켓스탑을 강화시키는 아이템이다. 이게 꽂힌 포켓스탑은 인근 몬스터들을 유인하는 역할을 한다. 해당 포켓스탑 근처에 있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이 아이템의 혜택을 받는다. 발품을 팔지 않아도 몬스터들을 손쉽게 잡을 수 있으니 게이머들도 미끼를 쫓는 물고기처럼 루어모듈이 꽂힌 포켓스탑 주변을 계속 맴돈다.

소비자의 반복 시청이 중요한 광고를 집행하기엔 최적의 조건인 셈이다. 현실 세계에 광고용 대형 전광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행정적, 금전적 비용이 들어가는데 포켓몬 GO 안에는 그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물리적인 제약에서 자유로운 광고를 넣을 수 있다. 지금까지 게임뿐 아니라 어떤 모바일 서비스도 온라인 공간과 현실 세계를 이렇게 단단하게 연결시키지 못했다.

한 과일주스 업체가 내건 포켓몬 GO 관련 현수막. 속초 어디를 가면 어떤 몬스터가 등장하는지 자체 지도를 만들었다.
 한 과일주스 업체가 내건 포켓몬 GO 관련 현수막. 속초 어디를 가면 어떤 몬스터가 등장하는지 자체 지도를 만들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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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시는 이번에 포켓몬 GO가 화제가 되자 즉각 무료 와이파이 지도를 배포하는 등 발빠른 대응을 보였다. 상인들은 속초에서 잡은 포켓몬을 보여주면 물건을 할인해주는 등 나름 자체적인 마케팅을 시도했고 이런 사례들은 흥밋거리로 SNS 서비스를 통해 활발히 전파됐다. 게임 하나로 도시 이미지 자체가 변하고 있는 셈이다.

기자는 속초가 엑스포를 개최한 전력이 있는 도시라는 걸 이곳에 와 보고 처음 알았다. 속초는 지난 1999년 강원국제관광엑스포가 열렸던 곳이다. 포켓스탑을 찾아 엑스포 광장을 돌아다녔던 포켓몬 GO의 게이머라면 이 사실을 잊기 어렵다.

'한국형 포켓몬 GO'? 시대 뒤떨어진 지도 규제부터 풀어야

취재를 떠나기 전, 속초에 어떤 사람들이 가서 몬스터들을 잡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상당한 경력의 만화 마니아나 얼리어답터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내심 개인적인 기대도 가졌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나본 게이머들은 절반 이상이 이런 선입견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포켓몬스터 만화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포켓몬스터는 처음에 게임으로 만들어졌다가 만화화되면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속초 해수욕장에서 만난 유연지(24)씨는 "포켓몬은 잘 모르는데 친구들이 같이 가자고 해서 겸사겸사 왔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와 대화하던 중 몬스터를 발견하고는 10번이 넘는 시도끝에 몬스터 '미뇽'을 잡는데 성공했다. 중간에 포켓볼이 떨어지자 인근 포켓스탑에 뛰어가 포켓볼을 충전해오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왜 이걸 그렇게 열심히 잡았느냐'고 묻자 "생긴게 너무 귀여워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몬스터 이름이 뭐냐고 묻자 스마트폰 브라우저를 열고 검색하더니 "미뇽이래요"라고 답했다. 원작 콘텐츠를 몰랐던 소비자로 하여금 원작을 학습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게임이라는 얘기다.

기자가 1박 2일동안 잡은 포켓몬 중 귀엽게 생긴 캐릭터들을 모아봤다. 왼쪽이 '미뇽', 가운데가 '이브니', 오른쪽이 '날쌩마'다. 이브니는 포켓몬스터의 주인공 격인 피카츄와 함께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몬스터 중 하나다.
 기자가 1박 2일동안 잡은 포켓몬 중 귀엽게 생긴 캐릭터들을 모아봤다. 왼쪽이 '미뇽', 가운데가 '이브니', 오른쪽이 '날쌩마'다. 이브니는 포켓몬스터의 주인공 격인 피카츄와 함께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몬스터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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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으로 휴가를 온 가족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김정호(59)씨는 아내, 딸 둘과 함께 휴가차 속초를 찾았다. 김씨는 기자에게 "게임을 직접 해본적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딸 유진(22)씨가 금방 잡아온 몬스터를 보여주자 "오. 이번에 처음 잡은거네?"라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속초에서 취재를 하던 중에 '한국형 포켓몬 GO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알파고가 바둑기사 이세돌에게 승리를 거뒀을때도 어김없이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우리에게 없던 성공사례가 나타나면 제대로 된 원인 분석도 하지않고 반사적으로 추종하는 나쁜 버릇이 또 튀어나온 것이다.

포켓몬 GO의 성공은 기술력이 아니라 원작인 '포켓몬스터'라는 콘텐츠가 가진 세부적인 캐릭터 특성과 서사를 게임에 맞게 최적화시키는 감각에서 나온다. 그러나 한국은 감각 이전에 기술적인 여건조차 갖춰져있지 않다. 이런 게임이 개발되는 풍경을 보고 싶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지도 서비스 제한부터 푸는 게 맞다.

장마가 걷히고 8월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9세 아들과 45세 아빠가, 22세 딸과 59세 아빠가 함께 산책하면서 재미있게 할수 있는 게임이 어디 그리 흔한가. 왜 이런 높은 완성도와 가능성을 가진 게임을 한국사람들은 속초에서밖에 즐길 수 없을까. 더 많은 사람들이 올해 휴가에 이런 의문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포켓몬 GO의 게임화면. 플레이어 주변에 있는 동그란 표지판 모양의 설치물이 포켓스탑이다. 이용가능한 포켓스탑은 하늘색, 이미 이용해서 당분간 쓸 수 없는 포켓스탑은 보라색으로 표시된다. 화면 중앙의 3층짜리 설치물은 체육관이다.
 포켓몬 GO의 게임화면. 플레이어 주변에 있는 동그란 표지판 모양의 설치물이 포켓스탑이다. 이용가능한 포켓스탑은 하늘색, 이미 이용해서 당분간 쓸 수 없는 포켓스탑은 보라색으로 표시된다. 화면 중앙의 3층짜리 설치물은 체육관이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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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포켓몬GO, #오마이뷰, #속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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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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