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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이 참인지 거짓인지 분별하는 하나의 기준이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성공의 하나님을 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복을 보장하는 하나님도 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음을 말합니다. 십자가는 외로움과 좌절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패배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 가십니다."(122쪽)

환경운동가요 생태교육가요 사진작가요 목사인 최병성의 <길 위의 십자가>에 나오는 글입니다. 보통 십자가 하면 골고다 언덕 위의 십자가를 떠올리기가 쉽죠. 그런데 이 책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목에서 만난 십자가를 사진으로 찍고, 그 위에 성찰의 실타래를 풀어나가고 있죠. 그만큼 친근하고 다정다감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최병성의 〈길 위의 십자가〉
▲ 책표지 최병성의 〈길 위의 십자가〉
ⓒ 이상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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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십자가는 정말로 다양합니다. 쉼 없이 물이 쏟아져 넘쳐흐르는 강원도 설악산 폭포의 바위에서 만난 십자가, 아파트 울타리를 타고 오르는 마 넝쿨 잎사귀 두 장의 십자가, 대도심지 아파트 위에 떠 있는 하늘의 양털 같은 뭉개구름 십자가, 골목길 과속방지턱에서 만난 십자가, 철조망 십자가, 풀잎 십자가 등이 그것이죠.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그런 십자가를 바라보는 그는 도대체 어떤 심성을 지녔을까요? 아니, 그의 심성에 어떤 예수가 자리 잡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강원도 영월의 서강 변의 쓰레기 매립장 건설을 막아내고 그곳을 환경부 습지 보존지역으로 거듭나게 한 데서부터 그 십자가가 보이기 시작한 게 아닐까요?

"한때 교회마다 제자훈련이 유행했습니다. 그러나 제자훈련은 많았지만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제자를 찾아보기는 힘들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은 그저 성경공부를 하거나 담임목사의 말을 잘 듣는 교인을 양성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란 스승이 한 말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승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따름을 잃어버린 제자는 참제자가 아닙니다."(144쪽)

그렇습니다. 그가 그 주변 곳곳의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따라가고 있었던 까닭이겠죠. 그가 신앙은 교회 안에서 하는 '사도신경'을 넘어 창조세계의 보전과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 헌신하는 십자가 신앙 고백문이 가슴에 새겨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오늘날의 교회, 교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죠. 하나님의 교회는 교회를 찾아오는 자들만의 사교 장소가 아니라, 교회조차 찾지 못하는 소외된 이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눈물을 닦아 주는 희망의 공동체야 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 뜻에서 볼 때 그가 발견하는 십자가는 숭배의 대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십자가는 살아야 할 삶이자, 걸어가야 할 길이겠죠. 십자가는 거룩한 유물도 아니고, 액세서리나 구경거리도 아니고, 교회의 상징물로 국한될 수 없죠. 십자가는 예수님과 함께 손잡고 세상의 낮은 곳으로 흘러들어가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는 생명의 길이 돼야 하겠죠.

오늘도 그는 그래서 그 길 위의 십자가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곧 이 세상을 살리고 풍성케 하는 생수의 십자가요, 희망의 그루터기인 까닭이겠죠. 오늘도 낙심한 영혼들에게 이 책을 한 권 선물해서, 책상 머리에 꽂아두고 묵상케 하여, 새 힘을 얻게 하는 것도, 좋은 십자가를 건네는 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길 위의 십자가 - 오늘 낙심한 그대에게 건네는 기쁨과 소망의 메시지

최병성 지음, 이상북스(2016)


태그:#십자가, # 최병성 목사, #영월의 서강 변 쓰레기, #환경부 습지 보존지역, #희망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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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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