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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페미디아' 현수막. '이렇게 퀴어(Queer)하면 기분이 조크든요(좋거든요)'라고 쓰여있다. 성소수자인 게 기분 좋은 일이라는 표현.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페미디아' 현수막. '이렇게 퀴어(Queer)하면 기분이 조크든요(좋거든요)'라고 쓰여있다. 성소수자인 게 기분 좋은 일이라는 표현.
ⓒ 페미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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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1일 시청광장에서는 제17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필자에게는 이번이 두 번째 퀴어문화축제였다. 처음 참여했던 지난해에는 퍼레이드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1~2시간 정도만 있어 아쉬웠다.

올해는 마음을 먹고 드랙퀸(Drag queen, 남성의 여장)복장을 하고 가기로 했다. 길고 길었던 그 날의 후기를 짧게나마 남겨본다.

살에 닿는 스타킹의 질감이 어색했다

옷을 입는다. 가발을 쓰고 빗질을 한다. 뻣뻣하다. 준비는 다 되었지만, 현관 앞에서 발을 떼기가 망설여진다.

집 앞 마트를 지나가는데 아줌마의 시선이 느껴진다. 시청역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 들렀다. 혼자 들어가기가 망설여져 애인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

마침내 버스에 탔다. 다행히 버스 맨 뒷자리가 비어있다. 지하철을 안 타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을지로입구, 광교입니다."

버스에서 내린다. 시청광장으로 간다. 가는 길에 몇몇 끈적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 시선들은 내가 남자라는 걸 알아챈 1초도 안 되는 순간 '경멸', '호기심', '당혹'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눈빛으로 바뀐다. 어느 쪽이든 심히 불쾌하다.

축제 펜스 바깥에는 수많은 혐오세력들이 있었다
 축제 펜스 바깥에는 수많은 혐오세력들이 있었다
ⓒ 진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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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를 찾아 들어가는 길에는 '박원순 OUT, 동성애 OUT'이라고 적힌 손 피켓이 보였다. 이 피켓을 든 무리가 북을 두드리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북을 두드리는 걸까. 광장에 들어가자마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퀴어문화축제가 일종의 '명절'이라는 표현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지난해 '페미니즘 스터디'를 같이했던 분들, 내가 속한 녹색당의 사람들, 대학 친구, SNS에서 알게 된 친구들까지. 선 하나 넘었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다.

검은색 스타킹과 가발 때문에 덥긴 하지만, 내가 무엇을 걸치든 화장을 어떻게 하든 간섭하는 사람은 여기서는 단 한 명도 없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집에서 출발해서 계속 느껴왔던 불편함의 근원은 '내가 무엇을 걸쳤기 때문'이 아니라,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었구나.

처음 해본 여장은 낯설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
 처음 해본 여장은 낯설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
ⓒ 진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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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머리가 자꾸 흐트러진다. 계속 한 손으로 넘기며 휴대전화의 '셀카' 기능으로 내 얼굴을 보게 된다.

이후에는 퀴어문화축제 부스들을 둘러봤다. 내가 구매하고 싶어서 미리 '찜'을 해뒀던 배지는 이미 다 판매되고 없었다. 조금 더 일찍 올 걸, 아쉬웠다. 지난해에는 부스만 잠깐 지키다 갔었는데, 올해는 천천히 둘러봤다. 일부 언론에서 묘사하는 '문란한 나체파티'는커녕 상반신을 탈의한 사람도 찾기 힘들다.

한 부스 앞을 지나가는데 어머님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안아준다. '성소수자 부모 모임' 부스다. 나도 꼭 안아주셨다.

내 주변에는 부모님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성소수자 친구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가장 가까운 부모에게 자신을 거부당하는 건 정말 괴로울 것이다. 나는 성소수자가 아닌데도, 어머니의 포옹에 가슴이 울컥해졌다.

"무지개로 연대하라" 시청광장에서 명동까지 퍼레이드

무지개 빛으로 가득한 행진
 무지개 빛으로 가득한 행진
ⓒ 진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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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부스를 둘러보니 광장에 여러 단체의 깃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곧 퍼레이드가 시작되나 보다.

시청광장을 떠나 명동을 거쳐 다시 시청으로 오는 한 바퀴. 퍼레이드 차량은 총 5대다. 내가 속한 행렬의 앞에는 민주노총 차량이 있다. "무지개로 연대하라"라니 정말 멋진 슬로건이다.

별다른 건 없다. 차량에서는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1990년대의 '티어스(TEARS)'부터, 엑소의 '으르렁', 모 오디션 프로그램 테마곡인 '픽 미(PICK ME)'까지. 퍼레이드 차량 위의 사람들은 춤을 추며 끼를 발산하고, 따라 걸어가는 이들도 노래 부르며 몸을 흔든다.

거리를 지나다 보니 카페 2층에서 무지갯빛 피켓을 들고 흔드는 분이 보인다. 많은 사람이 손을 흔들며 환호한다. 퍼레이드가 끝나고 다시 돌아온 광장. 여기저기 흩어졌던 사람들이 모인다. 다리가 좀 풀린다.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치마가 은근 신경 쓰인다. 두리번거리다 가방을 무릎 위에 얹는다. 남아있던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 아쉬워 간식거리를 사 들고 다시 광장으로 왔다.

수많은 펜스와 부스들은 그 새 모두 사라져 있었다. 그제야 갑갑한 가발을 벗었다. 한숨 돌리려 하는데, 카메라를 들고 취재하는 기자도 보였다. 모두 하루 종일 걷느라 지쳐서, 그제야 앉아서 편한 시간을 보내고자 했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인식, 천천히 변해갈 것

"사랑은 평등하다"
 "사랑은 평등하다"
ⓒ 진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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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도 찔끔찔끔 내리던 비는 얘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점점 더 방울이 굵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타러 간다. 부스는 모두 철거되었지만, 기업에서 '노조 탄압'으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를 위한 분향소가 보였다.

'할렐루야' 찬송가를 부르며 어둑해진 시청광장을 도는 사람들이 보인다. 마치 무슨 액운을 제거하듯. 수십 개의 부스와 수천 명의 사람으로 가득 차 있던 시청광장이 괜스레 작아 보인다. 이 작은 공간에서, 단 하루 동안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시간을 즐겼구나 싶다.

퀴어문화축제가 이렇게 공적인 공간으로 나온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그래,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 만연한 사회는 당장 눈에 띄게 변하지 않을 테다. 하지만 우리에겐 작게나마 공간이 생겼고,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좁은 시청광장은 천천히, 하지만 계속해서 넓어질 거'라고.


태그:#퀴어문화축제, #PRIDEFAIR,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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