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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 국내 언론 몇 곳이 같은 날 일본 <산케이신문>에 실린 기사 하나를 비중 있게 인용해 보도했다. 201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립고등학교에 적용되는 역사·사회과학 과목 커리큘럼에 일본군 위안부가 '성노예'로 표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글에서 일제 강점기 '위안부'를 '전시 일본군 성노예'를 줄인 '성노예'로 지칭할 것이다. 그것이 '위안부'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명칭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교육 당국의 지침은 태평양전쟁 시기 전시 일본군 성노예제도(위안부제도)의 진실을 제대로 짚었다.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는 전시 일본군 성노예에 관한 '문제적' 저작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을 독특하게 규정했다. 그는 '위안'이라는 말이 '매춘'과 '강간'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고 하면서 "기본적으로는 수입이 예상되는 노동이었고, 그런 의미에서는 '강간적 매춘'이었다. 혹은 '매춘적 강간'이었다"(<제국의 위안부>, 120쪽)라고 규정했다.

'성노예'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비판했다. "일본군의 잔혹함을 강조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꼭 정당한 싸움이었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라면서 "일본인·조선인·대만인 '위안부'의 경우 '노예'적이긴 했어도 기본적으로는 군인과 '동지'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제국의 위안부>, 137쪽)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조선인 성노예는 '제국의 위안부'였다. 그는 "성의 제공은 기본적으로는 일본 제국에 대한 '애국'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제국의 위안부>, 137쪽)라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제국의 위안부>의 문제적 서술은 계속된다. 성노예 동원은 일본의 '국가 범죄'가 아니며, 범죄라고 하더라도 주로 '업자의 범죄'라고 보았다. 조선 여성이 위안부가 된 것을 "경제활동이 가능한 문화자본을 갖지 못한 가난한 여성들이 매춘업에 종사하게 되는 것과 같은 구조 속의 일"(<제국의 위안부>, 112쪽)로 규정했다. 그는 "'위안부'의 본질"이 "'가라유키상'(19세기 말 국외 원정 성매매를 하던 일본 여성들을 일컫는 말-기자말)의 후예"(<제국의 위안부>, 32쪽)에 있다고 간주했다.

박 교수는 일관되게 일본 정부나 천황의 '법적 책임'이 아니라 '(상징적인) 구조적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강제연행'이라는 국가폭력이 조선인 위안부에 관해서 행해진 적은 없다는 점, 있다고 한다면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사례여서 개인의 범죄로 볼 수밖에 없고 그런 한 '국가범죄'라고 말할 수는 없다"(<제국의 위안부>, 215쪽)라고 말했다.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표지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표지
ⓒ 도서출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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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를 "제국의 변호인"(손종업 선문대 교수)으로 보는 논자들의 비판 글들과 반박 논리 및 자료들을 집대성해 엮은 책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아래 <변호인>)는 "제국의 거짓말과 '위안부'의 진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손종업 선문대 교수 등 국내외 학자, 작가 19명의 글을 담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들은  '거짓말'이라는 뜻의 '噓(허)'자를 박 교수를 겨냥한 열쇳말로 내세웠다. 이 글자에는 '탄식'이라는 뜻도 있다.

조선인 성노예와 일본군 사이를 '동지적' 관계로 보는 '기이한' 사고 방식의 소유자인 박 교수에게 태평양전쟁 당시의 '역사적 사실'이 '거짓말'로 들렸을까. '제국의 변호인'이기를 자처하는 듯한 박 교수는 '탄식'처럼 ▲ 종군위안부는 돈 벌러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다 ▲ 강제연행은 날조다 ▲ 성노예는 거짓말이다 (<변호인>, 5쪽) 등으로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 문구들은 최근 일본 우익단체가 전단지에 넣는 주장들이라고 한다.

저자들은 박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에서 하고 있는 '거짓말'을 '구조적 거짓말'로 보면서 '거짓말 같은 말장난', 또는 '말장난 같은 거짓말'을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없는 증거 만들기, 복화술, 곡예적 사고회로, 예외의 일반화가 그것들이다.

박 교수는 "지능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화법으로 (중략) 때로는 어이없는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8~9쪽). 이를 통해 박 교수가 노리는 목표는 김부자 도쿄 외국어대학교 대학원 교수의 시각을 빌려 말해 보면 위안부의 이미지를 역사수정주의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박유하 씨의 '위안부' 상은 일본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이 책이 조선인 '위안부'는 소녀도 성노예도 아니고, 일본인 병사와는 "'같은 일본인'으로서 '동지적 관계'를 가지는 '제국의 위안부'로, 지금까지 성노예로서의 '위안부' 상을 '전면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새로움을 가장하면서, 내실은 하타 이쿠히코 씨의 '위안부' 제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해석(='전지 공창시설론')과 우에노 지즈코 씨의 피해자상의 해석(='모델 피해자론')을 합체시켜, 일본군의 책임과 식민지 지배 책임을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적인 '위안부' 담론이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147쪽)


그러나 이 책에서 여성동학다큐소설 작가 고은광순이 날카롭게 지적한 것처럼, 당시 일본 황실과 300만의 일본군과 야쿠자 조직들은 동학농민 토벌 이후 반세기 동안 이웃나라 국민 2000만~3500만 명을 잔혹하게 죽이며 노예노동을 강요하고 강간과 약탈을 저지른 하나의 몸뚱이였다. 이들 문제에 대해 일본 황실과 정부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명백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의 위안부제와 징용제가 당대 일본이라는 국가가 조직적이고 교묘하게 펼친 '근대적 노예정책'의 구체적인 산출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저명한 국제인권변호사인 베리 피셔는 성노예제가 나치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던 만행이었다고 일갈했다. 징용자와 성노예를 실어 나른 2차대전 당시 일본의 해상수송 규모가 인류 역사에서 아프리카 흑인을 대서양으로 실어 나른 노예수송 다음으로 컸다고 말했다.

<제국의 위안부> 비판론자들에 따르면 박 교수는 한일 양국 간 '우정'과 '화해'를 강조한다고 한다. 우리가 민족주의적인 감정에 과도하게 빠진 게 아닌지 돌아봄으로써 '착한 일본인들'이 '혐한론'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박 교수는 '동양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알고 있을까.

"동양의 평화를 지키려면 조선과 일본이 튼튼하게 맺어져 우정을 돈독하게 나눠야 합니다." (214쪽)


을사늑약 체결 당시 이토가 고종에게 건넨 것으로 알려진 말이라고 한다. 박 교수는 지금 '칼'을 숨긴 채 '우정'을 말하며 들어온 도적의 패악질을 이해하고 후손과 미래를 위해 화해하자고 말한다. 약자와 피해자의 고통어린 절규를 외면하고 강자, 가해자의 논리를 따른다. 그가 바라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2016년 4월 18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형사재판에서 명예훼손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는 검찰이 기소한 세 가지의 거짓말 혐의에 대해 하나하나 반론을 펼쳤다고 한다. ▲ 물리적 강제성을 부인했지만 구조적 강제성을 부인하지 않았으므로 강제성을 부인한 적 없다 ▲ 매춘은 학문적인 용어로 이해해야 하는 것으로, '강간적 매춘'은 나쁜 의미로 쓴 게 아니다 ▲ 동지적 관계라는 말은 일본의 책임을 묻기 위해 쓴 말이다 등으로 반박했다고 한다.

검사는 피고인 박 교수가 '의도적'으로 역사 사실을 왜곡하고 '교묘하게' 역접과 비약을 섞어 허위사실을 적시했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손종업 선문대 교수는 박 교수가 정신적 변검술(가면 바꾸기)을 쓰면서 상습적으로 자기 모순적인 기술을 한다고 지적한다. 법원이 삭제 명령을 내린 34곳에 관해 반박을 하지 못하고 삭제판을 살포하는 박 교수의 '학자적 양심'이 궁금하다.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손종업 외 지음 / 도서출판 말 / 2016.5.1. / 430쪽 / 1,8000원)

덧붙이는 글 | 정은균 시민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 제국의 거짓말, 위안부의 진실

손종업 외 지음, 도서출판 말(2016)


태그:#<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제국의 위안부>, #전시 일본군 성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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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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