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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리에 대해서 처음 접한 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어느 소설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들의 학교 생활을 다룬 그 소설은 그 시기 청소년들이 겪을 법한 일들을 그려냈다. 내용 중에는 생리에 관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생리'라는 말은 단 한 글자도 등장하지 않았고, 나는 그 부분이 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는 건지 끝내 알지 못한 채 그 소설책을 덮었다. 그 소설책에는 "너도 그러니?"라는 여학생들의 말과 "가슴이 커지는 것 말야?"라는 질문에 대해 아니라는 답변, 몇 문장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불안과 고민'뿐이었으니까.

생리에 대해 비교적 제대로 알게 된 건, 중학교 시절 인터넷에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인터넷 카페, 즉 커뮤니티다. 내가 자주 접속하던 그 카페는 여자 유저가 주를 이루는 커뮤니티였고, 나는 유머 자료를 이용하기 위해 주로 그 카페를 찾았다. 그렇기에 그 카페에서 의도치 않게 당시 여자들의 내밀한 고민을 접하는 일이 있었다.

'생리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과 같은 게시물은 댓글이 수백 개를 넘었다. 생리통이 심해 너무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래? 잠깐만 참을 수는 없어?"라는 질문이 돌아오더라는 남자친구의 답변에 대한 경험. 그와 비슷한 '무지한 남성'들과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불만과 고통. 나는 그것을 보며 처음 생리가 무엇인지 배웠다.

'의지로 끊고 멈추고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 '하루가 아니라 며칠, 일주일 이상 이어지는 고통'이라는 것. 쓰러질 정도로 아픈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을 매달 겪어야 한다는 것. 그 고통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더 큰 고통과 두려움(건강상의 문제나 혼전 임신)이라는, 지독한 고통의 굴레라는 것을.

'개념남'이 될 수 없었던 이유

생리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기분이 바뀌고 식욕이 생기고 줄어드는, 호르몬 작용에 의한 수많은 변화들이 따라온다는 것을 수많은 여성 커뮤니티 유저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알았다. 내가 그 이야기를 알게 되며 처음 생각한 것은 '나는 그렇게 어려운 고통을 겪지 않는다'는 안도감과 '나는 무지에서 나오는 상처 입히는 말을 하지 않는 개념 있는 남자가 되어야지'였다.

부끄럽지만 그랬다. 여전히 생리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생리대가 얼마나 비싼지, 그 고통은 어떤 것인지,  나는 그런 것들을 알아서 내 주변 여자들을 배려할 수 있는 남성이 되어야겠다고 이해했다.

그밖에 면 생리대의 특징이나 탐폰이란 것의 존재와 효과, 우리나라 생리대의 가격과 사람의 체질마다 어떤 생리대를 착용하는 것이 좋은지, 생리통이 심할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예상 못한 순간에 피가 나올 때의 끔찍한 기분은 어떤 것인지, 피 냄새가 날까 봐 괜히 사람을 피하게 되는 두려움은 무엇인지, 생리의 전체 과정은 여성들에게 어떻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지와 같은 것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아는 게 '나는 개념남이다'라는 것을 뽐내는데 사용되지는 않았다. 개념남의 등극이 어려웠던 것은 내가 생리에 대해 언급하거나, 다른 여성의 생리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한국사회에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생리대 광고에선 늘 편안함을 강조하고, '생리를 하는 중에도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여성상을 제시한다.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광고.
 생리대 광고에선 늘 편안함을 강조하고, '생리를 하는 중에도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여성상을 제시한다.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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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세상을 접하고 '조심해야겠다'라는 다짐을 하던 중학생이 20대 중반이 되는 10년의 시간 동안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생리'는 숨겨야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주변의 여성으로부터 자신이 생리를 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고충이 이렇다는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

그중에는 내 도움이나 이해가 필요했을 법한 순간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상황은 '타인에게 밝혀져서는 안 되는 부끄러운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녀들을 돕거나 이해가 필요한 상황을 겪지 못했다. 내가 눈치로 문제가 생긴 상황을 이해하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 판단해도 나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단지 내가 해야할 건 어떻게 해야 내 친구가 '쟤가 알아냈다'라는 두려움을 겪지 않은 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방법을 찾는 것에 불과했다.

생리가 초등학생을 위한 소설에도 결코 등장하지 않았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여성이라면 거의 모두가 겪는 생리를 '공공연한 비밀'로 만든다. 그 비밀은 생리의 과정으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이 나아질 기회를 빼앗고, 생리대를 제때 구하지 못하는 여학생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처음 생리를 겪는 과정에서 제대로 알지 못해 두려워하는 어린 여성들을 안심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생리대를 구하지 못한 중학생들의 삶에 대해 '별것 아닌 걸로 왜 난리를 치냐'라는 댓글들이 달리게 만든다. 생리는 여전히 남성들에게 '한 달에 한 번 여자가 피를 흘리는 것'으로만 인식된다. 혹은 '첫 생리 때 꽃을 가져다주며 축하해야 한다'는 정도.

생리대를 구하지 못한 중학생의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달린 댓글들. 여전히 세상은 생리에 대해 무지하다
 생리대를 구하지 못한 중학생의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달린 댓글들. 여전히 세상은 생리에 대해 무지하다
ⓒ 포털뉴스 댓글 달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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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가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바라며

그 인터넷 카페에서 보았던, '여고에서는 생리대가 날아다닌다'라는 말을 예전의 나는 단순히 유쾌한 고등학교의 모습으로만 이해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그들에겐 필연적인 고충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황이기에 가능했던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 반은 합반이라 그럴 수가 없다. 부럽다"라는 댓글들을 기억한다. '합반'이면 고통으로 남아야 하고 '여고'이기에만 가능했던 해결. '여성들만 존재하는' 제한적인 사회에서만 가능한 자유로운 이야기와 경험 공유, 그리고 해결책 마련. 그 제한적인 사회 밖에서 여전히 여성들은 '숨겨야 한다'는 명제 아래서 힘겨운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남고에서 내가 만난, 생리에 대한 불쾌한 농담들은 문제의 본질이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의 본질은 결국 그들을 그렇게 만든, 생리에 대해 '숨기기에 급급한' 사회다. 성인이 되어 여자친구를 만나게 된 친구들은 종종 "생리가 그 정도로 힘든 것인 줄은 전혀 몰랐어"라는 한숨을 내뱉곤 했다. 긴 시간 동안 고통받는 여자친구의 상황에 대한 무지, 그리고 거기서 오는 부끄러움. 자신에게조차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숨겨야 하는 여자 친구의 자기검열. 무지하기에 배려는커녕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답답함...

사람들은 '딸이 첫 생리를 하면, 아버지는 꽃을 가져다주며 축하해 주세요'라고 하지만 동시에 '생리를 밝힘'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생리 시작이 '꽃을 가져다주어야 할' 정도로 축하할 일이라면, 먼저 생리가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고함2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생리, #생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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