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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당시 히로시마 에바에 살았던 원폭피해자 김수덕(80세) 할머니 모습.
 원폭 당시 히로시마 에바에 살았던 원폭피해자 김수덕(80세) 할머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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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경남 합천에 사는 원폭피해자 김수덕(80) 할머니를 만났다. 나가사키에서 온 기무라씨와 함께였다. 기무라(72)씨는 2007년에 '스톤워크(Stone Walk) 코리아' 행사에 참여한 후 원폭피해자가 머무는 합천 '평화의 집'에서 두 달간 봉사한 경력이 있다.

국제반전 평화순례행사단 '스톤워크 코리아'는 태평양전쟁에서 숨진 아시아인들에게 사죄한다는 뜻으로  '사죄와 우호, 평화를 위하여'라고 쓰여진 1톤 비석을 손수레에 싣고 부산에서 출발해 금강산까지 행진하며 반전과 평화를 외쳤다.

경남 합천군 합천읍 인곡리 합천의료봉사 현장을 찾은 기무라(맨 왼쪽)씨가 의료봉사단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강제숙씨로 오바마 대통령 히로시마 방문에 맞춰 한국인 원폭피해자들과 함께 히로시마 현장을 방문해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사과받기를 희망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경남 합천군 합천읍 인곡리 합천의료봉사 현장을 찾은 기무라(맨 왼쪽)씨가 의료봉사단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강제숙씨로 오바마 대통령 히로시마 방문에 맞춰 한국인 원폭피해자들과 함께 히로시마 현장을 방문해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사과받기를 희망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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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는 때마침 부산 '소목회'가 주관하고 부산국제교류단이 후원한 '합천군 무료의료 봉사 및 원폭피해자 요양병원 위문'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소목회는 조선통신사가 방문한 일본 지역을 일 년에 한 번씩 방문해 친선을 도모하는 모임이다.

무료의료 봉사단에는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통증의학과, 치과, 한방과, 간호사, 대학교수, 일본신문사 기자,  일본영사주재원 등 35명이 참여해 주민들을 위해 무료진료 후 노인들에게 안경을 제공했다.

합천군 무료의료봉사 및 원폭 피해자 요양병원 위문에 나선 소목회원들
 합천군 무료의료봉사 및 원폭 피해자 요양병원 위문에 나선 소목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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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중인 마을 주민들
 치료 중인 마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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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 히로시마 방문 때 사과받고 싶었지만...

71년 전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피폭돼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16만 명이고 한인 희생자는 3만 명에 달한다.

현재 국내에 생존해 있는 원폭피해자 2494명 가운데 620명이 합천에서 살고 있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살았기 때문에 살아남았던 김수덕 할머니가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의 상황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원자폭탄이 떨어질 당시 나는 에바소학교 4학년이었어요. 번쩍하고 불빛이 난 후 큰소리가 나고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덮었어요. 오후 되니까 온몸에 화상을 입어 시커멓게 탄 사람들이 못 견뎌 강물에 들어갔는데 물속에 들어간 사람은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여름이라 반팔을 입었는데 화상을 입었고 토하고 그랬어요. 에바에는 조선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어요. 전학 가지 않았더라면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직통으로 죽었겠죠."

화상 입은 팔을 들어 올린 김 할머니는 후유증 때문에 목 뒤로 손을 올리기가 힘들다. 갑상선으로 고생하며 허리와 가슴 등 8번이나 수술했다. 친척들이 많이 죽었지만 폭발 당시 가족은 죽지 않았다. 오빠와 언니는 한국에 돌아와 죽었다. 화상 흉터를 보여주던 할머니가 말을 계속했다.

"전에는 심했는데 70년이나 지나서 그런지 흉터가 많이 사라졌어요."

원폭당시 입은 화상 흉터를 보여주는 김수덕 할머니. 70년이 지났기 때문에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원폭당시 입은 화상 흉터를 보여주는 김수덕 할머니. 70년이 지났기 때문에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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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원폭피해자로 일본 정부에 등록돼 일본 정부가 매달 100만 원 정도를 보상해준다. 한국 정부에서도 석 달에 한 번 27만5000원을 받는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때 왜 가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녀가 답했다.

"히로시마에 가고 싶었는데 허리도 아프고 늙어서 가고 싶어도 못 갔어요. 가서 사과를 받고 싶었지만 마음이라도 전해줬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자리에는 한국인 원폭피해자들과 함께 히로시마를 방문한 강제숙씨가 있었다. 1995년부터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 그림전'을 열기도 한 강제숙씨는 원폭피해자 및 자녀를 위한 특별법추진연대회의 공동대표로 합천 평화의집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원폭현장  방문에 맞춰 히로시마를 찾은 한국인 원폭피해자 일행이 일본의 방해로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일본과 미국의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에 강제숙씨가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원폭현장 방문에 맞춰 히로시마를 찾은 한국인 원폭피해자 일행이 일본의 방해로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일본과 미국의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에 강제숙씨가 보인다.
ⓒ 강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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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숙씨는 "일본 당국이 위령제를 위해 일본을 찾은 우리 원폭피해자 일행을 비자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3시간 가까이 사실상 공항에 억류하고 현장 접근을 막았다"고 전했다. 히로시마 피폭 현장에서 원폭피해자들과 함께한 강제숙씨는 "억지로 일본에 끌려가 식민지 억압과 피폭이란 이중의 고통을 겪은 한국인피해자들을 위해 일본과 미국은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원폭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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