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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6월 1일.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녀, 아내가 세상에 나온 날입니다. 이미 결혼 5년 차. 연애할 때만큼 뭔가 대단한 것을 하겠다는 결심이 솔직히 서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결혼 후 제 집사람은 항상 제 생일을 잘 챙겨줬지만 저는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미역국을 끓여주기로 했습니다. 전에 보니까 TV에서 미역을 사서 직접 미역국을 끓여주면서 감동을 선사하는 장면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트에 들어가서 '3분도 아닌, 끓는 물에 2분이면 OK!'라는 강렬한 문구가 적힌 즉석조리 제품을 보자마자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너무 정성이 없어 보일 거야. 하지만 난 미역국을 끓일 줄도 모르는데….'

결국 저는 제 자신과 쉽게 타협하고 즉석 미역국을 샀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 몇 년 동안 사지 않았던 장미꽃을 샀습니다. 미역국도 샀고, 꽃도 샀고, 이제 남은 건 케이크. 빵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좋아할 만한 종류의 케이크가 바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거 주세요."
"그거 장식용인데요."
"음…."
"30분 기다리시면 돼요."

30분이면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역시 잠깐 고민했습니다. 결국 30분을 기다리지 못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가져갈 수 있는 건 뭐죠?"

점원이 가리킨 곳을 보니 곰돌이 케이크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좋아하는 케이크이기에 사도 아내가 서운해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그 케이크를 사면 캐릭터 경품까지 준다더군요. 생일 선물은 주말에 나가서 함께 사고, 우선은 이렇게 아침에 생일 파티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아내 생일상, 너무 내 위주였나...

이렇게 맛있게 미역국을 끓여내진 못했다. 선택은 즉석 미역국...
 이렇게 맛있게 미역국을 끓여내진 못했다. 선택은 즉석 미역국...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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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6월 1일 아침!

"어머…."

집사람이 일어나 제가 준비한 걸 본 모양입니다.

"사실 어젯밤에 부스럭거리는 소리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집사람은 곧바로 아들을 부릅니다. 엄마의 생일을 축하해달라는 것보다 케이크에 초를 꽂아놓고 불 끄는 걸 좋아하는 아들이 생각났기 때문일 겁니다.

"아들, 생일 파티하자!"

그런데 아들이 오자마자 중간에 딱 앉는 겁니다. 아들 생일도 아닌데…, 케이크 앞엔 당연히 자신이 앉아야 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마디.

"오늘 엄마 생일이야? 그러면 어린이집 안 가?"

엄마 생일인 것이랑 어린이집 안 가는 게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아들을 보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아내의 생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는 제 아들만큼 어리지도 않은데 아내 입장이 아닌 제 입장에서만 생일상을 준비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난 30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 살 수 있는 걸 택했다.
 난 30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 살 수 있는 걸 택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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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도 제가 만들기 편한 것으로 샀고, 케이크도 30분을 기다리기 싫어 아내가 좋아하는 게 아닌, 바로 살 수 있는 걸 샀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집사람은 아침에 생일상을 받은 게 기분 좋은 모양입니다. 고맙다며 꽃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호기롭게 말했지요.

"우리 결혼한 지 6주년이라 여섯 송이 샀어."
"결혼 5주년인데…. 생일이라 여섯 송이 산 거 아냐?"

말을 꺼내고 나서 아차 싶었습니다. 결혼기념일이 아니라 생일인데 결혼기념일에 어울릴 법한 멘트를 치다니. 재빨리 수습해야 했습니다.

"아, 맞다. 2011년에 결혼했으면 5년 되는 거지, 이제?"

결혼한 지 얼마 됐는지로 화제를 전환해 일단 위기를 넘겼습니다. 무엇보다 아내가 바로 출근해야 했기에 더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습니다.

장미꽃. 결혼 5주년인데, 6주년이라 착각까지.. ㅠㅠ
 장미꽃. 결혼 5주년인데, 6주년이라 착각까지.. ㅠㅠ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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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생일상을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주말 아내와 말다툼을 했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다른 사람한테 안 그런데, 나한테는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라고 했습니다.

생일상을 준비하면서도 아내보다는 제 위주로 생각한 것 같아 그때 나왔던 아내의 말이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저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생각해주는 소중한 사람인데, 정작 그런 이유로 저를 더 잘 이해해 줄 것이라면서 되레 배려심 없게 행동한 건 아닌지….

이강백의 <결혼>이라는 희곡이 떠올랐습니다. 거기서 남자 주인공은 세상의 모든 것은 빌린 것이라며 여자 주인공에게 여자도 빌린 것이라고, 소중하게 대하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저 역시 제 소중한 사람을 세상으로부터 빌린 것이라 생각하며 앞으로 더 소중히 대해야겠습니다. 제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생일 선물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태그:#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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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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