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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 제목을 본 순간, 나는 가슴이 '탁' 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주기가 되는 해, 그리고 다시 한 달이 지났다. 참사 이후 학교마다 안전 교육이 강조되고 있지만, 참사로 인해 침몰한 것은 안전 교육만이 아니다. 우리는 검은 물 밑바닥에 드러누운 순응주의 교육의 현실을 보았고, 유체 이탈 화법으로 책임을 외면하는 국가와 사회의 총체적 난맥상에 아연했다.

이제 침몰과 인양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해양 사고의 용어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하여 참사가 수면 위로 끌어올린 우리 사회에 대한 자성과 통찰의 소리들을 묻어 버리려 든 순간, 이 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획득했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그래서 '학교를 인양하라'는 이 책의 제목을 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이 책에 담긴 문제의식과 저자의 시각이 세월호 참사의 교훈과 맥을 같이 한다고 느꼈다.

저자는 20년 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저자는 말한다.

"20년 이상 학교에서 일하면서 나는 수많은 벽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어떤 거창한 이념이나 대단한 갈등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동료들의 한마디와 매일 마주치는 익숙한 일상에 벽이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시스템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스템의 모순은 개인들의 가치와 행동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고, 그 가치와 행동을 통해 더욱 강화되고 확장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책에서 내가 제기하는 교육에 대한 고민과 비판을 개인들의 잘못으로 보지 않으셨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과,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깊숙이 내면화되어 있는지, 그것과 싸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얼마나 중요하고 꼭 필요한지를 고민해 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놀랍게도 저자가 부닥친 벽에 대한 경험들 대부분은 나 역시 한 번쯤 겪은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종례 시간에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학금을 소개했더니 한 학생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큰소리로 신청을 하더라고 '한탄'하는 교사를 보았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인가? 더구나 민주 사회에서 응당 보장해줘야 할 교육 기회 균등의 문제이자 국가가 당연히 제공해야 할 복지 혜택을, 그 학생이 누려야 할 권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거지에게 동냥 주듯 베풀어 주는 시혜로 생각하는 그 교사 앞에 내가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던 경험이 있다.

저자는 기초생활수급자의 자녀가 학원을 다니면서 수학여행비를 지원받는 것을 '거지 근성'이라고 욕하는 교사를 보면서 '교육 복지'를 '시혜'로 여기는 이들의 사고 방식에 놀란다. 그리고 '거지 근성'이 '노력 없이 공짜로 무언가를 누리려는 것'이라면 진짜 거지 근성은 부모의 재산을 무조건 내 것으로 여기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거지 근성'을 이야기하는 우리 교육 앞에 "내 자녀가 민주 시민 공화국의 시민으로 살기를 원하는가, 18세기 계급 사회에 살기를 원하는가?"라고 되묻는다.

정현주 저 <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
 정현주 저 <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
ⓒ 지식과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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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장을 순식간에 읽는데 너무나 자주 시선을 멈추게 된 나는 급기야 형광펜을 꺼내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내가 학교 현장에서 답답함을 느꼈던 순간들이 매 장마다 오롯이 살아나 한 번씩 숨을 골라야 했고, 저자의 예리한 지적과 통찰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환기시켜 밑줄을 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일자리를 찾아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 진로교육이라고 생각하는 학교에서 저자는 우리 삶에 필요한 직업들을 '좋은 일자리'로 바꾸어 주는 것이 진짜 진로교육이 아닌가 생각한다.

야자에 길들여진 학생들과 야자 감독을 당연시하는 교사의 모습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하는 우리의 노동 관행과 실종된 8시간 노동제의 정신을 떠올린다. '모범상'이란 이름으로 0.1%의 학생을 본보기로 내세울 때 99.9%의 학생들은 '개선이 필요한 잘못된 상태'가 되어 버리고, 이것은 수치심과 좌절감을 심어 주는 교육이라고 지적한다.

20년을 교단에 서 온 저자의 우리 교육에 대한 진단은 날카롭고 전방위적이다. 성취도를 확인하기 위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통한 경쟁으로 학습시키는 것이 교사와 교육이 가장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교육 풍토가 시험 안 보면 공부 안 하는 파행적 교육을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많은 양의 지식 축적을 우선시하는 우리 교육에 대해, 지식을 쌓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지식을 입시의 수단을 삼아 줄 세우기를 할 때 지식은 변별력의 도구, 미래의 물질적 보상을 얻기 위한 한낱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제는 '인성교육진흥법'이라는 어이없는 이름으로 인성마저도 줄 세우기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대한민국 교육 현실이 우리의 교육을 망치고 있다고 개탄한다. 길을 잃고 헤매는 교육 현실과 미봉책에 불과한 교육 정책, 넘치는 잡무에 행정가가 되어 가는 교사들, 실종된 교권과 군림하는 교육부. 너무도 많은 문제로 둘러싸인 우리의 교육은 뻘 밑바닥에 처박혀 있다.

저자는 결국 학교를 뛰쳐나왔다. 안타깝게도 열정만으로 버틸 수가 없었다. 더구나 시기적으로 세월호 참사와 맞물리면서 부조리한 교육 현실 앞에 무력한 자신의 모습이 제대로 된 구원 요청을 미룬 세월호의 선장, 승객 구조보다 윗사람 의전을 중시했던 해경의 모습과 겹쳐졌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한없이 평범하고 성실하게 유태인 학살 업무를 수행한 독일의 아이히만을 떠올리기조차 했다.

그리고 스스로 초라한 걸음이고 비겁한 도주라 부르는 선택을 했다. 나는 저자의 고통을 십분 이해하지만, 그가 학교를 나온 것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조금이라도 우리의 교육 현실에 문제의식을 지닌 교사라면, 어떻게든지 교육 현장을 지켜야 한다. 벽을 벽으로 인식하는 한 사람을 잃는 것이 우리 교육에 얼마나 큰 손실이며, 저 교실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어린 학생들에게는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하지만 이 책이 저자의 '비겁한 도주'의 빚을 조금은 덜어줄 것 같다. 나는 이 책이 부디 많은 교사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너무나 익숙해서 무심코 지나친 교육 현장의 일상을 하나하나 새롭게 돌아보게 될 것이다. 학부모들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애지중지 뒷바라지하고 있는 우리의 귀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교육받고 생활하고 있는지 부모라면 알아야 한다.

세월호의 선장을 법정에 세웠지만, 그 한 개인의 죄과를 묻는 것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의 시작에 불과하듯이, 문제의 근원은 개인을 넘어서 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설치하여 진상을 규명하고자 한 세월호 특별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집요하고도 부단하게 이어져 왔고, 특조위 활동 기한을 연장하고 선체 인양 후에 정밀 조사를 보장할 특별법 개정안이 끝내 여당의 저지로 무산되어 버린 현실이 보여주듯이,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은 늘 수많은 벽들에 부닥쳐 왔다.

하지만 침몰한 진실과 침몰한 세월호의 인양을 포기할 수 없듯이 저 막막한 교육 현실도 방치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문제의식의 공유와 확산에 이 책이 기여할 것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의 마지막 6장에서 저자가 혁신학교와 대안학교를 공들여 다루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글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맺는다.

"우리가 질곡 속에 있다 하더라도 꿈꿀 자유는 있지 않을까? 우리 앞을 가리는 흙먼지가 아무리 혼탁해도 가야 할 곳이 어떤 곳인지 안다면, 언젠가는 못 갈 이유도 없을 것이다."


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

정현주 지음, 지식과감성#(2016)


태그:#교육 현실, #학교, #시민교육, #혁신학교, #선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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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의무를 다하고 싶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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