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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티스'(Notice)를 냈다. 호주에서는 집을 나가거나 일을 그만둘 때 미리 알린다. 이를 '노티스'라고 한다. 말없이 그만두는 일은 이곳에서 '비(非)매너'다.

"빨리 그만두네."

매니저가 말했다. 그래도 한국에서처럼 '괴롭힘'이나 '뒤끝'은 없었다. 뭐랄까. 그만둘 줄 알았다는 느낌. 나중에 그 이유를 친구에게 들었다.

"워홀러(워킹홀리데이비자 소지자)잖아. 이곳에서 영주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워홀러는 그냥 머물다 가는 사람이야. 어떤 형은 이렇게 말했지. '떠날 사람'이라고."

영주권자에게 워홀러는 그런 이미지란다. 그래서 쉽사리 정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해보면 '악덕 사장'이 생기는 이유도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어차피 떠날 사람이니 굳이 그들의 외침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심보 말이다.

"나도 여기 악덕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알지. 그런데 우리에게는 잘해줘. 밥도 사준적 있다고."

그러나 차마 목구멍으로 밥알이 넘어가진 않았다고 한다. 밥을 사준 한인은 스시집을 운영하는 사람. 그는 밥 먹는 시간까지 정확히 체크하기로 유명했단다. 더군다나 그의 부인은 그 시간조차 길다고 줄여야 된다고 주장했다고. 20분 주어진 식사 시간을 10분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가 사주는 음식들이 우리 또래의 '피'와 '땀'을 쥐어짜 나온 것 같았다고 한다.

청소일을 하기로 했으니... 면허증이 필요했다

껄끄러웠던 노티스를 끝냈다. 이제 준비해야 될 것은 '면허증'이다. 청소일은 차가 생명이다. 사이트 간 거리가 멀고 시간이 돈이기 때문. 청소를 빨리 끝낼 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호주에서 면허증을 발급받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호주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 것. 직접 시험을 치러 호주에서 사용하는 면허증을 발급받는 것이다. 이 경우 여권이 없더라도 면허증으로 신분 확인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시드니와 같은 뉴사우스웨일즈주의 경우 6개월 동안 있어야 한다는 자격요건이 있다. 멜버른 같은 곳은 바로 응시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거기까지 갈 순 없다.

두 번째는 공증. 한국과 호주는 면허에 대한 협약이 맺어져 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의 면허증을 호주에서도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공증을 한다면 한국의 면허증도 호주에서 통용된다. 다만 공증문서와 면허증, 여권을 매일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점이 불편하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당장 일을 시작해야 하는 마당에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하기로 했다. 공증을 받기 위해서는 시드니 영사관을 찾아가야 한다. 때마침 쉬는 날. 영사관으로 향한다. 이날은 4.13 총선 재외국민 투표가 있던 날이기도 했다.

재외국민 투표소가 마련돼 있었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 총영사관 입구 재외국민 투표소가 마련돼 있었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 백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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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관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탄다. 목적지는 세인트제임스(St. james)역. 이곳에서 조금 걷다보면 영사관이 있다고 한다. GPS를 켜고 목적지로 향한다. 세인트제임스 역에서 내려 걷는다. 그런데 영사관을 찾을 길이 없다. 혹시 태극기가 걸려있는 곳이 없나 두리번 거렸지만 높다란 빌딩만 있을 뿐. 구글 맵이 가리키는 곳은 이 빌딩이 맞는데 영사관은 안보였다. 10여 분을 서성이다 포털에 검색했다. 영사관은 이 빌딩 13층에 있었다.

영사관에 들어가니 재외국민 투표소를 가리키는 표지가 보였다. 반대편으로 이동하자 민원을 처리하는 사무실이 보인다. 뭐랄까. 마치 은행처럼 생겼다. 투명한 창문이 눈높이 위치에 달려있다. 밑은 뚫려 있지만 손이나 왔다갔다 할 수 있을 정도랄까. 민원실에는 여섯 대의 컴퓨터와 TV가 있다. 채널은 KBS world. 간만에 보는 한국 방송이 신기했다.

"여권, 면허증 원본, 공증문서는 항상 지니세요"

면허증을 공증하기 위해서는 영어로 공증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여섯 대 컴퓨터는 이를 위해 놓아 둔 듯했다. 컴퓨터 앞에 앉으니 공증에 관한 프로그램과 번역 프로그램이 바탕화면에 깔려 있다. 공증 프로그램을 켜니 작성해야 할 것들이 나온다. 영어로 작성해야 하는 것들은 번역 프로그램을 돌린다. 작성 후 프린트를 한다. 번호표를 뽑는다. 벨이 울렸다.

"잘하셨어요. 근데 면허증 종류는 다 적어줘야 돼요."

기자는 1종 대형면허를 가지고 있다. 가장 상위의 면허만 적어 넣었는데 1종 보통까지 같이 표시해줘야 한다고 한다.

"면허증에 적혀있는 내용을 전부 옮겨주셔야 해요."

다시 컴퓨터에 앉아 문서를 작성했다. 프린트를 했다. 5.70호주달러. 수수료를 내고 공증문서를 받았다. 그저 도장을 세 번 찍어주는 것이 공증의 전부다. 나가는 길, 기자를 담당하던 직원은 신신당부한다.

"여권, 면허증 원본, 공증문서 셋 다 가지고 다니셔야 해요. 1년 넘게 있는거면 호주운전면허증으로 바꾸셔야 하고요."

나중에 들으니 공증문서가 효력을 발휘하는 건 몇 개월 안 된다고 한다. 그것도 운이 안 좋으면 경찰이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이곳에서 경찰은 자의에 따라서 판단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 따라서 경찰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꽤 복잡한 일이 될 수 있단다.

"2개월 됐다고 해."

친구는 융통성을 부리라고 말한다. 경찰이 세세하게 문서를 살피는 것은 아니니 호주에 2개월 전에 왔다고 하라고. 그러면 넘어갈 것이란다.

1시간 남짓의 면허증 공증이 끝났다. 이제 운전 가능자가 됐다. 일을 하기 위한 준비는 마쳤다. 청소일을 하기로 한 첫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드니 내에는 버스 뿐아니라 지상으로 다니는 모노레일도 볼 수 있다.
▲ 영사관 빌딩 앞에서 본 2층 버스. 시드니 내에는 버스 뿐아니라 지상으로 다니는 모노레일도 볼 수 있다.
ⓒ 백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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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스물일곱.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왔습니다. 앞으로 호주에서 지내며 겪는 일들을 연재식으로 풀어내려 합니다. 좀 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풀어내고 싶습니다.



태그:#호주, #워홀러, #공증, #면허, #시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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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전역한 따끈따끈한 언론고시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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