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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대신 고라니가 거닐고 푸른 하늘이 머리에 닿는 주 중의 헤이리는 주말, 인파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사람대신 고라니가 거닐고 푸른 하늘이 머리에 닿는 주 중의 헤이리는 주말, 인파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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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헤이리에는 두 얼굴이 존재합니다. 주말의 사람으로 채워진 헤이리, 주중의 텅 빈 헤이리. 사실, 이 말은 단지 사람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모습입니다. 기준을 바꾸었을 때, 표현도 달라져야 합니다. 주중의 '텅 빈' 헤이리는 자연으로 '충만한' 헤이리가 됩니다. 새소리로 꽉 찬 헤이리, 고라니가 노니는 헤이리, 아까시나무 꽃향기가 그득한 헤이리, 푸른 하늘이 손에 닿는 헤이리...

사람 대신 자연으로 가득한 날, 세 부인이 오셨습니다. 속초가 고향인 세 분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사는 이유로  평생 애락을 공유하는 사이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은퇴해서 스스로의 시간을 즐기고, 자녀들은 학업을 마치고 사회생활 중이지만 아직 혼인 전이라 손자·손녀들에게 발목 잡힐 일도 없습니다. 세 사람은 주말을 피해 무시로 전국을 누비고 있습니다.

음악제를 찾아서 남도로 가기도 하고, 5일장의 오래된 정취를 찾아서 강원도 산골을 찾기도 합니다. 바다 위에 떠있는 것 같은 숙소에서 눈을 뜨기도 하고 첩첩한 산 능선의 라인이 아득한 산 중턱의 농가에서 아침을 맞기도 합니다.

"제 친정아버님은 구순이신데 아직도 운전을 하세요. 우리는 그때까진 아니더라도 칠순이 될 때까지는 이렇게 운전하며 마음이 이는 전국 어디든 가려고 합니다."

#2

헤이리의 갤러리 몇 곳을 들렸습니다. 그리고 헤이리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에서 가리비 버섯 샐러드와 봉골레 파스타, 스테이크로 오랫동안 식사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느린 걸음으로 산책로를 걸어서 모티프원으로 왔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문제가 아니지만 머릿속 관념들이 늘 마음을 속박하는 차꼬가 되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문제가 아니지만 머릿속 관념들이 늘 마음을 속박하는 차꼬가 되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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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얘기는 다시 이어졌습니다.

한 분의 남편은 은퇴 후 관련 업무에 재취업을 하셔서 다시 출퇴근의 일상을 살고 계십니다. 경험을 나누는 정도의 일이라 남편도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 출근이라 부인의 마음도 한결 가볍습니다.

한 분의 남편은 은퇴생활의 진수를 만끽하고 계십니다. 친구를 만나고, 문중 일도 돕고, 봉직하던 회사의 퇴직자 모임에도 나가고 한 연구포럼의 일에도 열중입니다. 은퇴전 출근 때의 일과와 다를 바 없을 만큼 바쁜 생활입니다.

다른 한 분은 젊었을 때 이혼해서 남편이나 자식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습니다. 혼자서 자신의 생활을 근사하는, 오랫동안의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자들의 은퇴도 다른 이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이 만족하는 삶을 택해가는 분들은 그 어떤 삶도 소중해보이더군요. 제 친구 남편은 운동에 열중이세요. 그분은 매일 피트니스 클럽에 나가 운동하고 몸짱이 되셨어요. 식스팩을 유지하기 위해 식단 짜고 스스로 요리하는 것을 즐기고 계세요."

다음날 아침,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 모티프원의 정원에서 저와 마주친 아침 인사가 한 시간의 수다로 이어졌습니다.

"낮에 잠깐 방문해서 커피 한잔 마시고 간 헤이리와는 전혀 달라요. 아름답고 고요한 마을이군요. 찬찬히 둘러본 이곳 모티프원은 구석구석 마음을 붙잡습니다. 포근하고 세련된..." 

애완견 해모의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 놀라 멀어지는 정원 너머의 고라니를 바라보면서 던 생각은 내가 한 마리의 고라니어도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이라면 인간의 복잡한 모든 관념들이 모두 지워진 한 마리의 고라니로 살아보다가 죽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애완견 해모의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 놀라 멀어지는 정원 너머의 고라니를 바라보면서 던 생각은 내가 한 마리의 고라니어도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이라면 인간의 복잡한 모든 관념들이 모두 지워진 한 마리의 고라니로 살아보다가 죽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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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분은 마치 육아와 노동, 근심과 초조를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것처럼 지금의 시간에 감사해했습니다.

지금 누리는 평화가 젊은 날의 치열함에 대한 당연한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헤이리,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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