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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역 환승구간, 길다.
 잠실역 환승구간, 길다.
ⓒ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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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다닥!"

지하철 환승구간을 달리는 제 퇴근길 모습입니다. 요즘에는 지하철마다 전철의 도착 예정시각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설치돼 있죠. 제가 이용할 방향의 지하철이 전역을 출발했다는 표시가 나오거나, 혹은 제가 타려는 역사에 가까워지는 게 보이면 전 달리기 시작합니다. 제가 환승으로 이용하는 구간은 지하철 잠실역인데요. 2호선과 8호선이 만나는 이곳은 긴 환승구간으로 유명합니다.

직장과 집이 모두 서울 안에 있어서 저는 늘 지하철로 출퇴근합니다. 지하철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에 직장이 있는 건 무척 감사한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거리로 스무개 역, 약 40분의 지하철 탑승 시간과 환승 등 도보 이동 시간을 포함하면 매일 왕복 2시간이라는 만만치 않은 시간을 길에서 소비하고 있습니다. 워킹맘에게는 이 길은 늘 초조한 단거리 레이스 같습니다.

사무실에서 직원들 중 제일 먼저 '퇴근 스타트'를 끊고 집으로 출발해도 집에 도착하면 오후 8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입니다. 학교에서 보내온 알림장이나 준비물을 점검하고, 책 한 권 읽어줄 뿐인데도 오후 9시가 넘어갑니다. 하루 중에 온전히 엄마를 볼 수 있는 이 1시간 동안 아이들은 엄마와 놀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죠. 하지만 오후 10시 전에는 아이들을 잠자리에 들게 해야 하기 때문에 "빨리빨리" 잔소리하며 재촉하지 않으려면 5분이라도 집에 더 일찍 도착하려고 애를 써야 한답니다.

퇴근 시간을 앞당기면 좋겠지만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기업에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결국 제가 통제 가능한 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없죠. 그래서 사무실에서 지하철 입구까지, 지하철 환승을 할 때, 지하철 입구에서 집까지 무조건 달립니다. 달리다 보면 저 같은 사람을 몇몇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슨 100미터 달리기 경주를 하듯 각자 목표한 열차를 타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거죠.

'출퇴근 레이스'를 위해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운동화. 워킹맘은 오늘도 달립니다.
 운동화. 워킹맘은 오늘도 달립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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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중 가장 혼잡한 역 중 하나인 잠실역은 아침 출근 시간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종종걸음을 합니다. 뛰는 사람도 더러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퇴근길에는 대부분 여유로운 모습이죠.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 도서실을 오갈 때 계단에서 뛰지 말라고 안전교육을 하지만 정작 저는 매일 저녁마다 지하철 환승통로와 계단, 횡단보도를 뜀박질하고 있습니다.

외국 직장 여성들은 출퇴근 때 편한 단화를 신고 직장에서는 굽이 있는 구두로 갈아 신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차린다고 하는데요. 요즈음은 주변에서 멋내기 가방보다 편하고 실용적인 백팩을 많이 사용하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또 단화를 신는 여성도 이전보다는 많이 눈에 띕니다.

그래서 저도 2~3년 전부터는 출퇴근을 위해 단화를 마련했습니다. 사무실에는 구두를 비치해두고 출퇴근시 갈아 신는 겁니다. 회사가 이사를 하는 바람에 환승을 포함하면 매일 왕복 2~3km씩 걸어야 합니다. 또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지하철 안에 서 있다 보면 허리가 아팠어요. 단화를 마련한 이유였죠. 단화를 신으니까 뛰는 게 더욱 자유로워졌습니다. 뒤꿈치에 밑창을 하나 더 넣어 저 멀리 횡단보도의 녹색 신호등이 깜박일 때 달려도 충분할 정도로 편합니다.

오늘도 엄마들은 달립니다

혼잡한 지하철.
 혼잡한 지하철.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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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기다릴 아이들을 위해, 아이를 봐주시는 돌봄 이모님의 퇴근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이들을 봐주시느라 진땀을 흘리고 계실 친정엄마를 위해 저는 매일 퇴근 시간마다 전력 질주합니다.

겨우 지하철 환승에 성공하면 열차 유리창에 비치는 저는 '헉헉' 숨이 턱밑까지 차 있습니다. 요즘같이 날씨가 제법 풀리면 뛰고 났을 때 땀이 나기도 하죠.

결혼 전, 아니 쌍둥이 남매가 태어나기 전에는 퇴근시간이 무척 여유로웠습니다. 사무실에서 퇴근을 서두르지도 않았고, 퇴근을 하더라도 친구와 약속을 하거나, 회식에 참석하거나, 가끔은 지하철역 한두 정거장 전에 내려 운동 삼아 걷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퇴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하기 위해 제가 콘트롤할 수 있는 시간, 즉 지하철 환승이나 지하철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대개 빠른 속도로 걷거나 뛰는 편이죠.

정장 차림에 백팩과 단화. 그리고 단화를 신고 달리는 아줌마. 지금 지하철에서 달리는 그녀는 바로 워킹맘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와 브런치(burnch) 매거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70점엄마, #워킹맘, #퇴근길, #100미터달리기, #쌍둥이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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