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도서관에서 고달픈 취업준비를 하는 대학생들.
 도서관에서 고달픈 취업준비를 하는 대학생들.
ⓒ 삽화작가 이남형

관련사진보기


[아들의 이야기] 청춘의 현실이 도사리고 있는 곳, 대학 도서관

공책 하나 달랑 들어있는 책가방을 한 쪽 어깨에 걸치고 도서관에 갔다. 가방은 열람실에 툭 던지고 나왔다. 옆에 친구는 서너 명 정도. 도서관 바로 앞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와 휴게실에 가서 먹었다. 떠들다가 내려와 술래잡기를 했다. 이게 중학생 때 동네 도서관에 대한 내 기억이다.

대학에 입학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돼간다. 이제 내게 더 이상 도서관은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노는 공간이 아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도서관에 갈 일이 많다. 안에는 각각의 사람들이 많다. 조별과제를 하느라 모여 있는 학생, 가까이 붙어서 연애를 하고 있는 학생, 혼자서 토익인지 토플인지 열심히 붙잡고 있는 학생 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도서관에 앉아 있다.

어렸을 때 학교 근처 도서관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모두가 진지하게 학업에 열중하는 모습이 멋있다. 하지만 모두가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서 읽거나 쓰고 있는 학습 교재가 인생의 전부인 양 여기고 있는 모습들이다.

도서관 앞에는 현수막이 여러 개 걸려있다. 토익 OO점 상승, 공무원 시험합격, 임용고시 합격 등 이런 내용 들이다. 다들 정말로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인지 궁금하다. 또한 왜 그렇게 까지 하는지도 사실 이해는 잘 가지 않는다. 이것이 현실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 갓 입학한 현실감각이 없는 스무 살 새내기는 술이나 먹으러 간다. 오늘 술자리에서는 한번 물어봐야겠다.

"야, 너희들 공무원 시험 생각해 봤냐?"

[아빠의 이야기] 설렘이 있던 그곳, 대학도서관

1980년대 중반에는 도서관에 앉아있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물론 어설픈 핑계일 수도 있지만 캠퍼스에 울려 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는 게 시대적 요구였다. 시위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중요한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려면 뒷면에 꽂혀있는 도서카드에 이름을 써야했다. 그 카드에서 흠모하던 여학생의 이름을 찾기라도 하면, 가슴은 두근 반 세근 반 합이 여섯 근이 되기도 했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도서카드 뒷면에서 이츠키를 발견했던 영화 <러브레터>처럼, 도서관의 책 대출카드는 단순한 기록의 의미를 넘어서 누군가의 체취가 묻어있는 하나의 흔적이었다.

지금은 도서관에서 가슴 설레는 이런 풍경을 찾을 수 없다. 여자친구의 자리를 잡아주는 데이트 공간이라는 낭만은 남아있다. 그러나 취업준비에 찌들어가는 청춘들의 삶이 저당잡힌 곳으로 전락했다. 제각기 다른 학과의 학생들이 똑같은 시험공부를 준비하는 세상에서, 도서관에서 찾는 진리의 세계는 이미 묻혀버린지 오래다.

재난영화 <투모로우>에 나오는 인물들이 쫒겨간 최후의 피난처는 도서관이다. 그들은 살인적으로 다가오는 빙하기를 도서관에 소장된 책을 태우며 버틴다. 그들이 생존한 마지막 공간이 도서관이라는 사실과 책을 태우며 살아났다는 장면이 던지는 은유적 메시지가 각별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지금도 전해야 하는 교훈임에 분명하다. 반면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문학을 정의내린 책을 찢어버리라고 말하는 장면처럼, 책을 태워 살아남은 이들의 생존법 또한 충분한 타당성을 갖고 있다.

도서관에서 나온 청춘이 술집에 갔단다. 지난주 갔던, 그리고 어제도 갔던 그 집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공무원 시험 준비는 언제부터 해야 해?"
"군대갔다 온 다음에 걱정하지 뭐…."
"야! 우리 학과가 공무원 준비하는 데냐?"

그런데 엊그제 봄날의 청춘은, 왜 기형도의 시 <빈집>을 아냐고 물어봤을까? 혹시 도서관을 보며 빈집에 갇힌 사랑을 떠올렸는지도.



태그:#도서관, #문학, #러브레터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주로 글쓰고 영상기획하고, 주로 대전 충남에서 지내고, 어쩌다 가끔 거시기 하고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