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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갑자기 과학계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간절히 기다려왔던 어떤 소식인가를 전해줄 것만 같은 셀렘. 그렇게, 온 인류는 2016년 2월 11일 역사적인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는 (아인슈타인이 예언했던) 중력파를 검출했습니다. 우리는 해냈습니다! (We have detected gravitational waves. We did it!)"

전날의 뉴스에서부터 '내일은 정말 중요한 날이 될 것이다' 하는 낚시성 인터뷰가 넘치더니, 이럴수가! 중력파를 발견했단다. 다국적 협업을 통한 중력파 연구집단인 '라이고 (LIGO)'는 중력파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연구 성과를 발표했고, 모두가 이 발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의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책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은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중력파를 찾아내기 위해 기울였던 그 수많은 노력에 대한 기술이다. 한국 중력파 연구 협력단의 연구자인 저자 오정근씨는 이 책을 기술하며 '사초를 작성하는 사관과 같은 마음이다'라고 밝혔다. 그의 말 대로 책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중력파의 존재를 예언한 이후, '중력파'를 증명해 나가기 위한 100년 동안의 역사를 기술해 내고 있다.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그 인고의 세월이 그려져서 놀라웠다.

아인슈타인은 1916년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통해 중력파의 존재를 예언했으나, 그 값의 크기가 너무도 작아서(10-21 수준의 숫자이다. 짐작이나 되는가? 인간의 머리카락 두께는 10-6 (μ) 수준이고, 원자의 크기가 10-10 (Å) 수준이다) 검출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증명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그저 '존재한다고 믿는' 존재였다(근사하지 않은가? 존재한다고 믿어야만 하는 '존재'라니! 이는 흡사 종교적인 표현이다).

심지어, 아인슈타인 스스로도 발표한 후 '증명'되지 않는 존재에 대한 애증이었는지 1936년에는 중력파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논문을 준비한다(결국, 수많은 학자들의 조언으로 논문을 철회하였지만 말이다).

자, 여기서 중력파라는 '미지의 존재'에 대해 상상을 더해보자(10-21 수준의 미약한 존재를 그대로 이해하기엔 물리학 식이 하는 얘기는 너무도 복잡하다). 잔잔한 호수가 있다. 누군가가 돌을 던지면 호수 표면에는 물결이 생기고, 학자들은 이를 '파동'이라고 부른다. 어떠한 공간의 변화는 파동으로 나타나고, 이것의 퍼져나가는 것으로 우리는 원하는 신호를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가장 직관적인 예시라면, '소리'이다. 공기로 채워진 지구에선 공기의 파동으로 소리의 전파가 가능하지만, 우주의 진공 상태에선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 2013) 초반 숨막히는 우주의 적막을 떠올려보라. 그렇다면, 중력파가 전달하는 정보는 무엇일까?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 중력파를 찾는 LIGO와 인류의 아름다운 도전과 열정의 기록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 중력파를 찾는 LIGO와 인류의 아름다운 도전과 열정의 기록
ⓒ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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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중력파라는 것은 중력의 변화에 의해 나타나는 매우 '미약한' 신호이다. 실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발생한다고는 하는데, 그 크기가 눈꺼풀이 움직일 때 생기는 소리보다도 작아서 알아챌 수가 없다(나에겐 물론 들리지 않는다. 눈꺼풀의 움직임이라니!). 따라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중력파는 매우 큰 중력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예를 들어, 거대한 중력을 가진 블랙홀이라거나, 극한 질량비를 가진 회전체 혹은 쌍성계, 또는, 거대한 폭발에 의해 나타나는 신호여야 한다는 것이다(이는 우주의 탄생을 가져왔다고 믿어지는 '빅뱅'의 결과물을 포함한다).

즉,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다는 것은, 우주의 사건들을 관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주 탄생의 비밀에 대해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자들이 매달리는 것은 당연하다.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결같이 믿어왔던 '존재'에 대한 증명이라니!

책을 통해 훑어본 중력파 검출을 위한 노력은 아인슈타인이 '존재한다'를 선언한 이후로 계속되어 왔다. 중력파와 관련하여, 과학계에서 가장 큰 스캔들 중 하나는 1967년 미국의 조지프 웨버의 중력파 검출 관련 연구였다. 그는 '상온 공명 바 검출기'라는 장치를 이용하여, 2미터 정도의 길이를 지닌 알루미늄 바의 변형을 측정함으로써 중력파를 검출하고자 하였다.

초반에는 이러한 직접 측정 방식이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수많은 '바 검출기' 추종자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그러나, 물질의 직접적인 변형에 의한 검출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미약한 중력파를 검출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후로, 희망을 잃고 혼란에 빠진 물리학자들을 구원한 것이 바로 '레이저 간섭'에 의한 중력파 검출이었다.

올해 2월 11일 중력파의 발견을 선언한 다국적 중력파 검출 컨소시엄인 '라이고 (LIGO: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프로젝트'는 레이저 간섭을 이용한 결과물이다.

이번 중력파를 관측한 하나의 관측대인 Livingstone observatory
▲ Livingstone의 LIGO 관측대 전경 이번 중력파를 관측한 하나의 관측대인 Livingstone observatory
ⓒ LIGO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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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MIT의 연구단은 '블루북'이라는 이름의 레이저 간섭을 이용한 중력파 검출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이것이 라이고의 시작이다. 실질적인 라이고의 설계자로 인식되는 라이너 와이스는 당시 MIT에서 레이저 간섭계를 이용한 중력파 검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력파'라는 증명하기 힘든 존재에 대해 미국과학재단은 쉽게 지원을 결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와이스는 글래스고우 대학의 로널드 드레버가 제안한 레이저 안정화 기법(파운드-드레버-홀 기법)과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이론물리학을 통해 중력파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오던 킵 손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중력파 검출 과제를 제안하게 된 것이다.

과제화가 결정된 후, 미국과학재단은 주변의 끊임없는 의심과 수많은 경쟁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검출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한다(MIT의 주도로 착수된 프로젝트는, 현재 전 세계의 협업자를 확보한 글로벌 협동연구로 확대되었다. 이번 중력파 검출에 대한 논문의 저자가 천명을 넘는다니, 규모면에서도 협업의 유지 면에서도 굉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30여 년이 지났다. 첫 번째의 증명 가능한 성과를 발표한 2016년까지 그들은 30년을 기다려야 했다. 2016년 2월 11일. 라이고는 약 13광년이 떨어진 우주에서 벌어진 '블랙홀 한 쌍의 러브스토리'를 발표한다.

그들의 발표에 의하면, 빛의 속도로도 13년이나 가야만 하는 우주 어딘가에서 태양질량의 36배가 되는 블랙홀과 29배가 되는 블랙홀이 서로의 바라보며 돌고 있었다고 한다(학자들은 이를 블랙홀 쌍성계라고 부른다). 예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중력을 지닌 이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회전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레벨의 중력파를 내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둘의 안정화 된 궤도는 중력파라는 형태로 에너지를 내보내면서 서로 간의 거리가 줄어들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학자들은 이를 '헐스-테일러 펄서'라는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1974년에 발표된 이론이고, '존재'를 의심받던 중력파에 대한 중요한 증거가 되어왔다. 이 이론에서도 회전하는 쌍성계는 중력파를 통해 서서히 에너지를 방출함으로써, 3억년의 세월이 흐른 후 충돌하여 새로운 별로 태어날 것이라 예측했다).

시간이 흘러, 이 거대한 두 개의 '사랑에 빠진' 블랙홀 역시, 서로 간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게 되고 상호간에 작용하는 중력의 영향으로 결국 충돌하게 되었다. 이 충돌을 통해, 온 우주가 알아챌 만한 신호를 전달하게 되었다. '우리 이제 결혼했어요!'라는 소란스러운 '공식 성혼 선언'인가 보다(아마, 태양계가 속한 우주도 '빅뱅'을 통해 우리가 태어났음에 대한 '선언'을 전달 했겠지? 여전히, 물리학자들은 우주 어딘가에 남아있을 그 '오래된' 신호를 찾아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들은 이를 '원시 중력파의 우주 배경 복사'라고 부른다고 한다).

태양보다 훨씬 큰 두 개의 블랙홀은 서로를 바라보며 자전하면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중력파를 내보내고 있다.
▲ LIGO가 관측한 블랙홀 쌍성계에 대한 가시화 태양보다 훨씬 큰 두 개의 블랙홀은 서로를 바라보며 자전하면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중력파를 내보내고 있다.
ⓒ LIGO home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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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둘은 태양질량의 62배인 새로운 블랙홀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이를 온 우주에 전달한 '기쁨의 메시지'를 우리가 받아낸 것이다. 2015년 9월 14일. 라이고는 그들의 놀라운 '러브 스토리'를 정확하게 포착해 내었고, 이 놀라운 소식은 우리에게 '중력파'의 증거로써 다가왔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100주년을 기념하며 말이다.

라이고가 관측한 역사적인 신호에는 GW150914라는 매우 무미 건조한 이름이 붙었다(2015년 9월 14일에 관찰된 중력파(Gravitational Wave)라니. 멋진 이름을 붙여주지 말입니다!). 그들은 이 신호를 입수하고도 2016년 2월 11일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왜냐고? 중력파라는 것의 크기가 너무도 작고, 실험용 장비에는 측정된 신호를 가뿐히 넘어설 수준의 노이즈를 포함하기 때문에 이를 제거해 내는 작업이 필요했단다. '30년을 기다렸는데 여섯 달을 못 기다리겠는가' 하는 자신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린 것은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는 존재인 '중력파'가 아닌가?

마침내, 인류는 아인슈타인이 1916년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후 정확히 100년이 지난 후에서야 '아인슈타인이 옳았음'을 증명하게 되었다. 세계 최고의 정밀도를 가진 레이저 간섭계인 '라이고'를 통해서 말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검은 외부의 존재'인 우주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이번에 도달한 신호도 인간은 절대 가볼 수 없는 곳에서 벌어졌던 일이었다).

우주의 중력장을 분석함으로써 넓은 우주의 지도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고, 벌어지는 사건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중력장과 시간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었던 <인터스텔라>는 우리가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우주여행, 우주전쟁, 다른 항성계로의 이주 같은 것 말이다.

1887년 전자기파의 존재가 헤르츠에 의해 증명된 이후, 인류가 겪게 된 수많은 변화를 짐작하는가?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전자기파는 우리의 삶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변화시켰다. 이젠 중력파가 가져다 줄 변화에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전자기파를 발견한 직후, 헤르츠의 푸념이 떠올라 생각을 방해하는 것은 무슨 이유지?

'이건 아무데도 쓸 데가 없다. 단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이 신비로운 전자기파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거장 맥스웰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에 할 일은 무엇인가?'
'글쎄, 아마 없을 것 같다.'

미국의 주도로 전 세계는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한 놀라운 협업을 진행했고, 30년의 기다림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한 중력파 검출기(10-20 수준의 정밀도)를 갖게 되었다. 책이나 관련 문헌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중력파 검출기에 적용된 기술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쉽게 얘기해 버릴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기술이 인류의 삶을 바꾸기 위해선 그것이 '아이디어'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라이고의 측정 정밀도를 가능하게 한 수많은 생산 기술들은 결코 빠른 시일 내에 달성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완성된 기술은, 인류가 필요로 하는 곳에 언제든지 적용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그들이 오랜 세월의 노력을 통해 달성한 성취를, '아이디어'만으로 하루 아침에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은 분명하다. 혹시라도, 오랜 노력을 통한 성취를 단시간의 조급증과 욕심만으로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할까봐 걱정스럽다.

우주의 비밀을 풀어내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과학계는 이런 새로운 시간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 왔고, 무엇을 기다려 왔으며, 지금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최근 이세돌 9단과 '알파고' 대결고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에 'AI 전담팀'을 설치해 논란이 되고 있다. 라이고가 중력파의 존재에 대해 답변할 때까지, 30년을 넘게 기다리고 지원해 준 정책 결정자들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또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과학자들이 있었음을 잊어서도 안 된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앞서 헤르츠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 당장 이것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짐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미 누군가는 그 변화에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린 답을 찾을 것인가, 늘 그랬듯이'? 궁금하다.

<중력파-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 오정근 지음(동아시아)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 - 중력파를 찾는 LIGO와 인류의 아름다운 도전과 열정의 기록

오정근 지음, 동아시아(2016)


태그:#오늘날의 책읽기, #중력파, #일반 상대성이론, #인터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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