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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우리나라 대기업을 '가난한 집 맏아들'에 비유한 책이 있었습니다.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소까지 팔아가며 맏아들만 대학에 보내고 동생들은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것에 우리나라 대기업과 국민을 비유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 이외에도 우리나라 대기업을 가정의 맏아들에 비유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가정이 평화롭고 잘 유지되려면 맏아들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어야 하듯이, 대기업이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우리나라 경제도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그런데, 동생들이 맏아들을 위해 희생했듯이, 우리나라의 일반 가계도 대기업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러한 희생의 예로 '가난한 집 맏아들' 에서는 과거 고도성장기의 친일재산 불하, 외환제공, 낮은 금리, 경쟁 제한 및 세제 혜택 등의 대기업 집중육성정책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과거에 희생한 것들 이외에, 최근까지 아니 현재에도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대기업에 혜택을 주는 제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혜택에는 제로섬 게임의 성격이 있어서, 대기업에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일반 가계들이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삼성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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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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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기업의 원가 이하 전기요금 혜택이 2조 원 넘어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전기 요금입니다.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이 OECD와 비교하여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주택용의 경우가 상대적으로 높고 산업용 전기가 상대적으로 더 낮습니다. 산업용 전기의 경우 원가 이하로 공급되고 있어 감사원에서 지적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전력이 하나의 기업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산업용 전기에서 발생한 손실을 주택용 전기에서 벌충해야 합니다.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을 유지하기 위해 일반 가계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원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대기업에 원가보다 낮게 판매한 전기요금이 5조 원이 넘는다고 발표했습니다. 더 최근 자료로는 2014년 국정감사과정에서 한국전력이 추미애 의원실에 제출한 것이 있습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00대 기업에게 원가 이하로 할인해 준 금액이 2조 487억 원 이라고 합니다. 매년 약 2조 원 만큼 가계가 대기업에 지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표1] 원가 이하로 전기요금 할인 받은 대기업
원가 이하로 전기요금 할인 받은 대기업
 원가 이하로 전기요금 할인 받은 대기업
ⓒ 추미애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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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추미애 의원실, 조선일보 기사에서 재인용)

대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액, 연간 4조 원

대기업에 주는 또 다른 혜택으로 세금 감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국세 감면액에 한도가 정해져 있습니다. 정부가 정책 상 필요하다고 무한정 세금을 깎아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득세를 깎아줄 것인지 법인세를 깎아줄 것인지 선택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만약, 일반 가계의 살림살이가 어려워 세금을 더 깎아주려고 해도 법인세 감면액을 줄이지 않고서는 해 줄 수가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정부는 매년 예산안과 함께 조세지출예산서라는 자료를 국회에 제출합니다. 이 자료에는 연간 국세를 총 얼마나 감면해 주는지, 그 감면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가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2016년 조세지출 예산서를 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기업에 감면해 준 금액이 연 평균 10조 원 정도가 됩니다. 이 중에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 깎아준 금액을 제외하면 연 평균 4조 원 정도를 상호출자제한기업 등 대기업에 감면해 주고 있습니다.

[표2] 조세지출의 수혜자별 귀착
조세지출의 수혜자별 귀착
 조세지출의 수혜자별 귀착
ⓒ 2016년도 조세지출예산서,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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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2016년도 조세지출예산서, 기획재정부)

고환율 정책에 따른 부(富)의 이전 효과도 상당해

대기업에 주는 혜택으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환율정책이 있습니다. 환율이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놔둔다고 하면, 정책에 따른 지원효과가 없습니다. 하지만, 환율을 인위적으로 올리면 수출대기업은 이득을 보고, 소비를 하는 가계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소비하는 물품 중에서 수입공산품이나 수입농산물처럼 직접 수입한 것도 있고, 수입한 물품을 원재료로 사용한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2007년 연평균 환율이 929원 정도였으나, 2008, 2009, 2010년의 연평균 환율은 각각 1103원, 1276원, 1156원 이었습니다. 2008년 리먼 사태로 인한 환율 급등 효과가 있긴 하지만, 정부의 고환율 정책에 따른 효과도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습니다. 환율정책으로 인한 부(富)의 이전 효과는 매우 큽니다. '고환율의 음모'라는 책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 정책에 따라 국민들이 손해 본 금액이 3년간 174조 원이라고 추정한 바 있습니다.

책에서 나온 추정은 좀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환율 정책으로 환율이 100원 올라갈 때 부(富)의 이전효과를 간단하게 계산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2015년 수출액은 5268억 달러, 수입액은 4365억 달러입니다. 이 중에는 수출용 수입(1596억 달러)이 있으니 우선 제거해 주어야 합니다. 내수용 수입 중에서도 원자재 수입과 자본재 수입은 효과가 복잡합니다.

그 원가인상 효과를 내수용 기업이 감당했을 수도 있고, 수출기업이나 소비자에게 전가했을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계산하기 위해 내수용 수입 중 원자재 수입과 자본재 수입 전체를 제거하려면 2150억 달러를 빼 주면 됩니다.

이렇게 수출용 수입과 내수용 수입 중 원자재와 자본재 수입을 제거한 금액에 환율 100원 인상에 따른 원화 금액 증가분을 계산해 보면, 각각 15.2조 원과 6.2조 원이 됩니다. 즉, 환율을 인위적으로 100원 끌어올린다고 하면, 수출대기업은 15.2조 원 정도 이득을 보고 일반 가계는 6.2조 원 정도를 손해 보는 셈입니다.

[표3] 환율에 따른 부(富)의 이전 효과 추정
고환율 효과
 고환율 효과
ⓒ 관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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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한국무역협회)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위의 세 가지 정책(전기요금, 세금감면, 고환율 정책)은 제로섬 게임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가계의 피해 없이 대기업에만 혜택을 주는 제도가 아닙니다. 정책이 기반하고 있는 제도의 성격 상 가계의 희생이 있어야만 대기업에 혜택을 줄 수 있는 정책입니다.

대기업, 현재 받고 있는 혜택만큼 역할해야

경기 악화로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고 가계의 살림살이가 어려워 지고 있어, 보편 복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표적인 보편 복지인 누리과정 예산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난항입니다. 법적인 측면도 있지만 핵심은 그 재원을 감당할 여력이 지방교육청에도 없고 중앙정부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지난해 담뱃세 인상으로 그 전해보다 일반 가계가 부담한 세금이 3.6조원입니다. 가계들보고 더 부담하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암울합니다. 이제는 정말 대기업이 나설 차례가 되지 않았을까요? 적어도 대기업이 최근까지 또는 현재에도 가계의 희생으로 받고 있는 혜택 만큼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미 장성하여 안정적인 기반을 갖춘 맏아들이 그 책임마저 회피한다면 그 혜택을 끊는 것이 마땅한 다음 수순이 될 것입니다.


태그:#대기업 증세, #산업용 전기, #조세감면, #고환율 정책, #누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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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조세재정팀장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으로 일하는 회계사입니다 '숫자는 힘이 쎄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 쎈 숫자를 권력자들이 복잡하게 포장하여 왜곡하고 악용하는 것을 시민의 편에 서서 하나하나 따져보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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