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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 있으라"침묵행진 때 찍었던 용혜인 후보의 사진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 있으라"침묵행진 때 찍었던 용혜인 후보의 사진입니다.
ⓒ 안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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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의 꿈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빚을 전부 갚는 거다. 수능을 얼마 앞둔 시점, 엄마는 내게 처음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보여줬다. "엄마는 명진이가 훌륭한 사람이 돼서 엄마 빚 좀 갚아줬으면 좋겠어." 그때 나는 처음으로 가난을 체감했고, 그때부터 내게 훌륭한 사람이란 빚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놈의 빚, 그림자처럼 떼어낼 수 없는 지긋지긋한 그 빚. 그리고 그에 비례해서 늘어갔던 우리 엄마의 근무시간. 저녁 9시가 되어도 퇴근하지 못하는 엄마를 기다리며 정말이지 참 막막했었다.

최근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을 선언했었다. 한국 경제 역시 그 구조적 특징으로 인해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 12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의 일부인 엄마와 나는 이제 어떻게 될까. 엄마의 초라한 월급통장에서는 또 얼마간의 인상된 대출이자가 인출될 테고, 나는 언제나처럼 용돈 달라는 말을 죄스러워하며 두 번, 세 번 고민해야 하겠지.

그 와중에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정부당국은 그 대책으로 서민금융을 확대한다고 했었다. "서민금융 공급 확대", 그 세련된 말의 동의어는 우리 엄마가 다시 한 번 국민은행 대출창구에 도장을 들고 고개를 들이밀어야 한다는 말일 테고,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또 한 번 줄어든다는 말이겠지. 빚으로 빚 갚으라는 나라. 무려 경제부총리쯤이나 되는 사람이 공개적으로 국민경제의 "돌려막기"를 선언하는 나라에서, 대체 우리 엄마는 언제쯤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아니 도대체, 우리 엄마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줄 정치인이 존재하긴 하는가. 나는 정치인들이 끔찍이도 싫었다.

96년, 한국의 신자유주의화와 함께 노동이 유연화되고 임금이 줄면서 대출의 이유들 중 급격히 늘었던 명목이 있다. 바로 '생계형 대출'. 누군가는 먹고 살기 위해, 옷을 사 입고 밥을 사 먹기 위해 돈을 빌려야만 한다는 의미다. '빚'이라는 링겔 없이는 연명 불가능한 한국경제의 음습한 변두리. 바로 거기에 엄마와 내가 곰팡이처럼 피어 있었다.

가계의 빚이라는 그림자를 달고 시작한 나의 대학생활은, 말하자면 눅눅했다. 학교가 끝나면 과외를 뛰었다. 그나마 시급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용돈만이라도 내가 벌어 내가 써야지, 하는 다짐은 사회 일반이 생각하는 '청년다움'을 저당잡았다.

강의 끝나고 흔히 가지는 술자리에는 언감생심 참여할 수 없었다. 동아리 뒤풀이를 한 번 가지면, 으레 회비는 만원을 상회한다. 한 시간 넘게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감히 '청춘'을 즐긴다는 명목으로 낭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숙사 통금은 12시였지만, 나는 언제나 학교에서 적어도 10시엔 출발했다. 혹여나 지하철을 놓치고 택시를 타면 이틀 치 생활비가 날아가니까. 아무리 특별한 날이고, 아무리 즐거운 술자리여도 나는 동기들과 언제나 조금씩 일찍 헤어져야만 했다.

아직 누나라는 호칭이 더 편한, 나의 학교 선배였던 용혜인 후보는 그런 내게 술이며 밥이며 많이 챙겨줬었다. "많이 힘들지? 다 알아. 나도 그랬으니까." 그녀는 처음엔 나를 말없이 위로하다가, 어느샌가 나와 함께 거리에 있었다. 함께 책을 읽었고, 내게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말하자면 그녀는 내게 앞이 아니라 옆을 보게 했고, 고민의 답을 찾아주기보다는 왜 같은 고민을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었다. 약자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강자에 대한 분노를 가르쳐주었던 선배였고, 사적인 '화풀이'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 제기'를 앞장서 실천했던 선배였다.

이를테면 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이 그러했고, 인권네트워크 '사람들' 대표활동이 그러했으며, 알바노조의 대학팀장으로 수많은 알바들의 '민원 해결'을 도맡아오던 모습이 그러했다. 나에게 용혜인은 그런 "누나", 그런 "선배"였고, 이제는 그런 "후보"다.

내게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가르쳐준 선배 용혜인이, 이번 총선에서 꼭 국회의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출마선언문에서, '우리의 삶을 짓누르는 우리의 수레바퀴'를 함께 들어 올리겠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라는 말에서 느꺼워졌다.

이번에도 용혜인은 타인의 수레바퀴가 또한 자신의 수레바퀴라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자가 지고 있는 짐이 또한 우리 모두의 짐이라는 통찰, 나는 그것 하나만으로 용혜인이 국회의원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의 선거를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도울 생각이다. 기탁금도 대출을 받아 낼 생각이라는 우리 용혜인 후보. 조금이라도 그 짐을 나눠 들고 싶다. 지난 3년의 대학생활에서 그녀가 함께 들어준 짐을 이제는 내가 빼앗아 들 차례다. 그리고 이게 퍽 많이 남는 장사다.

혜인 누나가 당선만 된다면, 나 같은 수많은 빚쟁이 청년들의 "수레바퀴"를 기꺼이 함께 들어줄 것이기 때문에. 동시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우리 엄마의 "수레바퀴"를 들어줄 것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녀에게 '지렛대'를 허하자. 우리 삶을 짓누르는 수레바퀴를 번쩍 들어 올릴, '법'과 '정치'라는 주권의 지렛대를.


태그:#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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