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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선거철이 되면 주위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입니다. 후보로 나선 사람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큰 차이가 없고, 이 때문에 그들 중 누가 당선되든 우리 삶에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말. 그래서 선거에 관심을 두는 것보다 일상적인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을 믿고 있습니다만, 이 말은 그렇게 신빙성 있는 말이 아닙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 누가 국회의원이 되는가는 우리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이 같은 나물도, 같은 밥도 아닌 까닭입니다. 물론 그들 간의 차이가 크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나비의 날갯짓이 태평양을 건너면 폭풍으로 변한다는 '나비효과'처럼 때론 매우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제임스 길리건의 저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제임스 길리건의 저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 출판사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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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그의 저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를 통해 정치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습니다. 제임스 길리건은 오랜 기간 미국에서 일어나는 폭력 문제를 연구해온 학자입니다.

그는 미국 사회의 폭력 문제, 즉 살인율과 자살률의 증감에 어떠한 요인이 영향을 주었는지를 연구하던 중 특이한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정당이 백악관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미국 사회의 극단적 폭력 사건 발생 빈도가 크게 요동을 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자살률과 살인율을 분석해 그래프를 만들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래프에는 세 번의 산봉우리와 세 번의 골짜기 형태가 나타났습니다. 그래프가 산봉우리 형태를 띠는 시기는 공화당이 정권을 잡았던 시기입니다. 그래프가 골짜기 형태를 띠는 시기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던 시기입니다. 공화당이 정권을 잡으면 자살률과 살인율이 증가하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두 비율이 모두 감소했던 것입니다.

공화당, 민주당 집권기 미국의 폭력행위 증감률
▲ 미국 폭력행위 증감률 공화당, 민주당 집권기 미국의 폭력행위 증감률
ⓒ 출판사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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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집권 정당에 따라 자살률과 살인율 변화?

이러한 현상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자살과 살인의 발생률은 공화당 대통령이 취임하면 늘기 시작해 임기 말에는 최고점에 달했습니다. 반대로 민주당 대통령이 취임하면 줄기 시작해 임기말에는 최저점에 도달했습니다. 이는 일관된 현상이었습니다. 1900년부터 2007년까지 공화당 집권기에 살인율과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19.9명이 증가했고, 민주당 집권기에는 18.3명이 감소했습니다.

제임스 길리건은 이 현상을 발견한 뒤 처음엔 우연의 일치가 아닐까 의심했지만, 다른 변수들이 살인율과 자살률의 증감에 미친 영향은 유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나 경제적 상황조차 말입니다. 대통령의 출신 정당의 차이는 자살률과 살인율의 증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였습니다.

이는 각 당의 경제 정책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공화당은  고용이 많아지면 지출이 커질 수밖에 없는 부자들의 지지를 많이 받기에 (그들과 이념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실업률을 높이는 정책을 폅니다. 이 때문에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됩니다. 민주당은 서민들의 지지를 받기 때문에 (그들과 이념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실업률을 낮추는 정책을 펴며, 이 때문에 경제적 양극화는 완화됩니다.

주지하다시피 실업이나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차이가 심화되면 될수록, 그것은 인간의 심적인 요소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때론 우리에게 수치심을 부여하고 또 때론 우리를 절망하게 합니다. 이러한 수치심이나 절망이 참을 수 없는 만큼 높아지면 사람들은 자살이나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정치에 무관심해선 안 되는 이유

제임스 길리건의 그래프에 나타난 변화는 백악관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의 소속 정당이 어떠한 정책을 펴는지에 따라 일상에서 사람들이 저지르는 극단적인 폭력 행위가 증감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우리의 편견과 달리 정당 간의 미세한 차이가 우리 삶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정치를 소홀하게 생각하고, 시민의 고귀한 권리인 선거권을 포기해도 되는 것일까요?

제임스 길리건의 이야기는 미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역시도 그간 어떠한 정당이 청와대의 안주인이 되느냐에 따라 우리 삶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을 경험해왔습니다. 정치는 이처럼 우리 삶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삶의 방향계입니다.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제임스 길리건은 자신의 저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정치인은 해로울 수 있다. 그러나 분명 어떠한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덜 해롭거나 더 해롭다."

향후 4년간 국회에서 우리를 대변할 사람들, 국회의원을 선출해야 하는 4.13 총선이 이제 두 달 남짓 남았습니다. 여러분은 4.13 총선에 참여하실 것입니까? 어떠한 후보가 우리에게 더 나은 후보인지 혹은 덜 해로운 후보인지 판단하고 계십니까? 정치가 더럽다고 피해선 안 됩니다. 미국의 예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비교적 덜 해로운 사람을 우리의 대표로 선출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정치에 대한 관심, 선거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아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 정치와 죽음의 관계를 밝힌 정신의학자의 충격적 보고서

제임스 길리건 지음, 이희재 옮김, 교양인(2012)


태그:#20대총선, #제임스 길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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