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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25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반대해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25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반대해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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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 좌익효수, 정말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공개적으로 만남을 요청합니다. 안 때릴 테니까, 욕 안 할 테니까 꼭 한번 봅시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던 영화 <살인의 추억>의 카피가 떠오른다. 25일 오후, 총 4시간 46분 동안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신경민 의원의 한 국정원 직원을 향한 절절한 구애(?) 말이다.

2013년 발간한 <국정원을 말한다>의 저자이기도 한 신 의원은 "오피스텔 대선 댓글 공작과 NLL 작전 그 배후에 숨어 있는 국정원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저서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 국정원의 죄(?)를 탈탈 털어 냈다. 이날 신 의원이 (국정원의) 죄 읽어주는 남자, '죄읽남'이 된 이유다.

'홀리버스터', '한숨요정'이란 닉네임을 얻으며 유튜브 생중계 댓글창을 폭발시킨 다음주자 강기정 의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물로 시작해 성경 구절을 읽는 목사님의 설교 톤으로 생중계 시청자들을 매료시킨 더민주 강기정 의원은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 "돈 받고 그렇게 나쁜 짓 하면 안 됩니다, '십알단'들"이라고 호소(?)했다.

국정원 직원의 '셀프 감금' 사건과 관련한 재판에 계류 중이라고 소개한 강 의원은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국민의 안전, 테러방지법 대신 국정원 개혁부터" 연재 글을 소개하며, "대테러방지법이 아니라 국정원 강화법"이라고 강조했다. 테러방지법이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해 국민의 인권과 기본권을 전방위로 옥죄고 침해할 상황의 공포를 설파한 것이다.

'마국텔(마이국회텔레비전)'이란 신조어를 낳은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는 테러방지법과 관련한 국정원의 실상에 관한 대국민 '이론 교재'라 할 만하다. 더불어 쉽게 찾아 볼 수 있으며 이야기가 탑재된 시청각 자료 역시 존재한다. 테러방지법 이전, 소위 '걱정원'이라 불리는 국정원의 활약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생생한 자료되겠다.

전직 정보국 요원이 활약하는 <동네의 영웅>, 좌익효수는?

드라마 <동네의 영웅>의 한 장면.
 드라마 <동네의 영웅>의 한 장면.
ⓒ 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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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동네의 영웅>의 주인공은 전직 정보국 요원이다. 달리 말해, '잘린' 요원이다. 석연치 않은 정보국 내 지시로 해외 공작이 좌절됐던 경험을 지닌 그는 후배의 억울한 죽음과 함께 3년간 복역한 후 풀려난다. 그리고는 자신을 내친 정보국에 복수를 꿈꾸게 된다.

영화 <의형제>를 통해 배우 송강호를 국정원 직원으로 변신시켰던 장민석 작가는 '국정원 댓글' 사건 이후 까발려진 실상을 그려나간다. 드라마 속 정보국은 (십알단을 연상시키는)하청업체에 막대한 돈을 써가며 민간인인 퇴직 요원들을 사찰한다. 또, 자본을 쥔 권력층과 손잡고 (동네로 은유되는)한국 사회와 시민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조직이다. 생계형 부패 경찰을 돈으로 유혹해 증거인멸까지 자행하는 행태도 서슴지 않는다. 한마디로, '퍼블릭 에너미'다.

금권과 조직원, 정보를 모두 쥐고 감시와 사찰을 일삼는 국가 정보기관. 드라마 속 정보국은 아직 오프라인 감시에 주력하는 기관이다. 허나, '테러'라는 허울 좋은 미명하에 국정원이 스마트폰과 메신저를 감청하고, 개인의 계좌까지 쉬이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드라마 속 정보국의 편에 섰던 부패 경찰은 아마 개과천선해 주인공의 편에서 정보국에 맞설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 '좌익효수'나 '셀프감금' 직원은 여전히 국정원 직원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이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된다? 국민의 세금을 월급으로 받으며 국민들을 감시하고 댓글을 달 국정원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지 않은가.

전도연이 리메이크할 미국드라마 <굿와이프>, 생생한 감청의 공포

드라마 <굿와이프> 속 NSA 감청 사무실.
 드라마 <굿와이프> 속 NSA 감청 사무실.
ⓒ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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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전도연의 리메이크판 캐스팅 소식만으로 화제를 모았던 미국 드라마 <굿와이프>의 주인공은 조금 특별한 여성 변호사다. 그녀는 잘 나가는 검사였다가 스캔들로 좌초한 남편을 대신해 직업 전선에 뛰어든 아내이자 초짜 변호사였다. 몇 년 후, 주인공은 자신의 능력으로 변호사로 승승장구하고, 남편 역시 시카고 주검사장을 거쳐 주지사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하지만, 미 국가안보국(NSA)의 광범위한 휴대폰 감청은 현직 주지사의 아내이자 현직 변호사도 비켜가지 않는다. 아니, 비켜가기는커녕 오히려 방송에까지 출연하는 유명인에 대한 도청이기에 NSA 직원들은 더 신나한다. 주인공이 감청을 당해야 하는 까닭? 휴대폰 통화 내용 중 아랍계 의뢰인을 언급했다는 게 이유의 전부다. '찍히면 당해야'하는 것이다. 

마치 거대 텔레마케팅 회사의 구조를 연상시키는 <굿 와이프> 속 NSA 도감청 부서 직원들은 일반인들의 통화 속 단어를 필터링 해 도청 대상을 고른다. 이를 테면, '테러', '9.11', '중동' 등 기준도 단편적이고 자의적이다. 이렇게 미국 사회의 현안을 즉각 반영하는 걸로 유명한 이 법정 드라마는 실제 오바마 정부가 공인한 NSA의 활약(?)을 꽤나 공을 들여 생생하게 묘사한 걸로 유명하다. 

다시 우리네 당면한 현실. 지난 24일, 필리버스터에 나선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여당 의원들을 향해 "평생 여당하실 거 아니잖아요! 이 (테러방지)법, 야당 되면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라고 '사이다' 발언을 날렸다. 아니, 살짝 틀렸을지도 모른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얼굴을 떠올려 보자. 테러방지법 통과 이후 국정원의 감청과 정보수집의 권한이 강화된다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여당 의원일지라도 행여 자비가 주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우리는 지난 2012년, 비등한 예로 이명박 정부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이용훈 전 대법원장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정두언 의원 등을 사찰했던 경악할 만한 사건을 겪지 않았던가.  

그리고, <시티즌포> 스노든은 몰랐을 한국식 '마이국회텔리비전'     

SNS 상에서 화제가 된 '마이국회텔리비전'.
 SNS 상에서 화제가 된 '마이국회텔리비전'.
ⓒ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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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테러방지법은 정권유지와 보호에 충실해왔던 국정원을 CIA가 아닌 NSA로 만들고야 말 것이다. 해외 정보활동에 유독 취약한 국정원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찰과 도감청을 국민의 세금으로 일삼는다는 상상만으로 끔찍하지 않은가. 작년 가을, 박근혜 정부와 여당이 국정원의 막대한 특수활동비를 두둔했던 것은 테러방지법의 서막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에게 미국의 무시무시한 상황을 경고 받은 바 있다. 작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시티즌포>를 통해서다(관련 기사 : 내부고발자 스노든이 한국 사회에 보내는 경고). 스노든과 그의 고발에 동참한 암호보안 전문가는 영화에서 각각 이렇게 말한다.

"결국 정책의 변화가 있어야지만 국가(의 불법 행위)를 제지하고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단순한 반대는 의미가 없어요. 아주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죠. 어떤 뛰어난 개인이나 집단이 가능한 수단과 능력을 동원해도 힘들어요. 오바마 행정부가 처음의 약속을 배신하고 계속 이탈해 가는 걸 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죠."

"이전에 자유와 자유권이라 부르던 것들을 이제는 사생활이라고들 한다. 동일한 관점에서, 이제 그 사생활은 사라졌다. 작금의 세대에서 진짜 우려되는 건, 이제 (이런 상황에 대해)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최소한 국정원과 관련해 배신 따위란 없는 듯 보인다. 집권 초반, '국정원 댓글' 사건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감찰과 퇴진에서 보듯 우직하게 밀어붙이기만 할 뿐이다. 그 결과가 '국정원강화법'인 테러방지법인 셈이다. 스노든은 (정보기관과 관련한) 정책 변화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테러방지법 역시 두말할 나위 없다.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고 해도, 국정원을 변화시키기까지 현실적인 어려움과 피로감을 감당해야 할 필요가 없지 않나.  

스노든이 주는 교훈은 우리가 진행 중인 필리버스터를 주목해야 하는 당위와도 맞닿아 있다. 3박 4일 동안 진행 중인 필리버스터는 (스노든이 언급한) "단순한 반대"가 아니다. 10명이 넘는 야당 의원들이 평균 5시간 동안 테러방지법의 해악을 역설하고, 생중계 시청자들이 지켜보며, 언론이 언급한다. 점진적으로나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와 정치인의 진면목을 확인할 기회가 되어 주고 있다.

그걸 즐기는 유권자들도 있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필리버스터 릴레이'와 '필리버스터 정보' 사이트를 보라. SNS와 유튜브 실시간 댓글을 확인해 보시라. 개인의 사생활을, 자유권을, 인권을 정부와 국정원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목소리가 차고 넘친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미안하지만, '마이국회텔리비전'은 분명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없는 기가 막힌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테러방지법을 포기하셔도 좋을 만큼.

SNS 상에서 화제가 된 강기정 필리버스터 패러디 사진.
 SNS 상에서 화제가 된 강기정 필리버스터 패러디 사진.
ⓒ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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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필리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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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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