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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서약서의 내용을 읽어주는 동안에 입양자들은 서약서를 꼼꼼히 읽고 서약을 한다. 그 과정을 일명 시어머니, 시아버지들이 보고있는 장면이다.
▲ 입양자들이 서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앞에서 서약서의 내용을 읽어주는 동안에 입양자들은 서약서를 꼼꼼히 읽고 서약을 한다. 그 과정을 일명 시어머니, 시아버지들이 보고있는 장면이다.
ⓒ 김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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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전날 내린 비로 갑자기 추위가 한걸음 다가와 매우 추웠지만, 그 날은 수원시 동물사랑실천단에겐 무척이나 특별한 날이었다. 5살의 에이미와 4살의 킹의 사랑의 결실인 세 마리의 강아지가 새로운 가족을 찾았기 때문이다.

공장식 도축은 반대하면서, 공장식 강아지는 왜 반대하지 않을까

우리가 흔히 먹는 고기들은 대다수 공장식 축산 과정을 거친다. 비좁은 우리 안에 돼지나 소, 닭등을 가둬놓고 강제로 발정을 시켜 억지로 개체수를 늘린다. 그것도 모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고기의 품질이 떨어진다며 꼬리를 자른다던가, 이를 뽑고, 발톱이나 부리도 뽑아버린다.

사람에게는 인권이 필요하다며 부르짖지만, 동물들은 아직까지도 기본권이 없다. 최근 스트레스를 받으며 길러져 도축된 동물들이 사람에게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브랜드 도축'이라는 이름으로 좋은 환경에서 자라며 도축된 고기들을 따로 팔기도 한다.

그렇게 공장식 도축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사라져야 할 '공장식'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중 하나가 '강아지 공장'이다. 좁은 케이지를 쌓아놓은 더러운 공간에서 약물을 먹이고 조명을 조절해가며 시간을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게 해 임신을 서두른다. 이런 방식으로 산후 조리도 하지 못한 채 아이들만 지속적으로 낳는 모견을 모인 곳. 그곳은 마치 강아지를 찍어내는 공장 같다고 해 강아지 공장이라고 부른다.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병들어 강아지를 더 이상 낳지 못하는 나이든 모견이나, 임신을 하지 못하는 불임견의 경우, 바닥이 떠 있는 케이지에서 아무런 관리도 받지 못하고 있다가 죽은 후에는 커다란 기름통에 그득이 담겨 버려진다. 그들에게 개란 강아지를 생산해내는 '기계'일 뿐이고, 강아지란 돈을 주고 파는 상품일 뿐이다.

슬픈 것은, 무작정 '강아지 공장'만 없앤다고 해서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아지 공장에서 생산된 강아지들은 예쁘고 조그마한 사이즈일 때 경매에 붙여지고, 입양을 가기 위해 먹어야 할 것을 못 먹으며 자란다. 그리고 그 경매와 입양 과정을 거치며 강아지들은 강아지 공장장이 받은 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액수로 뛰어오른다.

강아지 공장은 많은 강아지를 팔아야 하고, 경매하는 사람은 그 많은 강아지에게 몇 배의 이윤을 붙여서 팔아넘긴다. 강아지 공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매장까지 해결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모견의 고통으로 낳은 강아지가 경매·입양을 거쳐 공장식 강아지들은 당신 품에서 어여쁜 동생 혹은 자식으로 지금 자리하고 있다.

수원시 동물사랑실천단은 생각했다

수원시는 지난해부터 24시간 유기견 포획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유기견들을 17개의 동물병원에서 분담해 돌보기 시작했다. 17개의 동물병원에 온 아이들은 보호소에서는 더 이상 보호할 수 없는 아이들이 와서 많은 강아지들이 새로운 가족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수원시 동물사랑실천단은 뭔가 아쉽다고 생각했다. '그저 주고나면 끝인걸까? 그러면 정말 그 아이와 우리 둘 다에게 좋은 일일까?' 많은 고민 속에서 동물사랑실천단은 특별한 계획을 세웠다.

누구나 한번쯤은 내가 정말 외로운 날에 나를 달래고 힘이 나도록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별한 계획은 이 경험에서 시작됐다. 유기견이라고 함은 외로이 길에 버려진 아이들이 아니던가.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유기견처럼 외로운 사람들이 있었다. 65세 이상이의 홀몸노인, 장애인, 국가유공자…, 나이가 많아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고, 불편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긴 사람들에게 인생의 동반자이자 가장 소중한 친구를 만들어 주고자 유기견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명을 갖고 떠난 아이들은 '사회적 역할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흔히들 개들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라고 함은 장애인 도우미견을 떠올리곤 할 것이다. 하지만 동물사랑실천단은 꼭 재주를 갖고 있지 않아도, 배우지 않아도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양로원이나 독거 노인들의 품으로 갔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가게 앞에서 데려갈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어른이 있다는 말에 강아지를 준비해 그 가게 앞으로 갔더니 데려간 사람은 보지도 않고 바로 "이 아이가 그 아이에요?"라고 하시며 너무나 좋아하시던 어르신도 계셨다. 그리고 그 뿌듯한 과정들 속에서 또 다른 뿌듯하고 너무한 감사한 일이 생겼다. 양로원으로 사회적 역할견을 떠난 에이미와 킹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렸다.

출산·산후조리까지... 60명의 어머니·아버지가 있었다

에이미는 만삭이 다 돼 출산을 준비하고 산후조리를 하기 위해 동물사랑실천단으로 돌아왔다. 에이미가 출산할 시기가 다가오자 모두는 조심조심 에이미가 어머니가 돼가는 과정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실천단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근처의 가까운 동물병원의 힘도 빌렸다. 공장과는 달리 안전하고 깨끗한 시설에 머무르며 깨끗한 물과 영양분이 충분한 사료를 지급했다. 많은 과정에 세심한 손길이 필요했지만, 아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그 고생을 모두 잊게 해줄 만큼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다가오다가 지난해 12월 23일이 됐다.

놀랍게도 에이미가 건강하게 아이들을 출산한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이었다. 모두가 마음 편히 크리스마스를 보내도록 배려라도 하듯, 에이미는 오전부터 자기 자신과의 사투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강아지와 모견이 모두 건강한 것이 1순위었다. 모두들 실천단원들이 만든 단톡에 에이미가 진통을 시작했고 곧 아이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리자마자 힘내서 아이를 안전하게 낳았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메시지가 계속 올라왔다.

60명 모두가 에이미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인 것처럼 전전긍긍하며 기다렸다. 1시간에 한 마리씩 애가 탈 정도로 천천히 나왔다.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강아지와 모견인 에이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에이미는 다행이 아들 하나와 딸 둘을 건강히 낳았다.

모성애가 강해서 자신의 아이에게 관심을 안가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이건 필요 없는 걱정이 됐다. 에이미는 한 달하고도 반이라는 긴 시간동안 아이들을 애지중지 길렀다.

아이들의 입양식에는 24명의 시어머니·시아버지가 계셨다

동물사랑실천단은 1월 말즈음부터 아이들의 입양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역할견의 임무를 아기 강아지들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위해 아이들을 1박 2일씩 분담해 길러보는 체험을 세 번에 걸쳐 아홉 명이 거쳐갔다. 이후 확신이 서자 바로 입양처를 물색했다.

입양자들은 엄격한 기준으로 받았다. 동물사랑실천단의 단원이거나 단원의 열렬한 지지가 필요했다. 단원들은 모두 시어머니·시아버지가 돼 꼼꼼하게 입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분양이 취소되는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지난 2월 14일 모든 아이들이 가족을 찾아갈 수 있게 됐다.

입양식 당일은 생각보다 많이 추웠다. '애들을 보내는 날인 만큼 따뜻하면 좋을텐데…'라고 생각하던 단원들은 사무실에 들어오자 모두들 웃음꽃을 피웠다. 아기 강아지 세 마리와 어미인 에이미 그리고 이전의 행사에서 좋은 가족을 찾아갔던 아이들까지 이번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사무실로 집합했다. 개 여섯 마리가 마구 뒤엉켜 뛰어다니기 바빴다. 날씨가 좋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가족을 아이들에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에 마음 깊이 감사했다.

아이들의 새 가족이 되어주실 분들은 우리 앞에서 좋은 가족이 돼주겠다는 서약을 하셨다. 그리고 아이들과 지낸 시간동안의 사진을 모두 모아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상영하고 아이들과의 시간을 곱씹어봤다. 어떤 사람은 이날을 모두 사진으로 남기겠다며 휴대전화로 연신 사진을 찍었고, 어떤 사람은 머릿속에 기억하겠다며 눈을 떼지 않고 바라봤다. 각자의 방식으로 아깡(우리 세 강아지들의 애칭)을 떠나보냈다.

입양식에서 아이들을 잘 보살피겠다는 서약서에 사인 한 이후, 그 서약의 증인이 되어 주겠다는 의미로 참가한 시부모님들이 지장을 찍고있다.
▲ 입양 서약서에 지장을 찍는 모습 입양식에서 아이들을 잘 보살피겠다는 서약서에 사인 한 이후, 그 서약의 증인이 되어 주겠다는 의미로 참가한 시부모님들이 지장을 찍고있다.
ⓒ 김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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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친구, 사람 가족, 강아지 친구, 강아지 가족

행사를 진행하고 난 후,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별했다. 봉사단의 막내 지정현(15)군은 아이들이 이렇게 떠난다고 하니 섭섭하다면서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해준 게 무척이나 아쉽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좋은 가정에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1박 2일 아깡 데리고 있기의 체험자 중 하나였던 배건우(15)군은 아이들과 1박 2일을 보내는 것이 너무나 새로웠을 뿐만 아니라 너무 즐거웠다고 한다. 다음에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참여하고 싶다고 한다.

이번 행사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여주신 염수진 동물사랑실천단 단장님은 "아예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연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서러운 감정은 없었다"고 하시면서도 "아이들을 맡긴 이상 모든 권리는 그들에게 있다, 먼저 전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아이들을 입양해가는 입양자들을 믿는다는 표현이었다. 이어 "다음에는 닥스훈트 아이와 함께 이러한 행사를 진행해보고 싶다"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는 또한 "사무실에서 치르는 첫 행사였는데,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라면서 "앞으로 다른 일들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동물사랑실천단은 이번 행사를 통해 더 좋은 사람과 이런 행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수원시 동물사랑실천단은 지금도 창의적이고, 순간적인 동정이 아닌 오랫동안 초심을 변치 않고 아이들을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하고 있다.

입양을 결정짓고 행사를 통해 아이들을 입양해가는 입양자들이 아깡과 서약서를 들고 카메라를 보고있다.
▲ 입양자들의 밝은 미소 입양을 결정짓고 행사를 통해 아이들을 입양해가는 입양자들이 아깡과 서약서를 들고 카메라를 보고있다.
ⓒ 김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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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유기견, #입양, #유기견새삶, #청소년 동물사랑실천단, #수원시 동물 보호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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