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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도시 폼페이의 타임머신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소렌토와 나폴리를 행해 발길을 재촉합니다. 든든히 점심을 먹고, 차에 오르자 졸음이 밀려옵니다.

나폴리 가는 길에

소렌토의 아름다운 절경이다.  해안가 절벽과 푸른 바다, 아름다운 도시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소렌토의 아름다운 절경이다. 해안가 절벽과 푸른 바다, 아름다운 도시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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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습니다. 멋들어지게 <산타 루치아>를 이탈리아어로 부릅니다. 노랫소리에 잠이 확 달아납니다. 그는 이어서 이탈리아어로 <산타 루치아>를 배워보자고 합니다. 그의 노래 솜씨에 홀린 일행들은 박수로 호응을 합니다. 아내는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을 우리말로 적기에 바쁩니다.

'솔 마레 루치카 / 라스트로 다르 젠토 / 플라치다 에 론다 / 프로스페로 엘 벤토 / 베니데 알라지엘 / 바르케타 미아 / 산타 루치아 산타 루치아'

모두 즐겁게 따라 부릅니다. 나도 아내가 메모한 것을 보고 따라 부르는데 감각이 떨어집니다.

"누가 한번 불러볼까요? 곡은 다 아실 테고. 기왕 이태리어로 불러보세요."

서로 얼굴만 쳐다보는데, 뒷좌석 아주머니가 자진해서 손을 듭니다. 이탈리아어를 전공한 분처럼 멋지게 부릅니다. 모두 박수로 답합니다. 아내도 가이드가 지명하자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를 잡습니다. 발음은 좀 어색하지만 성가대에서 쌓은 노래 솜씨를 발휘합니다.

음악은 사람 사이를 가깝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부른 이탈리아 가곡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킵니다. 학창 시절 불렀던 노래를 나폴리 가는 길목에서 부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산타 루치아>는 나폴리의 수호신이라고 합니다. 나폴리 해안에도 '산타 루치아'라는 이름이 있어 나폴리하면 <산타 루치아>가 떠오릅니다. 가곡 <산타 루치아>는 이곳 나폴리에서 태어난 테오도로 코트로가 1850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노래를 부르면 한 뱃사공이 황혼에 물든 나폴리 앞바다를 유유자적 떠나는 광경이 한 폭의 그림으로 연상됩니다.

소렌토의 아름다운 절경

함께 부른 노래 분위기에 고조된 가이드가 이번엔 CD음악을 틉니다.

"이탈리아 가곡 중 생각나는 게 또 있죠? <돌아오라 소렌토로>! 다 아시죠? 지금 가고 있는 소렌토 언덕에 서 보면 왜 '돌라오라' 했는지 느끼실 겁니다."

노랫말의 설명을 들으며 귀에 익숙한 노래를 눈을 감고 감상합니다. 소렌토가 얼마나 아름다우면 돌아오라 했을까? <돌아오라 소렌토라>는 에르네스토 데 쿠르티스가 1902년 '피에디그로타 가요제'에서 발표한 명곡입니다. 소렌토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면서 떠나가는 애인에게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나니 곧 돌아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폼페이에서 얼마나 달렸을까? 오전 내내 오락가락하는 비가 그쳤습니다. 아름다운 선율의 가곡이 마음에 닿아 지루함을 덜었습니다.

우리는 소렌토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도착합니다. 언덕은 나폴리만의 끝자락에 위치한 그야말로 절벽입니다. 운전기사는 좀 더 좋은 위치에서 소렌토를 관망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참 고맙습니다.

차에서 내린 우리 일행들은 탄성부터 쏟아냅니다.

"야! 이렇게 푸른 바다와 깎아지른 절벽! 정말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네!"
"숨이 멈출 것 같은 절경은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이야!"

바다가 아름다움을 뽐내면 이 보다 더할 수가 있을까요? 아내는 다른 말이 필요 없다는 듯 노랫말을 연발합니다.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소렌토로~"

소렌토 해안 깎아지른 절벽은 아찔했다. 어떤 신비감이 느껴졌다.
 소렌토 해안 깎아지른 절벽은 아찔했다. 어떤 신비감이 느껴졌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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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절벽 위에 세워진 작은 도시 소렌토가 그야말로 예술작품의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긴 해안선을 따라 그 수많은 세월 동안 깎였을 절벽은 아찔하다 못해 어떤 신비스러움으로 다가옵니다. 절벽을 때리는 파도는 흰 거품을 내며 "철썩 철썩!" 노래하며 춤을 춥니다.

절벽 위의 소렌토의 계단식 집들이다.
 절벽 위의 소렌토의 계단식 집들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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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렌토 해안가, 흰 포말을 내며 부셔지는 파도가 아름다웠다.
 소렌토 해안가, 흰 포말을 내며 부셔지는 파도가 아름다웠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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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절벽은 시루떡을 포개놓은 듯 오랜 풍상의 세월을 셈합니다. 절벽 위 한 귀퉁이에는 빨간 지붕, 노란 벽의 집들이 계단식으로 이어집니다. 바다, 절벽, 그리고 형형색색의 도시 건물들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구가 2만 명이 안 되는 작은 도시 소렌토는 나폴리와 카프리섬을 잇는 항구도시입니다. 이곳은 오렌지와 레몬 등을 재배하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우리는 이곳으로 오면서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온 아내와 나는 뭘 먹을까 고민하였습니다.

"여보, 난 카푸치노 커피 한 잔!"
"여기선 오렌지가 많이 나니까 생 오렌지주스 어때?"
"스푸레무타라는 거! 그거 좋겠네요!"

나폴리 가는 길에 먹은 오렌지주스. 현지 오렌지로 만든 생과일주스 맛이 아주 신선했다.
 나폴리 가는 길에 먹은 오렌지주스. 현지 오렌지로 만든 생과일주스 맛이 아주 신선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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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렌토를 비롯한 남부 이탈리아는 세계적으로 맛 좋기로 유명한 오렌지를 재배합니다. 오렌지를 갈아 만든 생과일주스, 스푸레무타를 맛보았습니다. 현지 오렌지로 막 갈아 만든 주스가 무척 신선합니다.

남부 이탈리아의 최고 도시, 나폴리

소렌토와 짧은 작별을 하고, 우리는 남부 이탈리아 최고의 도시 나폴리를 향해 발길을 돌립니다.

나폴리는 세계 3대 미항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랜 역사가 살아있는 중세시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항구도시이기도 합니다. 항구도시 나폴리는 이탈리아반도 남부 연안에 자리 잡아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진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말이 전해집니다. 나폴리만의 빼어난 자연경관과 역사 도시라는 명성에서 나온 말일 것입니다. 로마시대부터 황제들은 이곳 나폴리를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았다고 전해집니다.

온난한 기후와 쪽빛 바다가 있는 나폴리는 그 이름만큼이나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베수비오화산과 나폴리만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역사와 예술의 남부 이탈리아 중심지로서 나폴리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나폴리는 19세기에 들어서며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변혁의 소용돌이를 맞습니다. 빈곤층이 생겨나고 도시가 큰 변화의 물결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나폴리 시내의 한 건물이다. 이탈리아에서 지역간 빈부의 격차를 실감했다.
 나폴리 시내의 한 건물이다. 이탈리아에서 지역간 빈부의 격차를 실감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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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시내에 들어서자 여느 이탈리아 도시와는 사뭇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신호등이 없는 거리를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파헤쳐져 있는 도로며, 더욱이 여기저기 널브러져있는 쓰레기가 눈에 거슬립니다.

아내와 일행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기가 세계 3대 미항 맞아? 우리 보다 더 잘사는 나라라는데?"
"세계 어디를 가도 밝음과 어둠이라는 게 공존하지."
"아무리 그래도! 같은 이탈리아에서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나?"
"지역 간 빈부의 격차는 있게 마련."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남부지역 경제가 북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는 게 문제라 합니다. 이런 현상은 이곳 나폴리에서 고스란히 나타나는 것 같았습니다. 나폴리는 빈곤과 번영, 낙후와 발전이 함께 공존하는 듯싶습니다.

구시가지 거리에서 다닥다닥 붙어있는 칠이 벗겨진 집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어수선하게 엉켜있는 전깃줄, 건물 옥상에 설치된 TV안테나 등에서 예전 우리네 삶의 향수가 느껴집니다. 건물 밖으로 수없이 널려있는 빨래는 어떤 정겨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여기저기 난잡하게 갈겨쓴 스프레이 낙서는 선진문화국가라는 인식에 흠이 가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심지어 자기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재에까지 낙서가 있는 것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도 아름다운 나폴리는...

나폴리 산타 루치아항이다.
 나폴리 산타 루치아항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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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의 어두운 그림자를 뒤로 하고, 우리는 산타 루치아항에 도착합니다. 산타 루치아항은 나폴리 거리의 안 좋은 인식을 떨쳐버리기에 충분합니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명성에 맞게 긴 해안과 그림 같은 쪽빛 바다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나폴리 카스텔 누오보이다. 나폴리의 상징적 건물이다.
 나폴리 카스텔 누오보이다. 나폴리의 상징적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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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나폴리의 명물인 카스텔 누오보가 보입니다. 1200년도에 세운 검은 현무암의 누오보성은 나폴리의 상징적인 건물입니다. 이곳에는 나폴리지역에서 제작된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시립미술관이 있습니다. 탑과 탑 사이에는 개선문이 있는데, 개선문에는 권력자와 부하들이 나폴리를 입성하는 모습을 부조해 놓았다고 합니다.

나폴리 산 텔모성이다. 여기에 오르면 나폴리 시가지, 나폴리만과 베수비오화산까지 한눈에 들어 온다.
 나폴리 산 텔모성이다. 여기에 오르면 나폴리 시가지, 나폴리만과 베수비오화산까지 한눈에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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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줌을 당기자 산 위의 산 텔모성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성에 오르면 반짝이는 바다와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와 나폴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고르지 못한 날씨 때문에 일정을 건너뛰는 아쉬움이 큽니다.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돌리며 나와 아내는 좀 전에 부른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창공에 빛난 별 / 물 위에 어리어 /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 내 배는 살같이/ 바람을 지난다 / 산타 루치아 산타 루치아."

덧붙이는 글 | 지난 12월 29일부터 1월 6일까지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태그:#이탈리아, #나폴리, #소렌토, #산타루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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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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