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의 인재영입 경쟁이 뜨겁다. 주도권을 쥔 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시작으로 김병권 웹젠 이사회 의장, 이수혁 전 6자회담 수석대표, 오기형 변호사, 김빈 디자이너,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김정우 세종대 교수가 연이어 입당했다. 여성 1호였던 김선현 차의과대학 교수가 위안부 피해자 그림 도용 의혹으로 논란이 돼 "인재영입을 반납"했지만, 문 대표는 후속 영입에 속도를 높이며 논란을 돌파하고 있다.

다른 정당의 인재영입 사례와 비교해 보면 문 대표의 성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첫 번째 영입으로 내세운 6명은 대부분 종합편성채널에 자주 출연하며 이미 정치적으로 기울어진 인물들이었다. 또 이미 당원이었던 인물까지 포함돼 있어, 당내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문 대표의 인재영입 드라이브에 휩쓸려 김 대표가 너무 서둘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또 6명 가운데 4명이 변호사라는 점에서도,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 문 대표의 영입에 못미친다.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은 첫 영입부터 크게 헛발질했다. 창당준비위원회가 구성되기도 전에 급작스럽게 5명의 영입을 발표했지만 과거 '스폰서 검사' 등 비리 전력을 가진 인사들이 포함됐다. 결국 한상진 창준위원장과 안 의원이 직접 나서 사과하고 발표 3시간 만에 3명의 영입을 취소했다. 그 과정에서 입당이 무산된 인사가 영입취소 과정에 반발하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아직 당 조직체계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점수를 잃은 것이다.

고졸 신화 양형자 삼성 전무 영입을 둘러싼 '쓴소리'

이런 상황에서 문 대표가 영입한 인사들은 좋게 평가받으며 더욱 부각되고 있다. 표창원 전 교수는 연일 종편에 출연해 다소 편향적인 질문에도 날카롭게 답변해 주목받는다. 고졸에 여성으로 삼성에서 성공신화를 쓴 양향자 전 상무는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화제가 됐다. 또 야당 소속으로 5번이나 낙선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권의 최대 험지 가운데 하나인 강원도 철원에 출마를 선언한 김정우 교수의 사례는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이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성공했다'는 거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과를 이룬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 분야의 성공은 전문성을 동반한다. 정치권의 인재영입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받는 것은 그 사람의 명망과 전문성, 도덕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문 대표의 인재영입은 그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고 할 수 있다. 그가 공언한 것처럼 "더불어민주당이 확 달라졌다고 평가할 만한 인재들"이라고 봐도 될 듯하다. 

그러나 잘했다고 박수만 칠 수는 없다. 문 대표의 인재영입이 아직 남아있고, 더 유능하고 이름 있는 인물이 들어 온다고 해도 그럴 것이다. 영입 인사들의 경력이 부족하거나, 그들이 살아온 역사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다. 자기 분야에서 충분히 능력을 보여준 것은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화려한 경력과 높은 전문성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엇이 있다. 그것은 '헬조선'이라는 절망의 사회에서 야당에 단지 유능하고 뛰어난 '수권능력'만을 요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삼성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백혈병 등 난치병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14일 자신의 페이북에 올린 글에서 양향자 삼성 상무의 영입에 "노골적인 삼성 편들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헌법유린 무노조경영을 고수하고 수많은 젊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삼성 재벌을 비판하긴커녕 인재라며 삼성반도체 상무를 영입하는 뻔뻔함은 창피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성공적 인재영입이라고 박수를 치던 문 대표와 더민주에게는 뼈아픈 지적이다.

삼성 백혈병 문제의 책임을 모두 양향자 전 상무에게 몰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노무사의 말처럼 '삼성 신화' 이면에서 수많은 생명이 사그라진 것에 더민주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단지 백혈병 문제만이 아니다. 그동안 삼성 재벌의 불법적 행태와 헌법적 가치를 무시한 '무노조 경영'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국민의 아픔을 함께하겠다는 야당이라면 양 전 상무를 '유리천정을 깨뜨린 여상 출신의 신화'라고 칭송하기 앞서 이익에 눈 먼 재벌의 행태에 분노해야 한다.

명성과 전문성이 좋은 정치를 보장하지 않아 

삼성전자 최초의 고졸 출신 여성 임원인 양향자 전 메모리사업부 플래시 개발실 상무가 12일 더불어민주당 7호 외부인사로 입당했다. 문재인 대표가 양 상무의 입당을 환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최초의 고졸 출신 여성 임원인 양향자 전 메모리사업부 플래시 개발실 상무가 12일 더불어민주당 7호 외부인사로 입당했다. 문재인 대표가 양 상무의 입당을 환영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또 지난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은 두 달이 넘게 의식이 없다. 추락하는 쌀값을 보존해라는 농민들의 요구에 정부는 폭력으로 답했다. 그뿐이 아니다. 정부는 노동자들을 더욱 벼랑으로 몰고 있다. 비정규직의 차별해소는 커녕 경제단체들이 요구하는 파견근로 확대를 위한 법안을 밀어붙인다. 최근에는 자영업자 태반이 장기 경기 침체에 생계를 걱정하는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카드수수료를 인상하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벼락보다 더 큰 재앙이다.

아쉬움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백남기씨와 농민의 아픔을, 비정규직들의 불안함을, 영세자영업자의 억울함을 풀어줄 사람은 없는 걸까. 물론 영입된 인사들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다. 진정성도 보인다. 양 전 상무가 지금이라도 삼성 백혈병 피해자를 찾아 용서를 구하고 함께 연대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그럼에도 아쉽다. 더민주가 인재영입 회견마다 걸어 놓는 현수막에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이라는 문구를 보면 더욱 그렇다.

더민주는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때부터 영세자영업자, 비정규직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을지로위원회에 힘을 실어왔다. 을지로위원회는 여느 진보정당 못지않게 노동자와 서민, 사회적 빈곤 층과 연대했다. 한계도 있었지만 여러 현장에서 가시적 성과를 냈다. 을지로위원회 활동이 높게 평가받는 건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중재자, 갈등조정자의 역할을 했기 떄문이다. 그것이 정치 본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문 대표의 다음 인재영입은 여기에 바탕을 둔 인물이기를 바란다. 꼭 성공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어떤 아픔을 이해하는 건 그 누구보다 같은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다. '나'와 비슷한 인생을 살고, 비슷한 것을 고민하고, 비슷한 고통과 좌절을 경험한 사람이 주는 위로가 더 마음을 울린다. 명성과 전문성은 '좋은 정치'를 보장하지 않는다. 적어도 농민과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의 아픔을 아는 사람은 그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더민주가 인재영입 회견에 걸어놓은 문구는 정현종의 시 <방문객>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더민주에는 많은 '성공한' 인생이 왔다. 그러나 '나'의 인생, 이 시대의 농민과 노동자의 인생, 서민과 빈민들의 인생은 아직 그곳에 가지 못했다.


태그:#문재인, #인재영입, #양향자, #삼성전자, #백남기
댓글7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