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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양국 간 역사적 현안이었던 위안부 문제가 타결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은 이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형식과 감정의 문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일단 형식 문제를 놓고 볼 때 두 가지가 빠졌다.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에게 양해를 구하지 못했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도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당사자도 배제되고 국민과 국회까지도 모두 배제되었음에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타결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경우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짐이 곧 국가"인 왕정 국가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국민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합의이고 타결이냐'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급기야 4일 천주교 주교회의는 "한국 정부의 결정은 월권이며 원인 무효"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국민적 감정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국가안보를 위해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국민은 많지 않다. 동북아 지역 평화를 위해 일본과의 우호 및 협력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국민도 적다. 언제까지 과거 문제에 집착할 수 없다며 미래를 위해 대승적으로 풀고 나가자는 데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위안부 문제, 국민들이 실망한 이유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지난 11월 18일 마닐라에서 열린 APEC 기업자문위원회(ABAC)와의 대화에 참석하며 자리에 앉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지난 11월 18일 마닐라에서 열린 APEC 기업자문위원회(ABAC)와의 대화에 참석하며 자리에 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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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일본 때문에 가족을 잃고, 일본 때문에 가족과 흩어지고, 일본 때문에 평생 한 맺혀 살았다는 것은 '합리'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감정'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감정이 누그러질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과 명분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밀린 숙제 뚝딱 해치워버리듯이 단시간의 합의로 끝내버렸다. 그래서 분노하는 거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왜 위안부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풀었을까? 누군가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두 가지가 매우 중요하다.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이유와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이다.

일단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이유가 모두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실망하고 분노하는 국민 대다수도 왜 위안부 문제 타결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적어도 머릿속으로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이다.

지금까지의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관계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의도적 질타와 압박"이다. 역대 정부와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에도 쉽게 동의해주지 않았고, 일본 정부에 대해 의례적인 덕담조차 좀처럼 건네지 않았다.

대통령 취임 직후인 3·1절 연설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 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 박 대통령의 발언이 일본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그래서 많은 국민이 속으로 기대했다. 이번이야말로 정말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역설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극과 극 '롤러코스터' 행보를 일본과의 외교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말았다. 그러면서 국민은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됐다.

'아니, 저렇게 쉽게 양보할 거면서 그동안은 왜 그렇게 강경했던 거야?'

결국, 기대가 컸던 것만큼 실망과 분노도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타결 내용을 접하면서 상당수 국민은 심각한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니, 지난 20여 년간 우리가 줄기차게 분노하고 요구해왔던 것이 고작 100억 원 남짓의 돈과 마지못해 겨우 형식만 갖춘 사과란 말인가?

전여옥이 "베이비토크"라던 박 대통령 화법

지난 2005년 2월 18일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 추모식에서 당시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 박근혜 대표의 비옷에 달린 모자를 씌워주고 있다.
 지난 2005년 2월 18일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 추모식에서 당시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 박근혜 대표의 비옷에 달린 모자를 씌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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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미국 정부의 압박을 직·간접적으로 받는 외교부와 국방부가 대통령에 대해 위안부 문제를 대승적으로 풀어달라고 요구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그랬고,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랬고, 김대중 정부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왜 유독 박근혜 정부에서만 이렇게 쉽게 그들의 해묵은 주장이 관철되었을까? 김대중·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지지 않은 수준의 합의를 박근혜 대통령이 수용했다면, 결국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는 박 대통령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갑작스럽게 떠오른 인물이 있다. 전여옥이다.

전여옥 전 국회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화법을 두고 "말 배우는 어린이들이 흔히 쓰는 베이비토크"라며 "너무 깊이 이해하려 하지 말고 어법 문제를 감안하고 들으면 이해할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전여옥은 단순하게 박 대통령의 화법을 두고 한 말이지만, 한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 관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봤다. 도대체 왜 그렇게 강하게 나가다가 그렇게 갑자기 물러서 버렸을까?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고학년 딸을 둔 부모라면 아마도 경험이 있을 거다. "아빠, 나 오늘 다영이와 절교했어!" 그런데 며칠 지나고 보니 다시 또 친하게 지낸다. 그래서 물어본다. "다영이와 안 보기로 한 거 아니었어?" 그러면 마치 신기한 듯이 쳐다보며 "아니, 내가 쿨~하게 용서했어!"라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말한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순수하고 감정에 솔직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대단히 가볍고 무책임한 사고와 행동일 수도 있다. 아이와 어른 사이에도, 어찌 보면 분노하고 실망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그러한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떠한 생각과 행동으로 발전시키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누군가와 절교하고 싶다는 마음이 결코 안 들어서가 아니다. 절교라는 것도 용서한다는 것도, 그리 말처럼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치를 깨닫기 때문이다. 그러니 절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그것을 참아내는 것이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그것을 참아내는 것이다.

감정에 배치되는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불편하고 속상할 것이다. 그렇지만 대다수 어른은 그것에 대해 분노하지는 않는다. 원래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수많은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것들에 대해 받아들이고 참아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대통령의 '분노'는 곧 '해체'로 이어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나서 자리에 앉고 있다. 왼쪽 정의화 국회의장.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나서 자리에 앉고 있다. 왼쪽 정의화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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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이와는 조금 다른 사고와 행동의 메커니즘을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요즘 들어 하게 된다. 김무성 대표에 대해 분노하고, 야당에 대해 분노하고,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해 분노하고, 정의화 국회의장에 대해 분노하고, 심지어는 국회 자체에 대해 분노하고…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해경에 대해 분노하며 급기야 '해경을 해체한다'는 폭탄 발표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모든 것들에 대해 분노하고 그 분노를 반드시 어떠한 행동으로 옮긴다면 과연 우리 사회에서 남아날 수 있는 기관과 조직이 존재할까? 왜 유독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게 많은 사람과 조직들에 분노하고 불편해하는 것일까?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에는 그에게 세 명의 '미운 사람'이 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박철언, 헌법이 정한 총리의 권한을 모두 행사하겠다는 이회창,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문민정부를 흔들어댔던 김종필이다.

김대중에게도 두 명의 '미운 사람'이 있었다. 야당 총재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이회창, 내각제 개헌 약속을 지키라며 지속적으로 압박한 김종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말이 필요가 없다. 오죽했으면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탄핵소추를 당하고 급기야 임기 이후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겠는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강력한 '눈엣가시'가 있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 당사자들을 불편해하기는 했으나, 국민 앞에서 대놓고 그들에 대해 분노하고 성토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대부분 감정적으로 대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스스로 불편하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이를 받아들이고 참아내는 과정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경을 혁신적으로 바꾸면 되는데 왜 '해체'할까? 통합진보당이 스스로 국민과 멀어져 총선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면 스스로 해산되는데 왜 굳이 법무부와 헌법재판소를 동원해서 정당을 '해산'시켰을까? 교육부의 검인정 시스템이 있는데 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일까? 여당 의원들이 뜻을 모아 선출한 원내대표를 왜 사임하게 할까?

야당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당과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입장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인데 왜 이것을 국정 발목잡기로 받아들일까? 역사적 현안들이라는 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서로 명분을 확보해나가는 가운데 인내심을 갖고 접근하는 것인데 왜 이를 단칼에 해결하려고 덤비는 것일까? 이 모든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열쇠는 딱 하나다.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 때문이다.

일본 정부라고 해서, 아베 신조 총리라고 해서, 역사 문제와 위안부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여년 씩 질질 끌면서 오늘날까지 온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자신의 입장에서 불편하거나 부당할 수도 있지만, 역사 인식과 국민적 감정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거다.

이것이 어른이 가져야 하는 당연한 사고와 행동의 메커니즘이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아이와 어른 모두 큰 차이가 없지만, 행동은 달라야 한다. 아이는 때려치우는 것과 다시 시작하는 것을 수도 없이 반복하지만, 어른은 불편하고 부당한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참아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걱정이다. 국정 최고지도자가 마치 어린 아이처럼 스스로 불편하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을 도통 참지를 못하니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말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어린 아이는 스스로의 미숙함을 빨리 깨닫고 빨리 원점으로 돌아오기라도 하는데, 우리의 국정 최고지도자는 자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도 않고 결코 원점으로 돌아오는 일도 없다. 그러니 매사 시끄럽고 매번 꼬인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남은 2년의 임기도 롤러코스터 행보가 끊임없이 반복될 텐데, 도대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참아낼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방법이 없다. 그나마 조금 더 어른스러운 국민이 이 불편함과 부당함을 받아들이고 참아내는 방법 밖에는…


태그:#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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