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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중앙회 회장 선거가 오는 1월 12일 치러진다.
 농협중앙회 회장 선거가 오는 1월 12일 치러진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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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이 문제다. 그런데 농협의 문제는 농협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또 문제다. 농협의 문제는 그 설립 목적, 경제적 영향력, 사회적 책무로 인해 우리 농업·농촌의 문제로 직결, 무한히 확장된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그런 농협 문제를 더 들여다보면 결국 농협중앙회장이라는 상징적 존재의 문제로 집약된다. '제왕적이고 정치적인 중앙회장'으로 인해 농협의 문제, 우리 농업의 위기가 더 증폭되기 때문이다. 

지금 농협중앙회장은 대의원 간선제로 선출된다. 오는 1월 12일 '제23대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치러진다. 그러나 이번에도 농협의 주인인 농민은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다. 다분히 반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이고 폐쇄적으로 중앙회장이 결정된다. 정치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선출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배제된 농민조합원들은 '농민과 상관없는 그들만의 리그'라고 오랫동안 손가락질 하고 불신감을 표현했지만 여전히 투표권은 없다.

선출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농협중앙회장은 부정과 비리로 임기를 제대로 채우는 경우가 드물다. 1988년 중앙회장이 임명직에서 선출직으로 바뀌면서 제1대 회장부터 3대 회장까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비리로 구속되었다. 현직인 최원병 제4대 농협중앙회장 마저 거액의 부당 대출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일어 검찰이 수사를 벌였다.

통제 안 되는 '농협중앙회장', 이제는 농민이 직접 뽑자

문제는 농협중앙회장이 자꾸 범법자 신세로 전락하는 이유가 개인적 결함 때문이 아니라는 데 있다. 다분히, 얼마든지 예측 가능한 구조적·정치적 문제다. 폐쇄적 구조로 선출되고 취임 이후에는 통제가 안 되는 제왕적 권한과 비민주적 경영구조에 스스로 갇히기 때문이다. 최원병 현 중앙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포항 동지고(옛 동지상고) 동문이라는 특수 관계다. 2007년 농협중앙회장 선거 당시는 물론 취임 이후에도 이명박 정권 실세들과 유착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최 회장은 2011년 연임에 성공했다).

물론 그동안 개혁적인 조치나 처방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차례 농협법을 개정하면서 농협중앙회장의 과도한 법적 권한도 축소되었다. 농협중앙회에 몰려 있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도 지주회사 형태로 따로 분리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전히 농협중앙회는 개혁되지 않았다며 비판을 받고 있다. 중앙회장은 법적 권한이 축소되었음에도 여전히 농협에서 제왕적 지위를 누리고 있고, 지주회사 방식의 신경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는 개혁은커녕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농협중앙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병인은 '공룡 같은 거대 조직'이라는 데 있다. 중앙회의 본래기능인 비사업적 기능(회원조합에 대한 지도 감독, 조사연구, 농정활동 등) 이외에 사업적 기능(신용사업과 경제사업)까지, 한 기관이 모두 수행하는 세계 유례없는 거대한 경제조직이다. '공룡같은' 중앙회의 힘은 그대로 중앙회장에게 집중된다. 내부적으로 통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제왕적 회장'으로 만들었다. 정치권과 결탁하거나 휘둘리는 등 비리에 연루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따라서 농협중앙회를 개혁하려면 정치권의 유혹과 협박에 휘둘리지 않을 개혁의 적임자가 중앙회장으로 선출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소수의 대의원에 의해 간접으로 선출되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선출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농민조합원의 총의가 반영된 조합장 직선제로 바꾸는 게 상책이다. 그래서 '중앙회장 직선제'가 농협 개혁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농민조합원에 의한 중앙회장 직선제는 현재 제도로는 어렵다. 농협중앙회의 회원은 농민조합원이 아니라 지역조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민조합원은 농협중앙회장을 선출할 자격과 권한 자체가 없다. 그래서 일단 농협중앙회장 선거방식을 조합장 직선제로 되돌려야 한다. 다만 조합장이 개인의사로, 임의로 투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칫 조합장들이 중앙회장 후보들에게 줄을 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지역 농민조합원 전체의 총의를 묻고, 조합원 전체의 대표 자격으로 투표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

쌀시장 전면 개방,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값싼 외국농산물 수입 급증, 농산물 가격 연쇄 폭락, 농가소득의 정체, 도・농간 소득격차와 농가 양극화의 심화. 우리 농업이 안고 있는 현안이다. 그런데 지금, 이런 농업의 위기를 구원해야 할 농협 또는 농협중앙회는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농민조합원의 손으로 직접 뽑은 개혁적 중앙회장이 돼야만 비로소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돈 장사'가 아닌 '경제사업'으로 돌아가자

유휴시설화된 농협 창고 담벼락의 빛바랜 구호, "과학하는, 자립하는, 협동하는 농민"
 유휴시설화된 농협 창고 담벼락의 빛바랜 구호, "과학하는, 자립하는, 협동하는 농민"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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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농협은 회원의 이익 증진을 도모해야 한다는 농협법의 규정을 잊은 듯하다. 또는 묵시하는 듯하다. '농민의 소득을 위한' 경제사업보다는 '농협이 돈 버는' 신용사업에 매달려 있다. 조합원을 위한 상호금융보다 오히려 도시민을 주거래고객으로 하는 '돈 장사'에 열중하고 있다. 이는 협동조합이 아니라 일반은행의 모습이다. 결국 2011년 농협법 개정에 따른 중앙회 사업구조개편은 당초 취지와 달리 회원조합 경제 활성화보다는 중앙회 자체이익을 늘리는 결과만 초래하고 만 것이다.

중앙회뿐 아니다. 지역농협도 신용사업 수익에 목을 매달고 있다. 농업소득과 밀접한 농산물 생산·가공·판매 사업은 적자사업, 환원사업으로 소홀히 하고 있다. 지역농협은 준조합원, 중앙회는 전 국민 등 비농민을 대상으로 신용사업에 매달리는 기형적 사업구조는 현행 '종합농협체제'에서는 불가피해 보인다. 농협임직원의 급여는 오르는데 농가소득(농업소득)은 줄어드는 악순환이 매년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농민의 농협이 아니라 농협 임직원의 농협'으로 고착될 밖에 없다.

무엇보다 현재의 '종합농협체제'로는 경제사업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당초 '벼농사를 기초로 복합경영을 하는 소농'이라는 동질적 농업인을 전제로 성립된 조직구조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생산 작목과 규모도 서로 다른 이질적인 농민들이 한 조합에 모여 있다. 서로 경제적 이해관계도 다른 조합원끼리 경제적으로 협동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마땅히 종합농협체제는 사업의 성격, 이해관계에 따라 분화⋅재편, 전문화해야 한다.

이른바 '신경 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도 성공적이지 않다. 오히려 협동조합 방식이 아닌 주식회사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농협중앙회는 거대 지주회사로 변신하고 말았다. 농협중앙회는 '회원의 공동 이익증진과 그 건전한 발전을 도모(농협법 제1113조)'를 목적으로 하는 연합회 조직으로부터 더 멀어졌다. 자체 이익을 극대화하는 조직으로 더 변질되고 말았다.

1500여 농민 생산자들이 자치하는독일 '슈베비쉬 할 생산자조합'의 농민시장.
 1500여 농민 생산자들이 자치하는독일 '슈베비쉬 할 생산자조합'의 농민시장.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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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돈 장사 농협'의 대안은 독일에서 찾을 수 있다. 바덴-비텐베르크주, 호엔로에(Hohenlohe) 마을의 슈베비쉬 할 생산자조합(schwabiseh Hall Gemeinschaft)이다. 이 조합은 설립 목적 자체부터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삼았다. 농업의 규모화나 기업화가 아니었다. 1980년대 멸종위기의 재래종 돼지를 할 지방의 특산돼지로 되살리면서 조합의 역사가 시작, 1986년 설립 당시 불과 8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해 1500여 명의 농민조합원, 연간 1억200만 유로(약 14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외형으로 성장했다.

슈베비쉬 할 생산자조합의 역사는 돼지육종협회에서 출발한다. 1988년에 생산자조합을 결성하고 1992년에는 상장된 주식회사도 따로 설립하며 성장을 거듭한다. 조합과 별도로 공장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를 굳이 따로 설립한 이유는, 생산자조합에서 고기를 수매해주면 세금 문제가 원활히 해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자체 도축장, 소시지 가공장, 농민시장 등 1차 생산에서 2차 가공, 3차 직거래 유통에 이르는 이른바 6차산업화 과정을 내부 계열화했다. 이로써 지역뿐 아니라 독일 전역을 대상으로 농식품을 판매하게 되면서 안정경영의 발판을 마련했다. 지역직판장뿐 아니라 독일의 고급호텔, 유명레스토랑, 기업체 식자재, 루프트 한자 기내식 등에서 최우량 식자재로 대우받고 있다.

이같은 슈베비쉬 할 생산자조합의 경쟁력은 한마디로 품질에서 나온다. 조합에 고용된 전문 기술지도사들이 수시로 생산자를 컨설팅하며 품질을 상향평준화 시켰다. 유럽연합 최고 등급의 유기농 인증서 '외코테스트(Oekotest)'를 비롯해 Non-GMO 인증, 국제 표준규격, 독일농민협회(DLG) 골드라벨 인증 등 다양한 인증서가 조합 생산품의 품질과 진정성을 보증하고 있다. 

2007년부터 농민시장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총면적 950㎡의 농민시장에서는 4000여 종류의 로컬푸드를 직거래 판매하고 있다. 직판장 외에도 레스토랑, 허브가든, 빵가게, 지역여행사, 어린이 놀이터, 태양광발전소 등 복합시설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른바 6차산업화의 표본이다.

또 조합은 생산자에게 기술지도사를 통해 기술지도를 한다. 생산자는 기술지도 비용으로 연 550유로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그만큼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농민들은 생각한다. 모든 농민은 생산자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조합에서 가공·판매까지 책임지고 감당해주기 때문에 농민은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다. 생산자가 조합에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국에서는 농협이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을 독일의 농민들은 스스로, 한국의 농협보다 더 잘 해내고 있다. 

1862년 독일 농민들이 세운 신용협동조합은 '라이파이젠 은행'으로 성장
 1862년 독일 농민들이 세운 신용협동조합은 '라이파이젠 은행'으로 성장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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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관제농협'으로 시작... 태생적 한계 극복해야 

한국의 농협은 생산자협동조합으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입법한 농협법 제정에 따라 농촌근대화라는 정부정책에 의거한 '관제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띤 것이다. 농협중앙회장이 회원조합장을 임명하고 농협중앙회장을 대통령이 임명했다.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판매를 주목적으로 하지 않고 대신 농업발전과 농촌부흥을 동시에 추구했다. 구체적으로 쌀 증산과 수매, 농업금융망 확보, 지역사회의 센터기능을 함께 하는 '종합농협체계'의 모델을 채택한 것이다.

이러한 '관제 종합농협'은 농업금융, 농자재 공급 등으로 시대의 국정과제였던 식량증산이라는 결정적 역할을 감당하면서 1970년대 경제개발계획과 새마을운동을 뒷받침했다. 게다가 1970년대 초 신협법을 제정하면서 읍면 단위로 합병한 농협에게 상호금융사업마저 부여했다.  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경제사업보다는 신용사업이라는 '돈 장사'에 주로 기대는 지역농협의 구조악은 이 지점에서 배태된 것이다.

그래서 농협을 개혁하려면 우선 '관제 종합농협'이라는 중앙회의 사업구조부터 개조해야 한다. 우선 농업과 농민을 앞세워 도시민을 상대로 '돈 장사'를 하는 왜곡된 신용사업부터 손을 봐야 한다. 지금 농협중앙회의 금융업은 일반 시중은행의 그것과 하등 다른 게 없다. 지역조합이나 농민조합원의 생업이나 생활과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단지 농협이 농업과 농민을 앞세워 도시민을 상대로 '돈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사업은 회원조합을 위한 연합사업이 아니라 중앙회 자체사업이 중심이 되어 버렸다. 역시 지역조합이나 농민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이 우선이 아니다. 결국 경제사업의 목적이 회원조합의 공동이익 증진이 아니라 중앙회 자체의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꼴이다. 심지어 회원조합과 잦은 대립과 마찰마저 일으킬 정도다. 중앙회가 경제사업을 하는 사업목적의 책임의식조차 상실한 지경이다. 이같은 문제는 중앙회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교육지원사업도 표류하고 있다. 교육지원 사업의 원래 목적은 회원 조합과 조합원의 교육과 육성이다. 하지만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무이자 자금 지원 등을 통해 회원조합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자료(무이자로 지원되는 조합상호지원자금 현황)에 따르면, 일반 조합은 매년 평균 70억 원 정도의 지원을 받는 반면, 비상임 이사 조합장이 속한 조합들은 평균 100억~120억 원의 지원을 받았다. 아무래도 이사라는 자리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중앙회의 사업구조 문제는 농민조합원의 요구가 아닌 국가 권력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 한국 농협의 정치적인 설립 계기가 원인일 것이다. 여전히 중앙회는 정부의 간섭과 지배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 농민들을 대변하는 자구조직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자금을 나누어주는 창구 역할, 농림정책 사업을 대행하는 '정부의 수족'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정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한 중앙회는 회원조합에게는 마치 정부처럼, 공무원처럼 행세하고 있다. 막강한 지위와 권한으로 회원조합에게 군림하고 있다. 아무래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경제사업연합기능과 상호금융연합기능,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관리기능, 지도감사기능, 교육훈련기능, 대정부농정활동 등을 한 조직체 내에서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공룡'으로서의 부작용으로 보인다.

결국 중앙회는 농민들로부터 회원조합이나 농민조합원이 아닌 임직원을 위한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하는 일에 비해' 과도한 급여 수준(농협중앙회장 연봉 7억여 원, 중앙회 임직원 중 억대 연봉자 전체 직원의 12.2%, 평균연봉 8838만 원 등), 금융사고 등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 현상, 중앙회 임원의 자회사 낙하산 인사는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지적되는 단골메뉴다. 조합장에 취임하며 본인의 연봉을 자진 삭감하는 것을 신호로 지역농협의 개혁과 발전을 이끈 괴산 불정농협의 사례와 대비된다.

사업구조가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데 경영 수지구조가 안정적일 리 없다. 농협은행은 5대 시중은행과 비교해보면 지주회사 출범 이후에도 실적, 수익성, 건전성이 시중은행 평균보다 떨어진다. 2013년 현재 5대 시중은행 가운데 농협은행은 자산규모(4위), 당기순이익(5위), 영업이익(5위), 직원 1인당 생산성(4위), 점포당 생산성(5위)로 최하위권이며 부실채권비율은 2.3으로 시중은행평균(1.66)보다 훨씬 높다.

경제부문의 수지구조 악화는 더 심각하다. 당초 지주회사 도입을 이유로 자회사 활성화, 경영관리 효율화를 밝혔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다. 회원조합과 경합관계에 있는 농협사료, 목우촌, 농협홍삼 등은 수익 창출은 고사하고 회원조합과 갈등만 더 커지고 있다. 중앙회 임원이 낙하산으로 투하된 자회사에서 과연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경영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결국 현 지주회사 체제의 문제점을 되짚어 봐야 한다. 지주회사 방안의 신경분리는 그저 농협중앙회 경제사업의 활성화와 신용사업의 경쟁력 강화로 귀결됐을 뿐이다. 회원조합과 조합원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연합조직과는 거리가 멀었다. '신경분리'의 목적 자체가 당초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신용사업 위기에 대응하려는 목적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농협중앙회가 출자해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주식회사 방식으로 개편하는 행위 자체가 '협동조합적'이지 않은 것이다. 농협중앙회의 주인은 회원조합과 농민조합원이지만, 그래서 농민조합원과 회원조합이 중앙회를 지배하고 통제해야 하지만 실제는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농협을 주인인 농민의 자주적 협동조직으로 환원하기 위해' 중앙회의 사업구조부터 개혁, 개조해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다.

중앙회와 지역조합의 협동과 연대를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중앙회의 사업구조도 문제다. 중앙회 자체는 물론 회원조합의 사업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설사 농협중앙회 경제사업이 활성화된다 해도 그 효과가 농민조합원과 회원조합의 경제사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사업과 품목을 농협중앙회가 독점해 농협중앙회의 경제사업에 대한 지배구조와 의사결정권을 회원조합과 조합원이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제지주회사가 설립되면 전국단위 품목별 유통자회사, 도단위 권역별 유통자회사를 통해 직접 경제사업을 지배하게 될 우려가 높다. 회원조합과 경합하고 대립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이처럼 중앙회와 회원조합이 충돌하는 문제는 괜한 걱정이 아니다. 이미 각 사업분야와 지역조합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계통구매 문제는 중앙회와 조합의 이중수수료, 판매장려금의 미환원 등에 따른 가격 상승 등의 문제가 상존한다. 중앙회 계통구매를 통한 공동구매효과는 고사하고 회원조합이 계통구매를 이용하지 않으면 감사 등 불이익까지 당하는 지경이다.

판매사업에도 중앙과 지역 간 갈등 소지가 상존한다. 경제지주에서 추진하고 있는 도별 물류센터는 품목조합의 공판장 기능과 중복되거나 침해하고 있다. 가령 음료, 고춧가루 등 일부 품목은 산지농협과 판매농협 사이에 자체거래가 차단되고 수수료만 추가 발생하는 옥상옥 구조의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산지유통, 도매사업 등 판매사업은 일선조합과 품목별·축종별연합회, 지역연합회에 이관하는 걸 원칙으로 고쳐야 한다. 이때 경제지주는 조합과 연합회가 하기 어려운 사업으로 업무영역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산지유통사업의 핵심체 중 하나인 조합공동사업법인을 준회원 자격에서 정회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보험사업은 NH농협보험회사와의 불공정 계약을 개정해야 한다는 회원조합의 요구가 거세다. 농협 사업구조개편으로 지난 2012년 전국 지역농·축협이 운영하던 공제사업이 NH농협보험사 사업으로 이관되었다. 이에 따라 각 지역농·축협은 NH농협보험사들과 보험상품을 위탁판매하는 대신 판매수수료를 받는 판매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지역농·축협들이 NH농협보험사와 맺은 보험상품 판매계약 자체가 불공정하다며 보험수수료 현실화, 판매비와 관리비 보전, 제공제이익수수료 환원 등의 조건으로 재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카드사업도 회원조합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영업도 지역농협이 하고 리스크 부담도 지역농협이 지고 있음에도 수익배분은 농협은행(농협채움카드)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농협이 카드사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지역조합의 위험부담, 비용부담에 비하면 너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사업시스템을 혁신하려면 지배구조부터 개선해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회원조합의 통제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재구축해야한다는 것이다. 우선 지역(시군, 도)조합 협의회부터 설립하고 이를 지역 품목별·축종별 연합회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현행 설립동의자 200명, 출자금납입확약총액 3억 원인 품목조합 설립요건부터 완화해야 한다.

아울러 중앙회 이사회도 도별협의회 또는 연합회 대표, 품목별·축종별 연합회 대표를 기본으로 구성해야 한다. 경제사업의 지배구조 역시 연합회 체제와 같이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사회는 도별협의회 또는 연합회, 품목별연합회 대표 등으로 구성하도록 한다. 자회사의 지배구조도 마찬가지다.

품목연합조직, 지역연합조직을 통해 중앙회·경제지주회사 지배구조에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조합공동사업법인은 중앙회 정회원으로 자격을 부여해 경제사업 관련 의사결정구조에 참여하도록 한다. 물론 현재도 이사회에 일선 조합장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개별 조합장 자격으로 이사에 선임되다보니 일선조합과 조합원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일선 조합과의 공동투자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지난 2012년 사업구조 개편 당시 농협중앙회는 일선 조합과의 공동투자를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경제사업 투자계획 재수립 등을 통해 산지, 도매, 소매 영역에서 일선 조합과 공동투자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중앙회의 비사업적 기능도 정상화해야 한다. 중앙회 교육지원부문의 경영지원기능, 농정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회원조합에 대한 교육 기능 또한 활성화해야 한다. 교육위원회 개선, 교재·교육프로그램 개발, 교원·교육전문가를 육성·채용으로 교육기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농정활동을 위한 조사연구 사업을 비롯해 정부의 대외개방정책, 농산물가격유통정책, 농가소득정책 등에 대한 대정부농정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또 순환과 공생의 지역농업 조직화, 도농교류와 상생발전, 협동사회의 구축을 위한 사회연대활동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협동조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협동조합의 사회적 책무'를 재설정하자 

농협의 사회적, 공동체적 책무를 되새겨볼 수 있는 로컬푸드 직매장 사업
 농협의 사회적, 공동체적 책무를 되새겨볼 수 있는 로컬푸드 직매장 사업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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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개혁은 근시안적인 미봉책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때 '회원조합을 지원하는 연합회'로 재편하는 비전부터 확고히 설정해야 한다. 경제적 책무보다 사회적 책무를 더 강조해 '협동조합'으로서 본질적 정체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중앙회는 금융지주회사와 경제지주회사를 거느린 사업조직이 아니라 비사업적 기능을 전담하는 게 옳다. 즉, 중앙회 출자 자회사 또는 주식회사가 아니라 중앙회로부터 독립적인 회원조합의 연합회 체제로 전환하는 게 최적의 해법이다.

경제지주회사는 경제사업연합회로 전환하고 지역별, 품목별 연합회 중심의 사업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이로써 농협의 경제사업은 회원조합 또는 장기적으로 광역품목조합과 품목조합연합회, 조합공동사업법인을 중심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러자면 경제지주회사가 독자적인 경제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최소화하고, 회원조합 또는 품목조합의 경제사업을 지원하는 연합회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금융분야 개혁의 중심은 단연 상호금융연합회다. 회원조합 또는 장기적으로는 지역신용협동조합의 금융업무를 지원하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우선 도 단위 상호금융연합회에서 상호금융 도별 연합기능, 지역순환경제 중추금융 역할을 맡도록 한다. 기존 농업용 정책자금 대출업무, 시군 지자체 금고운용 업무는 상호금융연합회로 이관한다. 수익은 마땅히 조합원 대출금리 인하 재원 등으로 조합원을 위해 활용한다. 상호금융연합회 독자적으로 보험, 카드 사업도 수행할 수 있다.

농협금융지주는 매각한다. 농협은행 등 기존의 금융지주 사업은 농민조합원이나 회원조합을 위한 협동조합금융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의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일반 금융사업에 불과하다. '돈 장사'라고 비난받는 이유다. 중앙회 수익원 이외의 타당한 존립 이유나 가치가 부족하다. 농협은행 등 금융지주의 자회사를 매각해 상호금융연합회와 경제사업연합회를 설립하기 위한 자본금으로 활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중앙회는 비사업적 조직으로 전환한다. '돈' 벌 생각은 하지 말고, 운영재원은 회원조합과 각종 연합회의 회비 또는 분담금, 정부의 지원금 등으로 마련하면 된다. 중앙회의 고유기능인 회원조합과 연합회의 조직·사업·경영의 지도, 감사, 교육, 조사연구 및 정보제공, 농정활동을 주 업무로 개편하면 된다.

특히 농촌지역의 마을공동체사업과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 농협의 역할도 재설정해야 한다. 이미 농협중앙회에서 2016년까지 농어촌 중심지 및 인근 소비지에 로컬푸드숍 100개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완주 용진농협의 로컬푸드직매장 사례는 성공적이다. 농촌지역의 마을공동체사업을 활성화하는 데 자본력과 경영능력, 무엇보다 공익적 선의와 책임감을 갖춘 지역농협의 적극적인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사례로 들 만하다.

아울러 취약계층의 공동농업생산조직(품목별, 마을별), 지역단위 농촌인력사업 운영사업, 직거래 중심 농식품 판매사업 등을 농협 중심의 '커뮤니티 비즈니스형' 사업으로 추진하고 육성할만한 분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의 우려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근본적으로 복지, 의료, 관광, 농업, 가공 등 다양한 농촌지역의 사업영역에서 지역농협이 중간지원조직 역할을 수행하는 건 법적 상충, 전문역량 부족 등의 요소가 잠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서 발표한 '농협의 커뮤니티비즈니스(CB) 활성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농촌지역에서 농협이 CB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사업에 주민과 이해당사자, 지역 거버넌스의 공동출자가 필요하며 중앙정부, 지자체, 지역단체의 유기적 협력관계 구축, 커뮤니티 사업체의 별도 법인화 등이 요구 된다"고 밝히고 있다.

마을·지역공동체사업은 마을이라는 공간을 기본단위로, 마을의 경계를 넘어 인근 읍·면이나 시·군과 중층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의 다양한 주체가 협동해서 지역 과제를 해결해 지역 재생과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 향후 사회적 경제 기반의 마을공동체사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과 리더의 자발적인 참여 못지않게 지역활성화의 주요 주체로서 지역농협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게 농협은 '협동조합의 원형'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농민조합원 총의반영 중앙회장 직선제와 농협중앙회 개혁', 박진도, 2015.12, 지역재단



태그:#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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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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