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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이 아름다운 건 누구나 다 마라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안타깝게도 마라톤은 특별하다. 마라톤이 특별한 건 누구나 다 마라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나는 어떻게 보면 평범 이하의 사람이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그 흔한 공책이나 연필을 상으로 받아 본 적이 없고 반 대항 축구경기에 뛰어 본 적이 없다. 군대 훈련소에서 선착순 달리기를 하면 언제나 마지막까지 얻어맞으며 달려야 했다. 그래도 잔머리는 있어서 얻어맞으며 마지막까지 힘들게 달리느니 안 뛰고 얻어맞는 일만 택했다. 자대에 배치되어서는 고문관으로 낙인이 찍혔었다.

지금 말하는 관심사병이었다. 군대 생활 3년 하는 동안 10km 완전군장 구보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군인이면 매년 한 번씩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유격훈련도 한번 받지 않았다. 무슨 검열이라도 나오면 나 때문에 부대 전체 성적이 떨어진다고 아예 외출이나 외박을 보냈다.

그러다 제대 말년에 안 해도 될 10km 완전군장 구보를 추억 만들기를 한다고 도전했었다. 처음에는 군화 끈이 풀어져서 몇 번 주저앉고, 그 다음에는 반합뚜껑이 딸가닥거려서 주저앉았다. 그러다 아마 지금 기억으로는 3km도 못가서 뒤따르는 엠뷸런스에 실려서 온 뼈아픈 기억까지 있다.

산타모니카비치는 태평양에 연해있는 미대륙 가장 서쪽 끝에 있는 풍과이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여기서 미국 프론티어들이 꿈을 안고 달려왔던 66번 도로가 끝이 난다. 미국인들은 이 역사적인 도로를 엄청 사랑한다.
▲ 출발 전 산타모이카비티 산타모니카비치는 태평양에 연해있는 미대륙 가장 서쪽 끝에 있는 풍과이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여기서 미국 프론티어들이 꿈을 안고 달려왔던 66번 도로가 끝이 난다. 미국인들은 이 역사적인 도로를 엄청 사랑한다.
ⓒ 강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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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가 나이 50이 넘어서 달리기를 시작하여 마라톤을 하고 첫 마라톤에서 서브 포를 기록했다. 마라톤 세 번 만에 모든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꿈의 무대인 보스턴 마라톤 출전자격을 따내는 기염을 토해냈다. 50마일 산악마라톤에는 두 번 만에 성공을 했다.

물론 마라톤 무림의 세계에는 나보다 무수히 많은 고수들이 있었다. 그 수많은 마라톤 영웅들도 감히 입조차 뻥끗하기를 망설이는 미 대륙횡단이란 카드를 내가 들고 나왔을 때, 그것도 누구의 도움이나 스폰서 없이 단독으로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농담을 하는 줄 알고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나의 표정이 진지한 것임을 알고는 사람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번 여행은 어떻게 보면 시상이 떠오르듯 생각난 여행이었다. 생각은 내가 미국생활 26년 동안 휴가다운 휴가를 한 번도 갖지 못했다는 데서 출발했다. 이민 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점점 피폐해져 가는 것 같았다. 긴 여행을 하고 싶었다. 긴 여행을 하면서 마음의 정리를 할 것이 있었고 마음의 다짐을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압감으로 내리누르는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이모작 인생을 설계하는 중년 사춘기의 성장통 같은 것을 치유해야 하기도 했다. 중년 사춘기는 초반 사춘기보다 더 열병처럼 찾아왔다. 안으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것들을 꾹꾹 내리누르기만 했던 세월, 이제는 어디 오지 같은 곳을 찾아가 다 토해내고 오지 않으면 폭발하고야 말 것 같다.

여행이라면 마라톤 여행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라톤이 명상하기에 좋다는 것을 마라톤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알기 시작했다. 끝없이 몰려오는 고통과 위기 상황을 넘기면서 얻어지는 환희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 너머에 아련히 보이는 잊혀진 나를 만나보고 싶었다.

센트럴파크에서
 센트럴파크에서
ⓒ 강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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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행을 떠날 때면 언제나 필요한 최소한의 짐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과 거대한 산맥과 대평원을 지나려면 짐도 보통의 짐으로는 되지 않을 터이다. 그 짐을 짊어지고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면 캠핑카와 그것을 운전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건 경비가 엄청나게 들어서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혼자만의 오롯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이리저리 생각해도 마라톤 여행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불가능한 일이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끝없이 달리고픈 열망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자꾸 화산의 마그마처럼 치솟아 올랐다. 가능성 있는 것에서 생각은 다시 출발했다. 사실 생각이라기보다는 몽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몽상을 하면서 생각을 키웠다. 배낭을 최소한으로 꾸리면 하루 20km 정도는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뉴욕에서 약 240여 마일 떨어져 있는 워싱턴까지는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10마일을 달려서 먹고 마시고 잘 것을 해결할 수도 없었지만 그것보다는 더 크고 넓은 세상을 달리고 싶었다.

그러다 그야말로 시상이 떠오르듯 유모차가 떠올랐다. 센트럴파크에서 바퀴가 큰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달리는 사람을 보았다. 유모차에다 짐을 실으면 하루 35km는 충분히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훈련을 해서 몸을 더 만들고 아주 천천히 km 당 9분 대로 달리면 하루 풀코스 마라톤 거리인 42km는 충분히 달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42km씩 120일을 달리면 미 대륙횡단 마라톤이 완성되는 것이다. 구름 안에 있던 몽상이 이제 구름이 걷히며 모습을 드러내는 장엄한 산처럼 현실성 있는 계획으로 모습을 바꾸어가고 있다. 마라톤을 웬만큼 뛰어 본 사람이라면 내 계산법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니 나를 생뚱맞은 돈키호테로 치부하는 사람이나 위대한 도전이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들 모두 다 정답은 아니다. 물론 예측하지 못할 대자연의 심술궂음과 언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험한 순간들을 충분히 감안해야할 것이다.

이 여행의 마지막 퍼즐인 유모차가 생각나는 순간부터 실행에 옮기기까지 불과 한 달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퍼즐이 맞춰진 순간부터 이미 마음은 출발 지점으로 떠나고 없어서 마음이 떠난 몸이 홀로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부당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마음은 홈런 타자에게 잘 맞은 공처럼 포물선을 아름답게 그리며 담장 밖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불현듯 어느 순간 갑자기 떠나고 싶은 순간 홀연히 길을 나서는 즉흥적인 여행일지라도 넉 달 남짓 혼자서 이 거대하고 홀로 나서기에는 위험천만한 미 대륙을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어떤 기계 장치도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온몸의 근육만을 이용하여 횡단하려고 나서려면 최소한의 준비는 필요하다.

우선 아내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의 이해를 구해야했다. 그리고 사업부터 정리를 해야 했다. 떠나겠다는 마음의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하자 마치 소용돌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휘감아 올려 날려버리는 토네이도처럼 나는 식당은 그대로 날려 보내고 자동차 액세서리 도매업은 내 일을 도와주던 사촌에게 양도했다. 거의 모든 것을 다 날려 보내고 그야말로 이 여행이 끝나면 맨손으로 새 출발 할 각오를 했다.

마치 가을나무처럼 다 떨구고 비워서 새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 되기로 했다. 몸은 고달프고 힘들겠지만 마음이 그렇게 특별한 휴가를 통해서 쉬고 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배짱이 생겼다.

뉴욕 뉴욕한인마라톤클럽 회원들과 함께
▲ 뉴욕 뉴욕한인마라톤클럽 회원들과 함께 뉴욕 뉴욕한인마라톤클럽 회원들과 함께
ⓒ 강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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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십이 될 무렵 패러글라이딩을 배웠었다.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하늘을 나는 기분은 짜릿했다. 내가 이렇게 겁없는 모험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아마 그때부터인 것 같기도 하다.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은 누구나 한 번은 꿈꾸었을 것이지만 아무나 산 위에서 뛰어내리지는 못한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려면 바람이 불어야 하고 바람이 불어도 산 쪽으로 부는 바람이 불어야하는데 뉴욕에서는 이런 날씨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년 내내 바다에서 내륙으로 일정한 바람이 부는 샌디에이고의 절벽은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천혜의 장소이다.

샌디에이고에서 바람을 타고 누드비치가 아래로 보이고 모래 절벽이 있고 부호들의 별장을 즐기다가 그만 절벽에 외로이 자라고 있는 소나무에 패러글라이딩이 걸리는 아찔한 사고를 치르고 말았다. 나는 참 침착하게 구조대가 올 때까지 모래 절벽의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하늘에는 헬기가 뜨고 몇 십 대의 소방차와 몇 십 대의 경찰차가 왔고 신문기자와 방송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해 나갈 것이고 몇 달씩 수입이 없이 집 렌트나 자동차 월부금을 납부할 형편이 아니었다. 넉 달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제자리에 있을 것들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픈 것은 자식이 없는 내가 자식처럼 7년 동안 기르던 개 미셸을 잘 키워줄 사람을 찾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센터에 보낸 것이었다. 그나마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친구들이 제자리에 있을 거라는 믿음은 큰 힘이 됐다.

인간의 마음은 모든 실재를 변화시키고 창조하는 무한한 힘이 있다고 한다. 스스로 과소평가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젊음을 상실하고 늙고 병든다고 생각하고 햇볕 따스한 곳을 찾아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옛날 이야기나 한다.

아무 일도 안 하는 이들은 그 생각이 바로 현실을 만든다. 아름다움과 건강 심지어 역동적인 삶은 온전히 자기의 마음에 달려있다. 우리의 마음에너지는 생활을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전기에너지와 같은 것이다.

지금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나 재정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어떤 큰 문제를 안고 있어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 될 것이다. 건강이나 마음의 평안이나 젊음까지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성취할 수 있는 하나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불치 혹은 난치병은 편견 속에 갇힌 허구라고 한다. 이번 여행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지를 알아보는 실험이기도 하다.


태그:#마라톤, #여행, #인간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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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온몸의 근육을 이용하여 달리며 여행한다. 달리며 자연과 소통하고 자신과 허심탄회한대화를 나누며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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