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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진행되던 국회에서, 추운 날씨에도 외투 하나 입지 못하고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던 구리시립 소년소녀합창단의 모습에 많은 분들이 분노했다. 이 일은 급기야 11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하여 달라고 진정으로 접수되기까지 했다.

'국가장'이라는 권위에 눌러 당연한 희생이라고 넘겼을지 모를 소수의 인권이 무시되지 않고, 이러한 인권문제에 대해 침해 또는 차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인권전담기구로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만약 저 행사가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행사가 아니라 대구 등 지역에서 진행되는 행사였다면 저렇게 많은 언론과 누리꾼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찌 보면 이러한 기우가 지역 인권옹호자들이 날마다 겪게 되는 현실인지도 모른다. 그 규모를 떠나 국가적 차원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곳에서 인권문제는 발생하고 그 문제는 중대한 사안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극단적인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지역 문제 해결의 열쇠는 서울이 쥐고 있는 경우도 있다. 서울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대한민국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이기도 하기 때문이지만,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우리 안의 '서울중심주의'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돌아보게 된다.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을 지키기 위해

12.1. 대구인권교육센터에서 이상재 대전충남연대 사무국장이 '지역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12.1. 대구인권교육센터에서 이상재 대전충남연대 사무국장이 '지역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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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10일은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지 67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문과 30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선언은 유엔총회 문건 중 가장 많은 언어, 360여 가지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세계인권선언문은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의 평등을 선포하며 모든 국민들과 국가에 대한 공통의 기준으로서 인권을 천명'하여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 이라고 불리고 있다.

하지만 이 선언 자체는 유엔의 결의로서 법적 구속력은 없다. 누군가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야'라고 우기기 시작하면 난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유엔은 일정한 규범적 구속력을 지니는 구체적인 인권 영역을 다루는, 예컨대 '인종차별 철폐 협약' 같은 다양한 국제조약을 채택하게 된다. 각국은 이 선언의 정신을 헌법이나 기본법에 반영한 바 있지만, 세계인권선언의 구체화된 현대적 모습을 구현하는 것은 결국 인권옹호자들의 실천력과 인권보호에 대한 시민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는 매년 세계 인권선언일을 기념하여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고, 대구인권사무소도 현대적 관점에서 주요 인권이슈와 맞닿아 있는 세계인권선언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하여 화요 릴레이 인권특강을 준비했다. 세상이 내놓는 새로운 인권이슈를 위한 '소통과 연대'는 인권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하고, 실천의 시작이며 끝이다. 또 대구사무소가 준비한 인권특강의 목적이며 임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주제가 바로 '지역과 인권'이다.

인권이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가치이고, 그 가치의 내용이 소통과 연대를 통해 비로소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이라면 인간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 즉 지역이 인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전충남인권연대 이상재 사무국장은 지역과 인권을 설명할 때 핵심은 '지역감수성과 평등의 관점'이라고 말한다. 집회결사의 자유, 양심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정치적 권리도 중요하지만 해당지역의 경제와 복지 문제 등이 더욱 시급한 문제일 수 있는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로 지난 12월 1일 인권특강을 마친 대전충남인권연대 이상재 사무국장에게 몇 가지 궁금한 점에 대하여 물었다. 

-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세계인권선언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세계인권선언은 5천만 명 이상이 죽은 인류사 최대의 비극인 2차 세계대전의 처절한 반성과 함께 인류의 미래를 인권을 기준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테러, 그로 인한 난민 문제와 같은 어둡고 불안한 현실과 맞닥뜨릴수록 세계인권선언 제정 당시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되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제정 당시의 30개 조항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상황에 맞게 적극적으로 확장 해석하는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세계인권선언의 내용 중 가장 좋아하는 조항이나 구절은 무엇인가요?
"뭐 당시의 시대 상황을 생각한다면 조항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항도 좋지만 전문의 내용도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하면 전문의 내용 중에 '인간이 폭정과 탄압을 견디다 못해 최후의 수단으로 혁명적인 항거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까지 극한 상황에 몰리지 않게 하려면,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법치를 통해 인권을 보호해야만 할 것이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법치의 의무주체는 정부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인데 요즘 박근혜 정부가 법치를 강조하면서 국민들에게만 법 준수를 강조하는데 법치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67년 전에 만든 세계인권선언이 알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고 했는데 이런 특색을 반영한 인권운동이란 어떤 것인가요?"
"사실 인권운동이란 것이 어떤 경우에는 한없이 어렵고 또 까다로운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의 역사와 지역이 당장 안고 있는 문제를 인권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개입하는 것이 지역의 특색에 맞는 인권운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역을 인권 기준으로 새롭게 보는 것이죠."

 -지역 인권사무소 역할과 시민단체와의 인권증진을 위한 연대는 어떤 방식이 적절할까요?
"지역에도 지방정부를 견제하고 환경을 지키는 운동을 하는 단체와 풀뿌리 운동단체는 이제는 기반이 꽤 튼튼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역에서 활동하는 인권운동단체는 몇 되지도 않고 활동력도 약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인권사무소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정부기관의 지방사무소라는 틀을 벗어나서 지역 인권단체가 기대고 성장할 수 있는 허브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변화하는 정권 환경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지역이니까 서울의 국가인권위원회와는 다른 방식의 활동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지역 인권옹호가들에게 격려 한마디 해주신다면?
"제가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닌 것 같은데요(웃음). 인권운동은 10년 뒤의 상식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당장은 표가 나지 않고 힘들겠지만 우리의 움직임이 결국은 지역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는 믿음으로 활동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요."

<알림>
대구인권사무소 릴레이 화요 인권특강 일정(저녁 6시 30분부터 대구인권교육센터에서 진행됩니다.)
2강 12. 08. 역사의 프리즘으로 인권을 보다(오인영교수)
3강 12. 15. 노동과 인권, 송곳만큼 날카롭다(하종강교수)
4강 12. 22. 공교육은 혁신되어야 한다(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덧붙이는 글 | 인권위와 함께 하는 시민기자단이 꾸려가는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글쓴이 김종길님은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세계인권선언, #인권, #지역인권, #인권특강, #세계인권선언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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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함께 차별없는 인권공동체 실현을 위하여 '별별 인권이야기'를 전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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