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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죽였지만 우리는 새로운 왕을 섬기고 있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스틸컷.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스틸컷.
ⓒ 톰 후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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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대혁명은 시민사회 등장의 신호탄이었지만, 배고픈 민중이 들고 일어나 왕을 단두대에 세웠다고 해서 바로 자유·평등·박애가 도래한 건 아니었다. 짧게 보면 치열한 세력 교체와 이념 대립이 있었던 1789~1795년, 길게 보면 다시 나폴레옹 독재와 왕정 복고기를 견뎌낸 뒤 찾아온 1848년 2월 혁명까지를 말한다.

약 60년 동안 수 많은 꽃이 피고진 '대(大) 혁명'인 셈이다. 프랑스인들도 혁명에 배반 당한 시기가 있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조차도 1789년 이후에도 계속 비참한 삶을 살게된 파리 시민들이, 복고 왕정에 반기를 들었다가 '깨지는' 풍경이다. 이 1832년 6월 봉기 주축세대인 '1820세대'는 한국 민주화 세대인 '386세대'와 비견된다.

모두 독재자를(루이 16세·이승만) '보내버린' 용감한 부모의 자녀로 태어났으며, 청소년기와 성년기에 군사독재의(나폴레옹·박정희) 단맛과 쓴맛을 봤다. 그러나 '1820세대'는 돌아온 왕의 자식들에, '386세대'는 전두환·노태우에 맞서 자유와 평등의 도래를 앞당겼다.

하지만 '1820세대'가 중년에 다시 1848년 2월 혁명의 벅찬 감동을 느꼈다면, "이 땅의 많은 386세대는 '독재자의 딸'을 복고적으로 후원"했고 "박근혜 정부와 함께 그들의 40~50대를 마감"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육영수 교수는(중앙대·역사) 동료 386세대들에게 "기회주의적 현실인식을 닦고 시대착오적인 역사관을 재성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스는 꾸준히 "세대가 털갈이를 하면서 … 각자 자신의 몫만큼 전진"했기 때문이다. 혁명이 자꾸 배반해도, 다음 세대가 바통을 이어받게 해 좌절하지 않되 추억의 껍데기가 아닌 저항의 기억만을 알맹이로 전해줬다. 그리고 마침내 1848년을 맞은 셈이다(육영수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중).

육영수의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육영수의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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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케이드와 짱돌의 배반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도 지난 14일 세종로 네거리와 광화문 광장 일대 '민중총궐기'가 무기력했다. 바리케이드는 시민을 배반했다. <레미제라블>의 '1820세대'들이 자유·평등·박애를 위해 마지막까지 싸우겠노라고 골목에 쳤던 그런 바리케이드가 아니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엄습해오는 계엄군으로부터 시민들을 지켜주던 광주시청의 벽도 아니었다. 신고된 집회 장소로 이동하는 시민들을 막고자, 경찰들이 친 높이 수 미터의 '근혜산성'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 위로는 길게 뻗은 총신에서 물대포와 캡사이신이 쏟아졌다.

기성언론이 몇몇 '원시적인' 수준의 저항에 침소봉대했지만, 현장에서 마주하는 건 '압도적인' 완전무장과 최첨단의 국가권력이었다. 시대는 바뀌었다. 하지만 집회 방식, '민중총궐기'라는 투박한 말, 지도부 모두 '늙었다.' 그럼에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줬다.

많은 사람들을 불렀고, 또 경찰의 차벽 설치를 예상들 했음에도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게 문제다. 지도부 차량 방송은 그저 '전진하지 않는' 집회참가자들을 비토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상식 수준에서 판단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거다.

경찰은 2000년대 초반부터 광화문 일대의 대형 집회를 수없이 경험했고, 세종로 네거리와 광화문 광장 일대의 교통 흐름을 분산해 병목 현상을 조장하는 데 완전 도가 텄다. 단지 '모인다'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 주최 측이 이미 고민 했었어야 할 것은 모여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였다.

차벽 뒤편으로 날라온 보도블럭 파편.
 차벽 뒤편으로 날라온 보도블럭 파편.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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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은 바리케이드로 끝이 아니다. 경찰 차벽에 의해 수만 명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일부가 세종로 네거리 남단 차벽을 마주했다. 당연히 충돌이 있었고, '원시적인' 흥분을 한 누군가가 보도블럭을 깨서 날렸다. 그러나 차벽 뒤에도 사람이 있었다. 경찰말고 그 뒤에 또 다른 '시민들' 말이다.

나는 오후 6시 쯤 차벽 뒤에 있었고, 취재중 정면으로 날아오는 파편에 놀라 잽싸게 피했다. 하지만 다른 몇 개의 파편이 날라왔고, 한 여성 집회참가자가 얼굴에 맞아 피를 흘렸다. 사람들은 잠시 웅성댔고 당사자는 다른 참가자의 부축을 받아 자리를 피했다. 이것이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시야'까지 과신했던 불필요한 힘자랑의 결과다.

물론 나는 '비폭력주의자'나 '성인군자'가 아니다. 인류 역사가 자주 폭력으로 진보해왔으며, 정말 불가피하면 폭력도 쓸 수 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은 천지차이다. 폭력을 써도 '효과적'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신념의 세기에는 차이가 있다. 불필요한 돌발행동은 기존에 사람들이 지닌 신념조차 불필요하게 동요시킬 수 있다. 한 마디로 '팀킬'이다. '불의의 사고' 당사자의 몸과 마음은 물론이고, 다른 집회차감자들에게도 '상처'가 된다. 짱돌은 시민을 배반했다.

2015년이 '새끼 혁명들'의 시대라는 걸 인정하자

수 만 명이 모였던 만큼 선택도 최소한 수 만 가지가 일어나며, 이 조차도 시시각각 변한다. 하지만 정권과 기성언론은 불과 '몇 개'의 선택 만을 솎아내 전체를 규정한다. 반면 일사불란한 명령체계 하에서 전술적으로 움직이는 경찰은 피해자로 둔갑된다. 그들의 이해관계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대응이다.

기본적으로 폭력이란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하는 힘'이다. 제압하는 자의 힘이 당하는 자보다 우월해야 폭력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대착오적인 집회 방식은 폭력적일 수조차 없다. 상대를 '제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꼭 물리력으로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최근 빈재욱 시민기자가 14일'민중총궐기 집회에 대해서, 이런 내용의 칼럼을 냈다.(관련 기사: 아쉬웠던 '민중총궐기', 2008년 '촛불' 교훈 잊었나)

"지금 우리는 예전 촛불집회가 보여주었던 위력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촛불집회가 갖고 있던 '비폭력적인 시위'의 인상은 많은 이들을 거리로 불러 모으게 했다. 촛불집회는 참여 인원들이 갖고 있던 자발적인 참여와 어울림으로써 '축제'의 형식을 띠었고, 집회에 많은 이들이 참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대중과 뭘 같이 할 생각이 없는 '싸움꾼' '엘리트' 정신이, 다수의 구경꾼만 만드는 건 맞다. 하지만 2008년에 사람들을 한 군데 모아놓고 축제를 했지만, 들어줄 생각 없었었던 MB정권에 의해 정치적 메시지가 '묻혔다'는 점도 말해야하지 않을까.

2006년 프랑스 '최초노동계약'(CPE) 반대 운동 당시, 전국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집회.
 2006년 프랑스 '최초노동계약'(CPE) 반대 운동 당시, 전국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집회.
ⓒ eric ga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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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광화문에 모여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주최 측과 빈 기자는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흩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흩어지는 것도 아니라, 사람들이 마치 유목민들처럼 '휘젓고' 돌아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광화문 광장'이라서 특별히 차벽이 세워진 게 아니며, 시위구간이 분할되면 경찰의 장비와 병력도 분할된다.

하지만 자꾸 변수를 만들고 경찰의 예측에 금을 낼 필요가 있다. 시위는 왜 꼭 서울, 그것도 경찰이 오랜 노하우를 쌓은 광화문 일대에서 '매우 정직하게' 차벽 하나하나 접수하는 식으로 해야할까.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할 수도 있고, 프랑스의 노동운동처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할 수도 있지 않을가.

경찰과 한 대오씩 싸우다 쓰러지면 또 다음 대오가 나서는 그런 '386식 시위'가 2015년에는 안 먹힌다. 무작위적인(randomized) '새끼 혁명들'로 가야한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기성언론이 탈맥락적인 보도를 못 하도록 힘을 빼놓고 시민들이 '종편에서 보던 거 하고 많이 다르다'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홍보해야 한다.

바리케이드와 짱돌에 중독 돼, 집회참가자들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어쩌면 상대가 바라는 걸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재미'가 중요하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오늘날 기득권은 과거처럼 '나 나쁜놈이오' 드러내며 독재를 하지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나 이렇게 피해자예요'하며 사람들의 일상적인 동정심에 호소한다.

그러면서도 일상의 모든 영역으로 미시적으로 침투해, 사람들의 생활패턴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꿔버린다. 그렇다면 시위도 '자주' 미시적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비장미와 엄숙미를 풍기며 '진지빠는' 호소가 아니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재미있는' 그러나 기득권에게는 매우 '폭력적인' 시위가 필요하다는 거다.(관련 기사: 토익책 태워 목살 구워먹은 대학생들, 왜?)

전남대 한복판에서 분서(책을 태움) 파티가 벌어졌다. '글로벌커뮤니케이션잉글리시(강제 모의토익 제도, 아래 글커잉)를 거부하는 학생모임' 소속 전남대 학생들이 토익 참고서를 태워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독특한 시위를 진행한 것. 이들은 지난 10월 30일 낮 12시 광주 북구 전남대 인문대 앞에서 "대학본부는 글커잉을 선택제로 전환하라"고 요구하며 책을 태우고, 돼지 목살을 구웠다. 이날 분서 파티 현장을 지나던 학생들이 고기를 먹고 있다.
 전남대 한복판에서 분서(책을 태움) 파티가 벌어졌다. '글로벌커뮤니케이션잉글리시(강제 모의토익 제도, 아래 글커잉)를 거부하는 학생모임' 소속 전남대 학생들이 토익 참고서를 태워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독특한 시위를 진행한 것. 이들은 지난 10월 30일 낮 12시 광주 북구 전남대 인문대 앞에서 "대학본부는 글커잉을 선택제로 전환하라"고 요구하며 책을 태우고, 돼지 목살을 구웠다. 이날 분서 파티 현장을 지나던 학생들이 고기를 먹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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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권력이 지역적이고 파편적이며 피권력자가 동의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면, 권력이 집중된 핵심 사령탑을 공격하는 혁명은 이제 더는 유효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 … 낡은 혁명관으로부터 저항의 기억을 구출해 내일의 수많은 새끼혁명들의 봉기를 재촉해야 한다." -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235쪽.


태그:#혁명,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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