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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의 뒷면에서 채증하는 경찰 2014년 3월, 경찰이 충청남도 아산 유성기업 앞에 모인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채증하고 있다. ⓒ 김민
저는 얼마 전 500만 원이라는 벌금을 약식명령을 통해 받았습니다. 와 무려 500만 원!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고요? 사실관계만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사진가로서 2014년 8월 15일 세월호 집회와 2015년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 나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예. 그게 다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기록하고 취재하고 작업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범죄였을까요?

약식명령서의 범죄사실을 보면, 저는 2014년 8월 15일 19시~22시경에는 보신각 사거리에서 종로 2가에 이르기까지 양방향 8개 전 차로를 점거하여 차량의 교통을 방해하였고... 2015년 5월 1일 15시~16시경에는 종로 2가로 행진하다가 창덕궁 앞 도로로 이동하여 17시~19시경까지 창덕궁 앞 전 차로를 점거하는 등 차량의 교통을 방해하였다]고 합니다. 교통 방해! 수백 수천 명의 집회참가자와 함께 공모해서 말이죠! 그렇게 저에게 일반교통방해죄가 찾아왔습니다. 500만 원의 벌금과 함께.
채증조 오신 날 2015년 5월, 경찰이 서울 종로구 안국동사거리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채증하고 있다. ⓒ 김민
카메라는 너의 얼굴을 인식한다. 2014년 2월, 경찰이 국민 총파업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채증하고 있다. ⓒ 김민
저는 이미 제주 강정마을에서 집시법으로 50만 원, 경남 밀양에서 건조물침입죄로 30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던 경력이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저는 사진가였고, 마찬가지로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기록하며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재수가 없었는지 시위 참가자들과 함께 연행이 되어 법의 사악한 심판을 받았죠. 굳이 지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앞서 받은 처벌이 이번 500만 원이라는 벌금과 연장선처럼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경찰의 채증 때문입니다.

경찰은 집회 시위 현장에서 무차별적으로 시민들을 채증합니다. 자그마한 캠코더로 시작하여 밝은 망원렌즈를 물린 고사양 DSLR과 플래시, 그리고 기자들이나 쓸 법한 사다리까지 두루두루 이용하며 매의 눈으로 모든 것을 채증하죠. 그렇게 채증한 자료들은 정보과로 넘어가 채증판독프로그램의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됩니다. 이 데이터베이스엔 집회 정보 및 당시 상황을 비롯하여 피채증자의 인상착의, 착용 소품을 비롯한 신상정보가 함께 입력되죠. 그것을 바탕으로 경찰은 '소환술'을 쓰고 검찰은 법의 이름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분명히 이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어 있을 것입니다. 확신합니다. 이미 경찰 조사에서 제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들을 '범죄 증거 자료'로써 수차례 봐왔고 집회에 나가기만 해도 소환장이 날아오는 상황인데 아닐 수가 없죠. 채증 자료 속 저의 모습은 얌전히 사진을 찍거나, 카메라를 들고 서 있거나, 걷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공모하여 도로 교통을 방해'했다는 증거는 오로지 억지로 끼워 맞춘 맥락상에서만 존재합니다. 네가 뭘 하든 뭘 했든 관심 없고 찍혔으니 일단 벌금이나 먹어라 이거죠.
둘러싸고 채증하는 경찰 2013년 12월 경찰이 파업 중인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 건물을 침탈했던 날, 이에 항의하는 시민을 연행하며 채증하고 있다. ⓒ 김민
구석구석 채증 2014년 1월, 경찰이 밀양 경찰서 앞에서 진행된 경찰의 인권침해와 부당한 공권력 사용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들을 채증하고 있다. ⓒ 김민
요약하자면 이런 순서로 진행됩니다.

1. 채증판독프로그램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인물이 집회에 나온다
2. 그는 채증당한다. 집회는 별일 없이 평화롭게 끝난다.
3. 채증판독프로그램이 그를 걸러낸다.
4. 검찰이 적절한 불법을 생각해낸다.
5. 님 기소!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2012년부터 이러한 경찰의 채증을 사진으로 쭈욱 찍어왔습니다. 무차별적 채증 전쟁을 채증하는 작업을 한 것이죠. 작년 이맘때쯤에는 채증작업으로 개인전도 하고 공안예술상이라는 것도 받고 올해 초에도 전시를 한 번 더 했습니다. 예. 그러다가 이 꼴이 났습니다. 채증을 채증하는 작업을 하다가 채증당한 사람이 되어 처벌을 받게 된 것이죠. 우. 엿 같군요.

솔직히 말하면 두렵습니다. 탄압받는 현장에 나가 사진 찍는 게 제 일이고 작업의 일환이고 하루하루 알바로 먹고 사는 이유이자 제가 실천하는 연대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현장에 나가는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나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어떤 법적인 공격이 펼쳐지는지 뼈저리게 겪은 상황에서 또 걸리면 어떻게 될지... 눈앞에 500만 원이 둥둥 떠다닙니다.
채증 전문가의 날카로운 눈빛 2015년 5월 1일, 경찰이 서울 종로구 안국동사거리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채증하고 있다. ⓒ 김민
그래도 싸워보려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 또한 다른 예술가들도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벌금을 왕창 받고 있습니다. 정부는 채증->벌금으로 이어지는 이 시스템을 하나의 창조경제 산업으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엿 같은 시스템입니다. 숨만 쉬어도 불법입니다.

얼마 전 법원에 가서 정식재판 청구를 한 상황입니다. 벌금 500만 원이 그대로 나올지 깎일지 무죄가 나올지 모릅니다만, 저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할 생각입니다. 불법에 불복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경과를 보고할 테니 꾸준히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와 당신과 채증 2014년 6월, 경찰이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세월호 집회 참가자들을 연행하며 채증하고 있다. ⓒ 김민
도로를 점거하고 채증하는 경찰 2014년 2월, 경찰이 국민총파업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을 채증하고 있다. ⓒ 김민
○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채증, #경찰, #공권력, #벌금, #기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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