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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영화 <사도> 자체가 역사 서술의 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는다. 2015년에 만들어진 시대극인 만큼 오늘날의 역사 전쟁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물론 영화 <사도> 자체가 역사 서술의 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는다. 2015년에 만들어진 시대극인 만큼 오늘날의 역사 전쟁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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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간의 슬픈 사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는 영화 <사도>. 영화보다 더 슬픈 현실이 한둘이 아닌 세상이라 딱히 눈물이 나지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일어나는 슬픔의 상념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나는 자식을 죽인 임금으로 기록될 것이다."

영화 속 이 대사를 보면서 역사 사(史) 슬퍼할 도(悼), 서글픈 역사, 사도(史悼)가 떠오른 까닭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 여론을 외면한 채 밀어붙이는 한국사 국정교과서로 대한민국의 역사가 죽었다고 슬퍼하는 사람이 많다. 사도의 제목을 패러디한다면, 국정교과서를 통한 역사 교육은 만인의 역사를 도적질하는 사도(史盜)이다. 올바른 정도를 걷는 책이 아니라 사도(邪道)의 길을 걷는 책이다.

'좋은 대통령은 역사를 바꾸고 나쁜 대통령은 역사책을 바꾼다'는 길거리의 현수막이 이를 웅변한다. 과거 왕조사에서 어느 왕도 함부로 하지 못했던 역사에 대한 권력의 개입은 많은 저항을 불러오면서 역사 서술의 주체에 대한 통렬한 인식을 일깨운다.

권력자는 왜 그토록 국정교과서에 목을 매고 집착을 할까? 앞선 대통령들과 달리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왜 더더욱 역사 교과서 다시 쓰기에 몰두하는 걸까? 물론 이유는 한둘이 아닐 것이다. 영화 <사도>를 보면서 영화 속 주인공인 영조와 사도세자에 대해 드는 생각은 애처롭다 못해 안쓰럽다. 박근혜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 작금의 이 현실 자체가 새로운 역사로 쓰여 미래 세대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물론 영화 <사도> 자체가 역사 서술의 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는다. 2015년에 만들어진 시대극인 만큼 오늘날의 역사 전쟁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상대에 대한 부정... "너는 존재 자체가 역모"

영조도 처음에는 늦둥이로 태어난 사도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다. 오죽하면 영조는 사도가 태어난 첫해, 바로 그를 세자로 책봉했다. 지나친 사랑이자 기대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조급함이 비극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영조도 처음에는 늦둥이로 태어난 사도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다. 오죽하면 영조는 사도가 태어난 첫해, 바로 그를 세자로 책봉했다. 지나친 사랑이자 기대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조급함이 비극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 타이거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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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논어>에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하고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소인과 군자의 비교 자체가 오늘 시대에는 어불성설이지만, 굳이 두 개념을 빌려서 오늘날 역사 서술의 문제점을 짚어보자.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반대는 국정화가 대한민국을 후진국으로 후퇴시킨다는 점이었다. 북한, 몽골, 베트남 같은 후진 공산국가에서만 사용하는 국정 교과서로 돌아가는 것이 과연 21세기 경제 선진화를 추구하는 OECD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국정은 사라지고 검인정 체제로 전환하거나 더 나아가 자유발행제를 시행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 역사학자의 90%가 좌파이고, 그동안 수백만 아이들이 배워온 국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어 있다는 지적이었다. 교과서를 쓴 학자와 교사는 물론, 가르치는 사람들도 좌파 의식에 물들어 올바른 국사 교육이 안 되었다는 주장이다. 친일 왜곡, 독재 미화 교과서로 비판받은 교학사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은 나머지 99.9%의 역사 교과서는 모두 민중사관에 기초한 좌파적 교과서라는 이 놀라운 인식. 영화 <사도>에서는 아버지 영조가 아들 사도에게 던진 다음 말과 다르지 않다.

"너는 존재 자체가 역모야."

한 마디로 상대에 대한 절대 부정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같은 인식과 지향을 갖지 않으면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여겨 죽여 없애야 할 적으로 생각하는 태도, 공자가 소인의 전형으로 꼽은 동이불화의 편협한 틀에 갇힌 태도다.

영조도 처음에는 늦둥이로 태어난 사도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다. 오죽하면 영조는 사도가 태어난 첫해, 바로 그를 세자로 책봉했다. 지나친 사랑이자 기대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조급함이 비극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사랑하기 때문에 죽여 버려야 하는 아이러니의 역사적 비극. 도대체 자신과 같은 핏줄의 아들을 부정하고 어찌 국정을 올바로 운영한다는 말인가.

다원화된 21세기다. 역사를 보는 눈은 왼쪽도 있고 오른쪽도 있고 재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다양하다. 그 다양한 인식과 논리가 만나서 역사의 바다를 이루고 서로 어울려 물결치고 파도가 되면서 역사는 흐른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상대를 부정하는 이분법의 망언이 난무한다. 순천 지역 국회의원 이정현 의원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는 발언을 했다가 지역 주민과 야당 국회의원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유감을 표명했다.

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군자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화이부동의 정신을 잃고 동일자의 논리로 타인을 부정한 결과는 비극으로 점철된다. 무엇보다도 영조 자신의 고통으로 다가온 그 결과를 영화 <사도>는 생생히 증언한다.

공부와 예법, 국시의 무서움

공부와 예법이 국시라고 외친 영조, 그러나 사도에게는 국시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공부와 예법이 국시라고 외친 영조, 그러나 사도에게는 국시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 타이거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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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국정화를 예견한 감독 이준익의 통찰일까? 영화 <사도>의 대사 중에 '역모'에 이어 가슴을 찌르는 두 번째 단어가 있다. 바로 '국시'(國是)다. 나라 국(國) 옳을 시(是). 나라를 이끌어가는 국정의 철학이자 지표라는 말이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 국가주의가 퇴색해도 한창 퇴색한지라 이 말을 다시 들을 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라가 없어진 건 아니지만, 세계화, 다문화 속에서 한 나라의 단일 이념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국시(國是) 자체가 국가주의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현직 국회의원이 국시를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라고 주장했다가 구속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기억하는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있었던 국시 파동이다. 살벌하지 않은가. 지금은 대통령도 통일 대박을 외치는 시대지만 당시에는 통일조차도 반공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하면 현직 국회의원조차 구속됐다. 이때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지금도 국시라는 말을 들으면 그건 상당히 위험한 단어라는 인식이 뇌리에 박혀 있다. 그런데 <사도>에서 다시 그 단어를 만난 것이다.

"임금이 공부 모자라고, 대님 하나만 삐딱해도 멸시하는 것이 신하다. 이 나라는 공부가 국시(國是)고 예법이 국시(國是)야."

'공부가 국시고 예법이 국시'라는 영조의 이 말을 더 자세히 음미해보자. 예법과 공부라. '인성교육진흥법'과 '국사 국정 교과서'를 연상케 하는 이 말은 인간의 어떤 자발적이고 따스한 마음보다도 국가의 체제와 왕조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인성을 주입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공부가 국시라는 영조의 말은 또 어떠한가. 맥락 없이 들으면 이 말은 영조가 학문을 숭상하고 실력을 존중하는 사람처럼 들린다. 하지만 역사적 현실이나 영화적 맥락을 살펴보면 영조의 공부 강조는 왕조권력과 자존심을 지키려는 위기의식과 열등감의 산물이기도 하다.

지금은 왕조 시대가 아니라 정부, 국회, 사법의 삼권이 엄연히 분리된 공화국 시대다. 그러나 그것은 명문화된 법의 이론이 그렇다는 얘기이다. 현실은 다르다. 때로는 대통령의 권력이 입법, 사법을 압도하기도 하고 반대로 여소야대 국회 체제 아래서는 대통령이 야당의 국회의원들에게 곤궁을 당하고 시달리기도 하는 시대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어떨까. 정치력 발휘를 위해 여당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와 아를 선명하게 나누고, 이념공세로 국민을 갈라놓아야 한다. 국사 교과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다.

아버지 영조를 죽일 수 있었지만 차마, 죽이지 않고 돌아온 사도의 목소리를 기억하자.

"내가 왜 그날 밤 당신을 죽이지 않고 그냥 돌아왔는지 아시오? 사람이 있고 공부와 예법이 있는 것이지, 어떻게 공부와 예법이 사람을 옥죄는 국시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난 임금도 싫고 권력도 싫소.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국민은 민생을 원한다. 민생이란 천박한 물질적 욕망이 아니다. 가족과 이웃 간에, 직장 동료와 지역 주민이, 국가와 민족 간에 서로 다정하고 따뜻한 눈길과 말을 주고받는 인간적인 삶이 최고의 민생이다. 공부와 예법이 민생보다 따스한 관계보다 중요할까? 세상의 어떤 율법과 이상도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국시가 된다면 그 사회의 전쟁과 지옥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계몽 군주의 오만과 독선이 우민(愚民)을 양산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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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자라날 세대들에게 역사 공부를 열심히 시켜보겠다는 심사일까? 이미 세계 최고의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학생들이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한국사 공부를 아니 할 도리가 없는데, 외눈박인 사관으로 쓰인 책만을 공부하라는 국가의 명령 앞에서 말을 잃는다.

대통령은 입만 열면 국가관, 역사관, 통일 시대, 올바른 등등 입을 열지만 정작 그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가르치는 대로, 떠먹이는 대로 단일 가치에 의한 국사 교과서로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태도나 다름없다. 오만이 느껴진다.

백성을 무지한 존재로 인식하고, 가르치는 대로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계몽의 대상으로 여긴다. 국민은, 학생들은 자기 눈으로 자기 스스로 조상들이 살아온 시대와 역사의 흐름을 왜 알아서 공부할 수 없는가. 이는 군사 독재정권 시절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겨 국민교육헌장을 도입하고 강제로 암기시킨 박정희의 망령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국민의 계몽이 아니라 우민화다. 상대를 무지한 계몽의 대상으로 여겨 가르치는 대로 배우라는 것도 한심한 발상인데, 거기에 친일, 독재 미화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국정 교과서를 준다면? 국민은 진정 올바른 역사관이 아니라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는 노예적인 역사관에 빠지고 만다. 이 어찌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법한 일인가.

1968년 10월 유신의 장기집권을 앞둔 박정희는 어용학자 박종홍 등을 시켜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었다. 1994년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에 와서야 초등학교가 사라지고 국민교육헌장이 폐지되었다. 1970·1980년대 초·중·고를 다닌 학생이었다면 지금도 입에서 줄줄 외는 국민교육헌장. <응답하라 1994> 이후 세대들에게는 낯설고 기이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전형인 국민교육헌장이 오늘날 국정교과서로 부활하는 느낌이다.

1972년 초등학교(당시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87년에 대학을 졸업한 나의 경우, 초·중학생 시절의 국민교육헌장은 해마다 국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받는 기준이었다. 교사마다 다르긴 했지만, 국민교육헌장을 제대로 외지 못한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물리적·정신적 폭력은 국민교육헌장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 이상과는 너무 거리가 먼 것이었다.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시민들이 같은 시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이지만 누구나 민족중흥 역사적 사명과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해야 할 의무는 없다. 일본의 교육칙어가 보여주는 군국주의, 국가주의의 아류로 탄생한 국민교육헌장은 구시대 침략주의와 제국주의의 유물이다.

국민교육헌장은 일제 교육칙어와 이광수의 국민개조론을 박정희식으로 변형한 결과물이다. 국정 교과서는 무엇인가? 국민교육헌장을 통해서 국민을 획일화시키고 국론을 분열시킨 국민교육헌장의 변형이다. 국민을 무지한 계몽의 대상으로 낙인찍고 국가가 지표를 제시할 테니 국민은 모두 그것을 외우고 따르라는 압력이다. 자율, 소통, 다양성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공부를 국시화한 영조,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박근혜 대통령. 둘이 어딘가 닮지 않았는가. 국민교육헌장이 발표되고 나서 4년 뒤에 장기집권과 국민탄압이 본격화되는 시월유신이 단행됐다. 국정교과서는 단순히 교과서만의 문제일까? 국민이 이를 통해 획일화, 우민화된다면? 국시를 강요해서 아들을 역도로 몰아 죽인 아비의 비극을 생각할 때, 국정화를 반대하는 국민을 비국민, 반역자로 몰아 희생자로 몰아가는 비극이 없을 것인가.

떳떳함과 부끄러움의 정치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역사 교육 정상화에 대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황 국무총리는 "더 이상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교과서로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며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헌법가치에 충실한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 황교안 "역사교육 정상화는 우리 세대의 사명"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역사 교육 정상화에 대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황 국무총리는 "더 이상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교과서로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며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헌법가치에 충실한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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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나 총리나, 자신들이 마이크를 잡았을 때는 그리 당당하게 큰소리를 치면서, 왜 국민과 소통하고 대화를 나누는 데는 인색한가. 언어를 통한 떳떳함의 기준은 다른 데 있지 않다. 토론과 질문이다.

대학 시절 유럽 유학 기간 유럽의 토론 문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정작 토론의 과정을 무시하는 것 같다. 자기 관리를 위한 정치적 제스처이지만, 이는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국민은 귀 열린 대통령을 원한다. 왜 떳떳하게 국만의 질문을 받고, 당당하게 답하지 않는가.

국정교과서의 당위성을 설파한 황교안 총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내뱉은 말에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조목조목 비판했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도 지극히 한정적이고, 그나마 방송에는 제대로 나가지 못했다.

아버지 영조의 수렴청정 아래서 사도는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기 정치를 실현했다. 신하들의 기득권 유지에 대해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답할 수 없으면 정책을 바꾸어 개혁을 시도했다. 아버지 영조 때문이 그의 개혁이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지만 사도 그에게는 떳떳함이 있었다.

그가 지향한 세계는 물욕 가득한 현실정치의 왕좌가 아니었다. 저 높고 푸른 하늘, 인간의 푸른 숨결이 자유롭게 넘실대는 하늘이었고, 어쩌면 그 하늘 아래 울고 웃고 지지고 볶고 살아가는 백성의 자유와 행복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도, 그가 오늘에 와서 다시 이 역사전쟁을 보고 한마디 한다면 무어라 할 것인가. 그에게는 허공을 향한 떳떳한 자유의식이 있었다. 역사를 회칠하고 과거를 핑계 삼아 현재를 갈라놓는 이들에게 사도를 아느냐고 일갈하지 않겠는가.

문득 자유를 꿈꾸며 살아간 슬픈 영혼에 대한 만가(輓歌) 한 편이 떠오른다. 사도(思悼)의 명복을 빈다. 국정화 사슬에 얽힌 우리의 슬픈 역사, 사도(史悼)에게도.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또,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중에서

○ 편집ㅣ곽우신 기자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사도, #박근혜, #국정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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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국어교사로 토론교육 운동을 통해 토론의 전사를 키워내왔다. 오랜 세월 토론 공부의 성과를 모아 토론의 전사1~10 시리즈를 기획 집필하고 공부를 사랑하라. 강자들은 토론하지 않는다. 질문이 있는 교실(한결하늘) 등을 출간하며 교육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가고 있다. 서울의 고등학교 명퇴 후 현재 산청의 지리산고등학교에서 기간제로 근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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