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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주제 중 하나가 '노동시장 개혁'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와 여당이 이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여당은 '노사정 합의' 직후인 지난달 15일 관련 5개법안 개정안을 내놨으며 정부는 14일 노사정위원회 산하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구성을 마무리하는 등 정책 법제화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해당 정책의 직접적인 적용을 받는 일반 노동자들은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변화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법 전문용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14일 오후 국회에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주최로 '9.15 노사정 대타협과 법적 쟁점' 토론회가 열렸다. 대타협과 개정안의 세부 내용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따져보자는 취지였다. 한국노동법학회, 서울대학교 노동법연구회, 한국비교노동법학회 등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이날 토론장에 패널로 나온 7명의 노동법 전문 학자들은 이번 합의 내용과 새누리당의 노동관련 5개 법안 개정안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명했다. 세부적으로 봤을 때 노동자에게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불공정한 내용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날 토론 내용을 키워드별로 정리했다.

노상헌 서울시립대 교수가 14일 열린 '9.15 노사정 대타협과 법적 쟁점'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노상헌 서울시립대 교수가 14일 열린 '9.15 노사정 대타협과 법적 쟁점'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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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일반해고- 해고 쉬워질까?] "YES"

'일반해고'는 이번 노사정 합의문에서 가장 논란이 된 내용이다. 일반해고는 저성과자나 근무태도가 불량한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개념이다. 노사정은 법과 판례를 바탕으로 우선 행정지침을 만든 후 추후 법제화를 추진키로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휴직·정직·전직·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정당한 이유'가 뭔지 정부가 명확하게 정해주겠다는 것이다. 이에 '일반해고는 곧 쉬운 해고'라는 비판이 일자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등 정부 인사들은 강력히 부인한 바 있다.

패널들은 정부의 주장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현재 형성된 판례들이 어떤 지침을 만들 정도로 단순화시키기 어렵다는 이유다. 강성태 한양대 교수는 "지침을 만들 정도로 판례가 명확하다면 굳이 지침을 만들 필요가 없다, 반대로 지침을 만들 정도로 판례가 명확하지 않다면 그 지침을 굳이 왜 만들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 법치주의 측면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뭐라고 행정지침을 정하든 결국 해고의 타당성을 결정하는 것은 법원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권한도 없이 무의미한 행정지침을 도입하려 하는 걸까.

박귀천 이화여대 교수는 "'어떤 경우에 해고가 가능하다'는 정부 행정지침이 나오면 기업은 '그대로 따라서 해도 된다'로 읽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고의 적법 여부는 지금처럼 대법원에서 다투게 되지만 일선 노동현장에서 기업이 노동자에게 해고를 지금보다 남발하는 상황이 생겨날 수 있다는 얘기다.

[②통상임금- 내 인건비 줄어들까?] "YES"

통상임금이란 통상적으로 노동시간, 노동일수당 지급되는 임금액을 말한다. 원래는 기본급만 통상임금으로 간주됐지만 2013년 12월 대법원 판결로 상여금, 근속수당, 교통비, 식비 등도 통상임금에 포함되고 있다. 

그러나 특정 시점에 재직중인 노동자에게만 지급되는 상여금이나 명절 귀향비, 휴가비 등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통상임금 범위가 어디까지냐에 따라 실질적인 인건비가 정해지기 때문에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민감한 문제다. 이번 노사정 대타협에서는 통상임금 기준을 명확화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노동법학자들은 이 내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대타협 직후 새누리당이 낸 개정안은 이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여당은 이번에 제출한 개정안에서 통상임금을 '기업이 노동자에게 노동의 대가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사전에 정한 일체의 금품'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금품은 통상임금 정의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정부에 통상임금 범위를 정할 수 있게 상당한 재량을 준 셈이다.

김홍영 성균관대 교수는 이 지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간 고용노동부의 행보를 볼 때 행정 편의를 위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축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고용노동부는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육아휴직급여를 지급하는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통상임금 기준이 바뀌었음에도) 통상임금 해석을 확대하지 않고 (이전처럼) 육아휴직 급여를 계산한 전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과거 사례들을 보면 정부는 통상임금의 범위를 명확히 한다는 핑계로 통상임금을 축소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서 "정부에게 통상임금 제외 권한을 부여해서는 안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통상임금은 연장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연차휴가수당 등을 계산하는 기준이다. 통상임금이 축소되면 기업은 연장근로나 휴일근로를 시키는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키기 쉬워진다. 김 교수는 "통상임금의 범위가 축소된다면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③비정규직- 파견직 늘어날까?] "YES"

비정규직 문제는 이번 노동개혁의 본질과 근접해있는 사안 중 하나다. 노사정은 비정규직 보호를 골자로 한 대타협안을 도출했지만 정작 새누리당이 낸 관련법 개정안에는 그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 담겨있다.

노상헌 서울시립대 교수는 새누리당 개정안의 가장 문제가 되는 내용으로 뿌리산업(제조업 기초공정 기술인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관련)에 대한 파견을 허용했다는 점을 꼽았다. 파견은 대표적인 비정규직 근로형태 중 하나다.

노 교수는 "뿌리산업 6개 공정은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 공정"이라면서 "이 산업에 파견을 허용할 경우 사실상 제조업 전반에 파견을 확대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급적 정규직을 고용하고 인건비 절감만을 이유로 한 비정규직 남용은 억제한다는 노사정 합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문무기 경북대 교수는 새누리당의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법(기단법) 개정안 내용을 지적했다. 이 개정안에는 만 35세 이상 노동자가 동의할 경우 기간제 고용의 허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내용이 담겨있다.

현행법에 있었던 노동자가 2년 근무를 채우면 자동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게끔 하는 내용은 개정안에는 빠져있다. 문 교수는 "개정법안은 대다수 노동자를 기간제 노동자로 고착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④실업수당- 더 받기 어려워질까?] "YES"

새누리당이 낸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보면 실업급여 지급수준을 실직 전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지급기간을 90~240일에서 120~270일로 확대하도록 했다. 그러나 학자들은 '실직자가 실업급여를 받기는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우선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최소한 채워야 하는 근무일수가 유급휴일 포함 180일에서 270일로 대폭 강화됐다. 예전에는 6개월 일했으면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9개월은 일해야 신청할 수 있게끔 바꾸겠다는 것이다. 구직급여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90%에서 80%로 낮아졌다.

노상헌 서울시립대 교수는 "요즘은 6개월 정도 일하는 단기 계약직이 매우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실업급여를 안 주겠다는 것"이라면서 "실질적으로 저임금의 청년층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4년 기준으로 구직을 하는 저임금근로자의 67%가 하한액을 수령하고 있다"면서 "실업급여의 보장성을 강화한다는 원래 취지는 사라지고 실업급여의 문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는 개정안"이라고 설명했다.


태그:#노사정대타협, #노동법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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