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상괭이 오월이. 오월이는 지난해 5월 부산 기장군의 해안가에서 발견된 후 1년 5개월 여가 흐른 30일 바다로 돌아갔다. 입꼬리가 올라간 오월이는 '웃는 돌고래'로 불렸다.
 상괭이 오월이. 오월이는 지난해 5월 부산 기장군의 해안가에서 발견된 후 1년 5개월 여가 흐른 30일 바다로 돌아갔다. 입꼬리가 올라간 오월이는 '웃는 돌고래'로 불렸다.
ⓒ 부산아쿠아리움

관련사진보기


▲ 상괭이 '오월이' 상괭이 '오월이'가 치료를 받던 중 수조에서 노니는 모습.
ⓒ 정민규

관련영상보기


'오월이'의 고향은 바다였다. 모든 상괭이가 그러하듯. 쇠돌고랫과에 속하는 상괭이는 특히 한반도의 남해안과 서해안에 집중적으로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토종 돌고래이다. 아마 오월이에게도 무리를 지어 다닐 가족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월이가 홀로 발견된 건 지난해 5월 부산 기장군의 어느 해안가였다. 고래가 이렇게 육지로 밀려오는 것을 '좌초'라 부른다. 해안가가 궁금했던 오월이의 호기심이 좌초의 이유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에서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았던 흰나비가 청무우밭인가 싶어 내려선 바다에 날개가 젖어 지쳐 돌아온 것처럼, 오월이는 발견 당시 지쳐있었다.

국내 유일의 해양수산부 지정 상괭이 구조·치료기관인 부산아쿠아리움으로 오월이가 오던 날을 이곳 해양생물전시팀의 양준호 과장은 또렷이 기억한다. 발견 당시 고작 120cm의 작은 키였던 오월이는 기껏해야 생후 1년 반 정도 된 어린 고래였다. 축 늘어진 오월이는 성인 둘이 번쩍 들어 올릴 정도로 가벼웠고, 간 수치와 빈혈 수치는 높았다.

수족관으로 옮겨진 오월이의 치료가 시작됐다. 이름이 붙여진 것도 그때 즈음이다. 5월에 구조했다 하여 붙은 이름이었다. 약물치료를 하며 1년 5개월여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 사이 식성도 좋아졌다. 열빙어와 양미리, 전갱이 같은 작은 생선을 주로 먹으며 힘을 키웠다. 이중 부드러운 열빙어를 오월이는 가장 좋아했다.

작년 5월 발견 이후 1년 5개월

30일 상괭이 '오월이'를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부산아쿠아리움 아쿠아리스트들이 오월이를 물 밖으로 들어내고 있다.
 30일 상괭이 '오월이'를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부산아쿠아리움 아쿠아리스트들이 오월이를 물 밖으로 들어내고 있다.
ⓒ 부산아쿠라이룸

관련사진보기


오월이가 무럭무럭 자랐다는 것은 이제 녀석이 다시 바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는 의미였다. 여름철 태풍이 지나고 난 뒤 오월이를 바다로 돌려보내기로 했고, 그래서 꼽힌 날짜가 9월 30일이었다. 이별을 준비하는 부산아쿠리아리움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120톤이 들어가는 수조에서 물을 뺀 후 남자 아쿠아리스트 3명이 서서히 오월이를 포위해 들어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을까. 오월이가 수조의 측면으로 몸을 바짝 붙었다. 아쿠아리스트는 몸을 던져 오월이를 안았다. 올 때 2명이 가뿐하게 들어 올렸다던 오월이는 이제 건장한 남성 3명이 잡아도 휘청거릴 정도로 힘이 세져 있었다. 

정수리에 달린 엄지손톱만 한 숨구멍으로 들숨과 날숨이 가빠지는 것이 보였다. 돌고래 아니랄까봐 '끼익'하고 연신 울었다. 신기하게도 아쿠아리스트가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괜찮을 거야"라 말하듯 오월이를 꼭 끌어안자 가빠졌던 숨이 돌아왔다. 사람들은 오월이가 자기를 돌봐준 사람을 알아본다고 했다. 

27살 젊은 아쿠아리스트에게 어울리는 이름일지는 모르지만 '오월이 엄마'로 불리는 김다솔씨는 그래서인지 '딸'과의 이별이 서운한 눈치였다. 먹이를 줄 때 오월이는 김씨와 눈을 자주 마주쳤다. 손을 흔들면 자기도 따라 고개를 까딱까딱 움직였다. 출근하면 김씨를 가장 먼저 반갑게 맞아준 것도 오월이였다. 이송을 위해 트럭에 실린 오월이를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까치발을 한 김씨의 뒤꿈치는 좀처럼 땅에 닿지 않았다.

야생적응 훈련만 무사히 마치면 '진짜 바다'로

30일 오후 상괭이 '오월이'가 야생 적응 훈련장이 마련된 거제도 앞바다로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30일 오후 상괭이 '오월이'가 야생 적응 훈련장이 마련된 거제도 앞바다로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 부산아쿠아리움

관련사진보기


폐로 호흡을 하기에 물 밖에서도 숨을 쉬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피부가 마르면 곤란했다. 특수하게 개조한 트럭은 마치 스프링클러처럼 쉬지 않고 물을 퍼 올려 오월이를 촉촉하게 적셨다. 물은 오월이에게 뿌려지고 있었지만, 이병제 전담 수의사의 얼굴 역시 땀범벅이었다. 다행히 오월이의 건강 상태는 좋다고 했다.

"마치 집에 돌아간다는 걸 아는 거 같죠."

이 수의사가 웃음지었다. 입꼬리가 올라가 '웃는 상'인 상괭이 중에서도 오월이는 유독 정이 많은 녀석이었다. 이제껏 아쿠아리움에서 치료를 받고 바다로 돌아갔던 4마리의 상괭이가 모두 수컷이었던 반면 오월이는 첫 번째 암컷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동시에 오월이는 처음으로 위성추적장치를 단 상괭이기도 하다. 바다로 돌아가기 전 오월이의 등엔 50g 남짓한 안테나가 달렸다. 오월이가 4~5분에 한 번씩 숨을 쉬기 위해 수면에 올라오면 인공위성이 오월이의 위치를 찾는다. 이를 통해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한반도 연안 상괭이의 생태 습성을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막중한 책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월이는 가두리 양식장 형태의 야생 적응훈련장이 마련된 거제 앞바다로 풍덩 뛰어들었다. 물로 들어가선 고개를 빼고 사람들을 쳐다보며 까딱였다. 마치 인사라도 하듯. 이곳에서 살아있는 먹이 포획법 등을 익히면 10월 21일에는 훈련장을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구 상 유일하게 남은 상괭이 밀집 지역, 서남해

30일 거제 앞바다 야생 적응 훈련장에 들어간 상괭이 '오월이'가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잠시 나와있다.
 30일 거제 앞바다 야생 적응 훈련장에 들어간 상괭이 '오월이'가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잠시 나와있다.
ⓒ 정민규

관련사진보기


물론 모두가 오월이의 귀환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이날도 오월이의 방류 지역으로 결정된 거제도의 어민들은 오월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고래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에 따라 고래를 잡아 식용으로 유통할 수 없는 데다 연안에는 3만 마리에 달하는 상괭이가 있어 상품성 있는 물고기들을 먹어치운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민들의 마음이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 해 2천 마리 이상 불법 포획과 무관심 속에 죽어가는 상괭이를 이대로 바라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은 상괭이를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상괭이가 가장 많은 한반도 앞바다에서까지 녀석들이 사라지면 멸종으로 바짝 다가서게 된다. 

이런 위기감 때문에 정부(해양수산부)는 본격적으로 상괭이 보전을 시작했다. 이미 1950년대부터 상괭이에 대한 연구에 들어가 지금은 인공번식에까지 성공한 일본과 달리 한국의 상괭이 연구는 걸음마 수준이다. 2007년에야 국내 1호 상괭이 박사가 나왔을 정도다.

바로 그 1호 박사인 박겸준 고래연구소 연구사도 이날 동행했다. 박 연구사는 "상괭이의 개체 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고, 이 추세대로라면 언젠가 없어질지 모른다"면서 "상업적 가치가 없다고 한국의 대표 돌고래를 하찮게 여겨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태그:#오월이, #상괭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