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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동대구고속터미널에서 열린 '시외버스 및 고속버스의 교통약자 접근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린 후 장애인들이 고속버스 앞에서 버스를 타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24일 오후 동대구고속터미널에서 열린 '시외버스 및 고속버스의 교통약자 접근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린 후 장애인들이 고속버스 앞에서 버스를 타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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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인 김사달(가명)씨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고향에 가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에서 저상버스에 올랐다. 모처럼 부모와 가족을 만난다는 기쁜 마음으로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서 울산행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승차권을 구매했다.

하지만 승차권을 들고도 고속버스를 탈 수 없어 한참동안이나 서성이다가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고속버스 중에는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저상버스가 아직 한 대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흐르는 눈물만 닦으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해야 했다.

지난 2005년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제정됐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생색내기 정책으로 인해 아직까지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의 도입률은 14.5%에 불과하다. 더욱이 저상버스 도입 책임이 있는 전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 154곳 중 100여 곳은 아직까지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없다.

여기에 특별교통수단 도입률도 법정 기준의 50% 수준에 불과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정확한 통계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모든 교통수단과 여객시설 등을 장애인 등의 교통약자가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광역버스, 마을버스 등은 현재까지도 교통약자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

이번 김사달씨의 경우처럼 명절이나 휴가철에 혼자 고향을 방문하거나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교통편이 열악하다. 이런 이유로 장애인들이 시외권 이동 보장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4일 오후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교통약자 접근권 보장을 촉구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4일 오후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교통약자 접근권 보장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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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지역공동체와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장애인단체들로 구성된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는 24일 오후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교통약자들의 접근권 보장을 촉구했다.

이들은 '장애인도, 어르신도, 임산부도 함께 타는 저상버스 도입하라',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 보장하라' 등의 손피켓을 들고 "장애인도 추석에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금호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로, 교통약자라는 이유로 이동수단을 박탈당하는 것은 문제"라며 "법원도 고속버스 등이 장애인이 승차할 수 있도록 하라고 판결을 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속버스의 내부. 일반인 좌석으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의자는 단 하나도 없다.
 고속버스의 내부. 일반인 좌석으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의자는 단 하나도 없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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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한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경북에 있는 장애인들은 고향에 가고 싶어도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라며 "장애인들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도록 이동편의증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기까지는 교통약자의 설움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탁정아씨는 "10개월 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성로에 나갔는데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며 "교통약자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아이를 가지고 나서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탁씨는 이어 "아이를 데리고 저상버스를 타기도 힘든데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없는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장거리를 운행하는 버스에도 장애인이나 교통약자가 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24일 오후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 및 고속버스의 교통약자 접근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후 참가자들이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휠테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24일 오후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 및 고속버스의 교통약자 접근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후 참가자들이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휠테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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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4일 오후 고속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결국 장애인석이 없어 탑승하지 못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4일 오후 고속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결국 장애인석이 없어 탑승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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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을 마친 장애인들은 전날 미리 예약한 고속버스 승차권을 들고 고향으로 가려고 했지만 단 한 명의 장애인도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고향에 가려던 장애인들은 울분을 터뜨렸고 결국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일부 장애인들은 버스 출입문을 붙잡고 애원하기도 했지만 어느 누구도 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날 오후 2시 50분에 울산으로 떠나는 고속버스와 오후 3시에 인천으로 떠나는 고속버스는 결국 한 사람도 태우지 못한 채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버스가 떠나가자 낙담한 장애인들은 이동편의 시설을 갖추지 못한 고속버스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장애인, #교통약자, #고속버스,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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