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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정투쟁이 남긴 것 중 하나. 발이 새까매졌다.
 미국 원정투쟁이 남긴 것 중 하나. 발이 새까매졌다.
ⓒ 고은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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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월요일, 미국 원정 시위 25일째, 미국 백악관 앞 23차 시위. 그동안 워싱턴의 날씨는 한결같이 30℃를 넘어 매일 땀으로 목욕을 하다시피 했다. 모자를 쓰고 자외선 차단크림을 발라도 얼굴은 새까매지고 발등은 까마귀 발처럼 변해버렸다.

누가 돈을 주고 이 짓을 하라고 하면 했을까? 은숙씨와 나는 이런 말을 나누며 마주보고 웃었다. 나는 1950년대 중반, 은숙씨는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났다. 둘 다 다행스럽게도 전쟁을 피해 태어났지만, 조국은 이미 두 동강이 나 있었다. 그리고 분단 때문에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분단 70년을 맞은 조국의 미래를 위해 한 달간이라도 이렇게 전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건 행운이었다.

사람의 몸이나 국제관계나 원리는 똑같다

지난 7일 잰(JAN) 할머니가 우리 뜻에 동감한다며 피켓을 들어주고 있는 모습.
 지난 7일 잰(JAN) 할머니가 우리 뜻에 동감한다며 피켓을 들어주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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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베스 부부와 함께.
 토니·베스 부부와 함께.
ⓒ 고은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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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가톨릭 워커' 캐시 할머니의 주선으로 환경이 더 나은 토니·베스 부부의 집에서 묵게 됐다. 두 딸은 장성해 모두 집을 떠났단다. 마침 발목을 삐어 몇 달째 보조신발을 신고 있던 베스에게 침을 놔줬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혈과 기를 통해 손가락을 늘이는 현상을 보여주며 설명해줬다. 자기도 요가를 해봐서 그런 것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베스와 인체는 얼마나 신비하고 오묘한 기적 덩어리인가에 대해 공감을 나눴다.

사람의 몸이나 국가나 국제관계 모두 소우주와 같다. 몸의 기와 혈이 제대로 돌아야 생명이 유지되듯 국내·국제 관계 역시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폭력·폭탄에 의지하지 말고.

그동안 백악관 외에 펜타곤 앞에서 열두 차례, 무기회사인 보잉과 록히드 마틴사 앞에서 각각 여덟 차례, 세 차례 시위를 벌였다. 28년간이나 월요일 오전 7시마다 펜타곤 앞에서 시위를 해온 가톨릭 워커와 함께 가면 역 앞 잔디밭 시위는 가능했지만 우리끼리 가면 경찰은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번번이 쫒아냈다.

"월요일 아침에는 허락받고 (시위를) 할 수 있었다"라고 경찰에 따져봤지만, 그들은 해마다 사전허락을 갱신해왔기 때문에 (시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가톨릭 워커와 함께 와야만 시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시금 캐시 할머니에게 물어봤지만, 그녀는 지난 28년간 단 한 번도 사전 허락을 받은 적이 없다면서 깔깔 웃었다. 경찰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지만, 미국 경찰은 엄청난 권한을 가지고 있어서 절대 경찰의 지시를 어기지 말라는 주의를 여러 사람에게 들었던지라 몰래카메라를 찍듯 살짝 살짝 사진을 찍었다.

펜타곤 앞. 바닥에 늘어놓은 'KOREA WANTS TO BE ONE'(코리아는 하나되기 원한다) 피켓을 읽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는 펜타곤 근무자를 만났다(그들은 목에 출입증을 걸고 다닌다). 아니, 한국의 국민이 통일을 원한다는 데 자기가 뭔데 고개를 흔들면서 가나? 점령군과 같은 그의 태도를 보면서 마치 일제치하의 굴욕적인 식민지인이 된 듯한 기분에 잠시 사로잡혔다.

소련놈에 속지말고, 미국놈 믿지마라, 일본놈 일어선다

펜타곤 근처에서 시위하고 있는 모습.
 펜타곤 근처에서 시위하고 있는 모습.
ⓒ 고은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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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간 군 복무를 했던 미국 장군 스메들리 버틀러는 <전쟁은 사기다>라는 책을 펴냈다. 미국의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회고록에서 베트남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다고 시인하고 죽기 전까지 반전 반핵 운동을 했다. 대부분의 전쟁은 우리도 모르게 누군가의 음모로 어미의 자식들을 죽음의 땅으로 내 몬다.

소련놈에 속지말고
미국놈 믿지마라
일본놈 일어선다

해방 직후 선조들이 했던 이야기다. 해방 70년이 된 지금, 이 이야기를 다시 돌아본다. 너무나 실감나지 않는가? 분단으로 이익을 보는 한국의 분단 마피아들은 수많은 희생자를 냈던 한국전쟁을 들먹이면서 북한과는 절대로 평화를 논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본에 원자탄을 터뜨렸던 미국은 지금 일본과 손잡고 군사강국이 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어제의 적국이 오늘의 동맹이 된 것이다.

베트남 국민들에게 총을 쏘고 그 땅에 세계 2차대전에 썼던 폭탄에 거의 세 배 가까운 1400만 톤의 폭탄을 쏟아부었던 미국과 한국은 어떤가. 수교를 맺고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북이 공산주의라 안 된다면 어째서 러시아와 중국에는 웃으면서 돌아다니는가? 북이 전쟁 당사자여서 안 된다면 어찌 베트남과 한국은 수교를 맺었으며, 우리나라에 인해전술을 사용했던 중국과는 어찌 그렇게 활발한 교류를 펼치고 있나.

그러니 북과 통일을 논할 수 없다고 말하는 분단 마피아들은 세상 돌아가는 걸 몰라도 한참 모르는 '바보'들이다. 아니, 알면서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분단을 고착시키고 싶어 하는 게다. 이들은 한반도 번영에 제일 큰 방해인, 치명적인 걸림돌이다.

분단은 괴물이다. 분단 때문에 증오를 부추기는 분단 마피아들 역시 괴물이다. 그 괴물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분단을 최대한 악용하며 '북풍'에 목숨을 거는 '찌질이'들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상상이나 해봤을까

15년 만에 다시 오게 된 미국.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뚱뚱한 사람이 엄청 많아졌다는 것, 홈리스 피플이 엄청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흑백커플이 엄청 많아졌다는 것이다. 흑백커플이 이렇게 늘어나리라고는, 흑백이 함께 손잡고 살 날을 꿈꾸다가 1968년 암살당한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미처 짐작하지 못했으리라.  

1960년대 초, 흑인인권운동이 격렬해지자 미국 정부는 어쩔 수 없이 흑백 통합 교육을 강제했다. 백인만 다니던 학교에 루비라는 흑인 여학생이 입학하자 백인 학부모들은 매일 아침 루비의 등교를 방해하는 시위를 벌였다.

작은 관에 흑인 소녀인형을 넣어 시위를 하기도 하고, 먹는 물에 독극물을 풀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정부는 흑인 소녀의 안전을 위해 1년간 경찰로 하여금 등하교시 동반하도록 했는데 백인들은 통합교육에 동조하는 일부 백인 집에 돌을 던지고 모두 이사를 가버리는 것으로 정부의 정책에 대응했다(<까만 얼굴의 루비>, 웅진 주니어).

백인들은 그토록 완강한 저항을 하며 '찌질한' 모습을 보였지만 꾸준히 전개된 흑인인권운동 덕에 이제는 흑백커플이 늘어나게 됐다. 아직 많은 차별이 도사리고 있지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 지 50년도 안 된 시점인데 엄청난 변화다.

'노예를 채찍질하면 상처를 입는 건 노예의 등가죽만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채찍을 휘두르는 백인의 행동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니 자기도 모르게 크게 스스로를 상처 입히게 된다는 말이다. 채찍질을 멈추고 손을 내밀어 잡는 순간 두 사람의 의식 수준은 크게 향상한다. 모두의 진화가 이뤄지고, 모두의 행복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자정이 되면 모든 통행이 금지됐다. 통행금지법은 1982년 1월 5일에 폐지됐는데, 4일 오전 1시에 돌아다닌 사람은 범법자가 돼 처벌받았지만 5일 오전 1시에 돌아다닌 사람은 처벌받지 않았다. 같은 행위지만 법 때문에 범법 유무가 갈린 것이다. 당시에는 통행금지법이 사라지면 범죄가 증가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도 있었지만, 통행금지가 사라진 지금 우리는 통행금지법이 있는 사회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 무엇인가를 금지하고 통제하는 사회는 성숙한 사회라 말할 수 없다. 미성숙한 사회에서 '찌질한' 규제로 제대로 된 발전을 이룰 수나 있겠는가.

일기장이 구속 사유가 되는 나라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씨의 추방과 더불어 구속당했던 황선씨의 구속사유는 17년 전 일기장 때문이란다. 일기장은 은밀한 자기 기록이다. 전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대북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라고 방치했던 정부가 어찌 개인의 일기장에 쓴 내용을 문제 삼는가.

참으로 '찌질한' 통치 방법이다. 백악관 앞에서 만나는 보수적인 사람들도 "분단 때문에 한국에 좌파적 사고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군에서 정한 금서목록과 문제 삼는 내용 따위를 국제사회에 상세히 알린다면, 생각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힌민국의 국격은 한없이 추락하게 되리라.

분단 상태를 고착화하려는 사람들에 묻는다. 70년간 골은 깊어져만 왔다. 점점 더 비싼 무기, 점점 더 커지는 국방비가 그것을 증명한다. 앞으로 700년간 계속 증오를 부추기는 일에 투자할 텐가? 앞으로 7000년간 계속 비싼 전쟁에 의지할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돈 많이 드는 폭력적인 방법, 찌질한 방법을 걷어치울 때다. 분단에서 이익을 얻는 마피아들을 모두 거부하자. 남에선 친북이, 북에선 친남이 많아지도록 애써보자.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경제·사회·정치·문화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명상수행에서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하는 것이라 배웠다. 미래를 위해 지금은 음덕을 닦아야 할 때다. 무기로, 전쟁으로, 증오로 쌓아지는 음덕은 없다. 양쪽 군사 모두 어머니 자식이다. 무기 장사꾼의 욕심을 내 자식의 목숨으로 채워주지 말자. 평화를 위한 노력이 답이다.


태그:#고은광순, #평화어머니, #미국원정시위, #백악관 시위, #펜타곤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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