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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 교수는 올해 3월 열린 전미 행정학회에서 행정조직 내 SNS 착근 조건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 교수는 올해 3월 열린 전미 행정학회에서 행정조직 내 SNS 착근 조건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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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공무원들이 거의 예외 없이 사용하는 '파워포인트(PPT)' 프로그램은 참여정부 때 정보통신부를 맡았던 진대제 장관이 처음 도입한 거에요. 그전에는 사기업들은 파워포인트를 다 써도 공무원들은 안 쓰고 있었죠. 그런데 진 장관이 대통령 업무보고에 이걸 써서 '히트'를 치면서 공직사회에 완전히 일반화가 됐죠."

푸근한 입담을 따라 대화는 파워포인트에서 '이지원(e知園) ' 시스템으로, '녹색성장'으로 흐른다. 정권 교체 속에서 점점 공고해지는 제도가 있는가 하면, 어떤 제도는 정권이 바뀌면 바로 내팽개쳐진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까.

행정학자인 이삼열 연세대학교 교수는 좋은 제도라고 해서 반드시 살아남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특히 정부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선 제도가 공무원들의 인식을 바꾸고 생활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공무원들에게 해당 제도가 '유용한 도구'라는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올해 3월 전미 행정학회에서 행정조직 내에 SNS 활용이 뿌리내리는 조건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최근 서울시를 비롯해 시정에 소셜미디어 도입을 시도하고 있는 지방자치 단체들이 고민하는 주제다. 그는 "더 많은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인 SNS를 행정에 효율적으로 접목하는 문제는 전 세계적인 관심사 중 하나"라면서 "단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사회 갈등의 많은 것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 '협력통치'에 적합한 도구"

- 최근 서울시 등 지자체들이 SNS 활용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관심이 많다. 스마트폰이나 모바일 인터넷망 등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소셜미디어 사용자가 폭증하지 않았나. 그게 또 다 시민들이고(웃음)."

- 서울시, 성남시 등 시장과 시민이 SNS로 직접 대화하는 일도 많아졌다.
"간접민주주의에 대한 갈증들이 있는 거다. 시민들은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예전에는 참여 경로가 한정되어 있어서 그런 욕구를 담아내기 어려웠다. 그런데 SNS 등으로 소통 방법이 다양해지니 자연스럽게 참여 욕망이 분출되는 것이다."

- 트위터 등 SNS가 행정조직에 뿌리내리는 여건에 대한 연구로 주목을 받았다. 왜 이런 연구를 진행하게 됐나.
"기존의 정부는 '다스리는' 주체(거버먼트)였다. 요즘의 유행은 시민과 정부가 함께 다스리는 '협력통치(거버넌스)'다. 협력통치는 시민사회의 참여가 필요한데 거기에 소셜미디어가 적절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미국 등지에서도 행정학자들이 이 지점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SNS의 어떤 점들이 시민 참여를 증진하나.
"협력통치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숙의'라고 한다. 숙의가 잘 되면 어떤 결과가 정책으로 도출되더라도 큰 사회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지역공동체들도 활성화될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듣지 못했던 얘기를 듣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건 이런 부분이다."

- 토론에 적극적이지 않은 '보통' 시민들 처지에서 보면 큰 매력은 아닌 것 같다.
"직접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 시민들도 생각은 하고 있다. 그런 시민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게 굉장히 편리한 거다. 어떤 사안이 나만 불편한 건지, 아니면 남들도 불편한 것인지 이게 어느 정도 확인되면 시민들이 들고일어날 수 있는데. (웃음) 기존에는 이게 어려웠다. 요즘은 페북 같은데 누가 '나 이거 불편해'라고 올렸을 때 거기에 '좋아요'가 실시간으로 붙지 않나. 다른 사람이 내 의견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지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 뜻이 맞는 시민들이 모여 정부에 더 적극적인 제안이 가능하겠다.
"그렇다. 역으로 보면 공무원들도 좋다. 나한테 민원인이 와서 불평하는데 이걸 들어주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거든. 시청이나 구청 찾아가서 뭐해달라고 하면 공무원이 '도장 받아오세요'라고 하지 않나. 많은 사람이 이 일을 원한다는 증거가 필요한 거다. 그런데 SNS를 이용하면 이 과정을 빠르고 투명하게 진행할 수 있다. 사람들이 '멘션'하고 '좋아요.' 달아놓으면 되니까."

"'소셜 특별시' 만들고 싶으면 부서별 성공사례 만들어야"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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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S를 통한 단순 민원들이 늘어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거라는 전망도 있다.
"행정학의 관점에서 정부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는 갈등 조절이다. 정부가 내는 정책들도 그런 게 많다. 어떤 문제를 본질에서 해결하는 게 아니라 끓어 넘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대단한 해법이 아니라, 그냥 귀 기울여 들어주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정책의 90% 이상은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한다."

- 민원이 증가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건가.
"그렇다. 불만이 민원으로 전달되고 정부의 책임 있는 사람이. 이를테면 파출소장 같은 이들이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사회 갈등은 어느 정도 가라앉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시장일 때 청계천 상인들 이전 문제도 그렇게 해결됐다. 소셜미디어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기 좋은 도구니까 그런 작업들을 더 원활하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가령 박원순 시장이 소셜미디어로 상당히 다양한 시민들과 소통하고 얘기를 듣는 것은 좋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 서울시가 현재 하는 방향은 행정학자로서 보기에는 어떤가.
"시장이 소셜미디어 경험이 풍부하고 의지가 있다. 또 특유의 지지층이 있으니까 그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소셜미디어'에 대한 개념이 모호하게 좀 뒤섞여있는 측면이 있다. 또 '박원순 이후'에도 이게 지속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물음표가 찍히는 이유가 궁금하다.
"SNS가 좋은 도구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SNS를 쓰면서 '이게 일상 업무를 처리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는 경험을 해야 행정 조직에 안착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만든 '이지원(e知園) ' 같은 경우도 그게 안 돼서 잊힌 사례 중 하나다."

- 이지원(e知園) 은 호평을 받았던 행정 시스템 아닌가.
"그렇다. 기안부터 실행까지 행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투명하게 다 볼 수가 있다. 행정학적으로는 이견이 없는 좋은 시스템인데 일단 '컴맹'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이걸 안 썼다. 그리고 하위 공무원들 입장에서도 이걸 꼭 써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 어떻게 해야 소셜미디어 활용을 지자체 행정에 뿌리내릴 수 있나.
"박원순 시장이 소셜미디어를 시정에 정착시키고 싶다면 공직사회의 SNS 사용을 장려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각 부서에서 소셜미디어를 활용해서 성공한 정책사례를 하나씩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이런 거 계속해야겠다'는 인센티브가 생긴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된다."

- 어떤 지점이 우려되나.
"소셜미디어가 참 좋은 도구인데 이게 단순히 정치 리더십과만 연결되면 다른 리더십이 왔을 때 폐기되기 쉽다. 박원순 시장 때 했다가 잘 안 돼서 다음 시장 때 사장되면 시민만 손해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웠던 '녹색성장'도 문명사적인 전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소셜특별시, #이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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