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측 대표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대표인 김양건 당 비서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오른쪽부터)이 25일 오전 판문점에서 '무박4일' 마라톤 협상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우리측 대표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대표인 김양건 당 비서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오른쪽부터)이 25일 오전 판문점에서 '무박4일' 마라톤 협상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무박 4일의 협상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팽팽하게 고조되던 한반도의 긴장을 녹여버렸다. 25일 새벽, 남북한이 2+2 회담이라는 고위급 접촉을 통해서 합의에 도달했다. 군사적 충돌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해결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최근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은 일촉즉발의 상태였다.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남한은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며 전군에 최고경계태세를 내렸다. 북한의 잠수함 50여 척이 기지를 떠났는데 우리는 식별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미국이 B-52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출동시킬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국내에서는 종편을 중심으로 전쟁불사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종편에 출연한 한 육군 4성 퇴역 장군은 7일 안에 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 전쟁을 불사한다는 각오를 밝힐 수는 있다. 하지만 전쟁을 하겠다는 것은 그 파멸적인 결과를 너무나도 우습게 아는 허풍과 만용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와 협상으로 위기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은 물정 모르는 낭만적인 주장으로 치부됐다.

이번에 2+2 회담을 열어서 남북한의 군사 위기를 해소한 것은 대화와 협상으로 군사위기를 해결한 바람직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물론 2+2 회담이 열린 배경은 매우 불안했다. 북한은 확성기 방송을 막기 위해서 군사적 도발을 비롯한 강압외교를 구사했다. 힘을 사용해서 현상을 유지하려는 것이 억지(deterrence)라면, 힘을 사용해서 현상을 변경시키려는 것은 강압외교(coercive diplomacy)다. 북한이 압박과 협상을 병행하는 것도 일종의 강압외교이다. 한국전쟁 휴전협상 이후 처음으로 군사적 긴장고조와 협상이 동시에 진행되었던 것이다.

합의는 했지만, 여전히 불안은 남아

이런 상황이 발생한 이유는 북한의 대남전략이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3년 2월부터 4월까지 이른바 '말폭탄'을 퍼부었다. 북한이 남한에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위협을 말폭탄에 담았다. 하지만 말에 그쳤다.

말에 의한 공갈포(empty threat)는 그것이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어야 위협이 된다. 하지만 2013년에 북한이 구사한 공갈포는 빈말에 그쳤다. 북한은 위협을 높이기 위해서 이번에 포격을 한 것이다. 남북한 사이의 완충기능이 없어지고 남북한이 군사 충돌의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구조가 한반도의 현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례다.

결과적으로 이번 2+2 회담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말의 효력을 입증하기 위해서 군사력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한반도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화와 협상으로 불안을 관리했다는 것이다. 불안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군사 충돌이 상시화될 수 있는 구조를 극복할 수 없다.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다. 

이번 2+2 회담에서 합의한 6개 항에는 남북 긴장의 원인을 해소하기 위한 내용을 비롯하여 향후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포괄적 계획이 담겨 있다. 2, 3, 4항이 8월에 발생한 북한의 도발과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내용이라면, 1항과 6항은 남북 당국 간 회담과 민간교류 항목이다. 5항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했다. 합의문의 구조를 살펴보면 군사적 긴장을 해소한 조건에서 남북대화의 플랫폼으로 당국 간 회담과 민간교류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 플랫폼에 일단 이산가족 상봉을 먼저 가동하겠다는 실행계획을 제시했다.

협상의 예술

그동안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주체를 명시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주문했다. 합의문에는 '사과'대신 '유감'으로 표시되어 있다. 공동보도문에는 유감표명의 주체로서 '북측'을 명시하였다. 흔히 세간에서는 주어가 생략된 것을 유체이탈화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보수언론에서도 이번 합의에 주어가 생략된 유체이탈화법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주체를 명시한 것은 이번 회담의 성과다. 보도문에서는 주체를 명시하여 유체이탈화법에서 벗어나고, 또 '유감 표명'이라고 해서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윈윈(Win-Win) 협상이다. 협상에서 100대 0의 승리는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승리가 아니다. 협상이 예술이라고 하는 이유는 win-win을 가능하게 하는 표현력 때문이다.

재발방지에 대해서는 3항에서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표현으로 합의하였다. 3항을 보면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 25일 낮 12시부터 중단하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 문장은 당연히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할 경우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유효한 시간범위를 8월 25일로 한정한다'고 읽힐 수도 있다. 차후 갈등이 발생했을 경우 해석을 놓고 논란이 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현될 소지가 있는 장관급 회담 '격' 논쟁

북한의 서부전선 포격도발에 따른 한반도 긴장 고조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남북 고위급 접촉이 예정된 지난 23일 무장한 장병들이 차량을 타고 파주시 통일대교를 건너고 있다.
 북한의 서부전선 포격도발에 따른 한반도 긴장 고조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남북 고위급 접촉이 예정된 지난 23일 무장한 장병들이 차량을 타고 파주시 통일대교를 건너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남북은 '당국간 회담을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고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한 것을 첫 문장에 내세웠다. 남북관계 개선과 지속적 발전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는 것이 남북관계 전반을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일 게다. 여기서 말하는 남북당국 간 회담이란 통일부 장관과 북한의 내각책임참사 장관급 회담을 말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에 남북장관급 회담은 회담에 참석하는 장관급의 격 때문에 결렬되었다. 당시 북한은 강지영 조평통 서기국장을 장관급 회담에 내보내려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대남당당 비서를 겸하고 있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지목했다. 북한은 통전선부장은 부총리급이라고 하여 거절하였다. 박근혜 정부 첫해부터 남북관계의 첫단추는 잘못 꿰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2+2 회담의 한축은 김양건 대남비서 겸 통전부장과 홍용표 통일부장관이었다. 북한이 이번 접촉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홍용표 장관을 지목하였다. 하지만 김양건 비서와 홍용표 장관이 남북장관급 회담이라는 이름으로 마주 앉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김양건은 북한의 장관급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관급 회담이 격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지, 장관급 회담이 아니면 차관급 회담부터 시작할 것인지, 다시 한번 협상의 예술을 발휘해야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당국 간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이 열리게 될지도 주목된다. 당국 간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이란 이미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명시한 바 있다. 남북총리회담, 경제부총리회담, 국방장관회담, 사회문화장관회담, 국회 회담 등이다.

6항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 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한 점 역시 눈에 띈다. 민간은 당국과 달리 범위가 매우 넓다. 다양한 분야의 민간교류를 추진하는 데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은 기존에 합의했던 남북 간의 민간교류협력사업을 재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으로 동아시아 지정학을 넘어야 

이번 합의로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킬 뿐만 아니라 남북 사이 대화의 물꼬를 텄다. 이산가족 상봉을 실시하는 것이 이번 합의를 이행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9월의 일정을 살펴본다면 난관도 존재한다. 중국은 전승절 행사에서 미국의 MD와 사드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다탄두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열병식에서 등장시킬 것이다. 변수는 북한이다.

지난 5월 9일 러시아 전승 70주년 행사에 맞춰서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사출실험을 하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러시아가 전승절 열병식에서 'RS-24 야르'라는 다탄두대륙간탄도미사일을 등장시킨 것에 대한 북한의 MD 반대 공조로 풀이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승절에 참가한 상태에서 북한이 중국 전승절에 맞춰서 군사행동을 하면 동아시아 정세는 예측불허의 복잡한 상황에 휩싸일 수 있다. 게다가 9월 중순에는 한미정상회담과 미중정상회담이 열리고, 10월 10일은 북한의 노동당 창건 70주년이다.

남북관계 개선은 동아시아 정세와 맞물려 있다. 복잡하게 전개될 소지가 있는 동아시아 정세를 앞두고 이번 남북의 2+2 합의가 남북이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남북관계가 상수가 되어서 예상되는 복잡한 변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번 남북의 합의를 이행해서 남북관계를 더욱 견고히 발전시킬 때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창수는 코리아연구원(knsi.org)이면서 한반도평화포험 기획위원과 통일맞이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남북 고위급 접촉, #김관진, #김양건, #황병서, #홍용표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는 서로 어울리는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어울릴 때 우리는 평화를 발견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이 평화이고 통일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