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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가사 中

과장님은 감독관이 빨리 술 마시고 잠들기를 바랬다
▲ 감독관 과장님은 감독관이 빨리 술 마시고 잠들기를 바랬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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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4개월의 공장 생산직 경험을 가진 채 친구의 소개로 두 번째 직장에 '낙하산' 입사를 했다. 내 두 번째 직장은 하루에 12시간씩을 주야 2교대로 시끄러운 자삽 기계 앞에서 일했던 첫 번째 직장보다 월급은 적었다. 하지만 지금의 생활에 만족했다.

TV에 나오는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매일 아침 9시에 서류가방을 들고 사무실로 출근했다가 저녁 6시면 퇴근해서 어머니가 계시는 집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스무살 어린 나이에 내 이름이 박힌 명함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괜스레 그 명함을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자주 나가곤 했었다.

우리 기술지원팀에서 막내였던 친구와 나의 담당업무는 '회차 점검'이었다. 부산 지하철 1호선 열차의 마지막 역인 노포역에서 회차를 하는 그 10여분 동안 전동차에 설치된 IVTS가 정상적으로 동작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당시 IVTS는 개발 초기 단계였다. 회사는 IVTS를 빨리 상용화 하기 위해 고가의 IVTS를 부산교통공단에 무상 공급하는 것으로 계약을 체결했고 내가 일하던 그 시절 1호선 전동차 여러 곳에 설치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IVTS의 설치는 야간에 이루어졌다. 우리팀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IVTS의 '설치'였는데 우리가 직접 설치하는 것은 아니었고 통신 공사업체를 선정해서 '외주'를 주었다. IVTS 설치 작업이 있는 날이면 공사 감독을 하기 위해 우리팀 직원 1~2명이 밤새 상주했다. 외주 업체에서 공사를 하면서 전동차에 이상이 생기거나 공사 이후 뒷정리 등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갑 중에 갑'인 부산교통공단에서 엄청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치 작업이 있는 야간에는 부산교통공단에서도 감독관이 파견됐다. 그 날이면 우리 과장님은 어떻게든 그 감독관에게 잘 접대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게 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사무실 한쪽방에는 야간작업을 할때 휴식을 취하라고 만들어 놓은 2층 침대가 있었다. 하지만 주로 교통공단 감독관이 일찌감치 저녁을 먹으면서 술을 마시고 잠을 자는 곳으로 이용됐다.

교통공단 감독관 중 깐깐한 사람이 나와서 술도 안마시고 직접 공사 감독을 하는 날 밤엔 우리도 외주 공사업체도 '초긴장'을 해야 했다. 어떤 꼬투리 하나라도 잡히지 않기 위해 점검한 곳 또 점검 하고 또 점검하고를 반복했다. 그 덕에 밤 새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IVTS 설치가 완료되면 전동차 운전석에 달린 행선 안내 '설정기'와 '방송기'를 가동해 IVTS와의 정상 페어링 여부를 확인한다. 간혹 프로그램 오류가 발생하면 방송에서 '부산대'역이 흘러 나오는데 IVTS LED는 '부산역'으로 표시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행선 안내 테스트가 완료되고 나면 당시 획기적이었던 IVTS의 LCD화면에 광고와 문자텍스트를 강제로 입력해서 제대로 표시 되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여기까지 하고 나면 설치 작업을 마무리하는데 설치부터 테스트까지 하룻밤에 모두 끝나야해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어렵게 설치하고 테스트까지 완료한 IVTS이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전동차 안에서 구동이 되면 많은 오류가 발생한다. IVTS는 전동차 내부 고객들의 시선이 가장 오햇동안, 그리고 자주 머무는 장비이므로 오류가 발생한 채 운행이 되면 교통공단으로 민원이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교통공단으로 민원이 들어가기 전에 오류가 발생된 부분을 빨리 정상화 시켜야 한다. 그 업무가 바로 친구와 내가 맡은 '회차 점검'이었다.

'빨리 해결해야 한다'...부끄러울 정신도 없었다

내 주 업무는 노포역 승강장에서 들어오는 열차에 설치된 IVTS를 점검하는 일이었다.
▲ 지하철 내 주 업무는 노포역 승강장에서 들어오는 열차에 설치된 IVTS를 점검하는 일이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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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을 하면 제일 먼저 기지창에서 열차 '다이아'를 확인한다. 다이아는 열차 운행 시간대를 나타내는 용어다.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매일 같은 시간에 지하철이 운행된다고 생각하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운행하는 열차가 매번 같은 열차는 아니다. 그 운행되는 시간대를 '다이아'라고 한다.

부산 지하철 1호선은 총 45편성의 열차가 있다. 매일 45편성의 열차가 모두 운행되는 것은 아니다. 차량 기지창에 입고되어 정비되는 스케줄에 따라 나머지 열차들로 운행 다이어가 결정된다. 또한 노포 기지창에서 운행하는 열차가 따로 있고 반대편 종착역인 신평 기지창에서 운행하는 열차가 따로 있다. 우리는 매일 노포기지창은 직접 찾아가서, 신평기지창은 전화를 걸어서 각 열차의 다이아를 확인했다.

사무실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화이트보드에 총 45편성의 각 다이아를 기록해 모든 팀원들이 볼 수 있도록 하면서 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IVTS에 어떤 문제가 발생 되어 교통공단으로 민원이 들어오면 교통공단에서 우리 사무실로 연락을 해준다. 그 때 특정 열차가 지금 무슨 역을 지나고 있는지 다이아만 확인하면 알 수 있다. 그만큼 각 열차의 다이아를 확인하는 일은 우리팀이 운영되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었다.

다이아를 정리하고 나서 특별한 이슈가 없으면 노포역으로 회차점검을 나간다. 노포역 승강장에 앉아서 들어오는 열차를 기다렸다가 IVTS가 설치된 열차가 들어 오면 장비에 이상이 없는지를 점검한다. 종착역에서 모든 사람들이 내릴 때 열차를 타는 사람은 청소하시는 미화사원들과 우리 뿐이다.

열차가 회차해서 반대편 승강장에 도착하는 짧은 10여분 동안 8량에 설치된 IVTS를 모두 점검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된 IVTS를 발견하면 그 10분안에 해결을 해야 했다. 가끔 교체하기 힘든 부품에 문제가 발생되면 10분안에 해결을 하지 못해 IVTS 뚜껑을 열고 부품 교체 작업을 하면서 2~3코스를 더 내려 가기도 했다.

작업도중에 승객들이 지하철을 타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움직이는 전동차 가운데서 플라스틱 의자를 밟고 올라가 부품을 교체하고 있는데 시선이 집중되지 않을 리가 없다. 부끄러울만도 한데 그 순간에는 '빨리 해결해야한다'는 데 온 신경이 집중되어 부끄러울 정신이 없었다. 작업을 다 끝내고 내릴 때가 되어서야 얼굴이 화끈거리곤 했다.

'컴맹'...내 업무 역량은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하드웨어 부품에 문제가 생겨 부품교체로 해결되는 경우는 그래도 낫다. IVTS LCD화면에 동영상 광고가 나가고 텍스트 문자, 뉴스가 송출 되는데 그 프로그램의 기반이 윈도우다. IVTS는 그 자체가 한대의 컴퓨터이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적인 문제도 자주 발생했다.

각 편성 1호차에 설치된 IVTS가 메인 컴퓨터라면 나머지 7대의 IVTS는 메인 컴퓨터에서 보내는 신호만 받아서 함께 송출해주는 시스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문제가 생기면 8량에 설치된 모든 IVTS에 오류화면이 송출된다. 그래서 더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학창시절 우리 집엔 단 한번도 컴퓨터가 있었던 적이 없다. 언젠가 한번 386 PC를 누가 줘서 얻어온 적이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장이 났다. 당시 고가의 PC를 살 형편이 안되었던 우리집이었기에 나는 '컴맹'을 탈출 할 수 없었다. 그런 나였기에 IVTS의 소프트웨어 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대부분 윈도우 재부팅으로 해결이 되었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 해매기 일쑤였다.

반면 함께 일했던 친구는 어릴적부터 PC를 잘 다뤄왔다. 그래서 업무 역량도 나보다 더 뛰어 났다. 워낙 가족같은 분위기로 지내왔던 우리팀이기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과장님은 그 친구를 은근히 더 좋아 했었다.

나는 그 때부터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활용해 군대를 가는 대신 '경력'을 더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반면 친구는 꼭 군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예전에 일했던 공장보다 지금의 우리 회사가 좋아서 할 수만 있다면 산업기능요원 복무를 우리 회사에서 하고 싶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건 우리 회사의 모 회사가 병역특례 지정업체였기 때문이다. 사업상 회사의 법인이 분리 되어 있었지만 사실상 같은 회사라 소속을 옮겨 특례를 받을 수 있었다.

병역특례를 받을 수 없냐고 묻는 나에게 과장님은 '소속이 달라서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에게는 '군대 가지 말고 여기서 병역특례로 복무해라'라고 했다. 친구 아버지가 사장님의 친구라서 그런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보다 친구의 업무 역량이 더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유가 어떻든 과장님은 나와 친구를 달리 대했다. 그 사실은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나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그런 마음속에 상처가 하나씩 늘어 갈수록 내 마음은 더 단단해지고 사회생활 '내공'은 점점 더 커져갔다.

덧붙이는 글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www.bainil.com/album/365



태그:#지하철, #IVTS, #감독관, #야간작업, #회차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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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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