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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의 배경은 1930년대, 주인공은 일제강점기의 독립군이다.
▲ 암살 <암살>의 배경은 1930년대, 주인공은 일제강점기의 독립군이다.
ⓒ 케이퍼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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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피스톨, 영감, 속사포 …. 슬며시 웃음이 머금어지는 개성 있는 작명법. 익숙하다. <타짜>의 정마담, 아귀가 <도둑들>의 예니콜이 떠오른다. 그럴 수밖에. <암살>도 최동훈 감독이 만들었다. 결은 다르다. 이번엔 한층 무거워졌다. 배경은 1930년대, 주인공은 일제강점기의 독립군이다. 이 비장한 서사를 하정우, 이정재, 전지현, 김해숙, 진경 등의 캐릭터 강한 배우들이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

실은 웃기진 않다. 곳곳에 배치된 유머러스한 대사로 재미를 유발하는 전작과 달리 <암살>은 각각의 다른 인물들이 부딪히는 데서 오는 긴장감으로 재미를 준다. '독립'을 꿈꾸는 한국독립군 출신 안옥윤(전지현 분), 한 때는 '독립'을 꿈꿨으나 이젠 밀정이 된 염석진(이정재 분), '독립'이고 뭐고 300불만 주면 누구든 처단해주는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 등.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한 데 모이며 일어나는 그 파열음은 꽤 경쾌하다. 그들은 암살을 모의하고 실행하는 순간조차 커피 맛을 궁금해 하거나 하와이에서 옷 안 입은 여자들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그 욕망의 무게가 현대와 동일하진 않다. 당장 나의 생사조차 기약할 수 없는 일제강점기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탓이다.

<암살>이 숙연해지는 지점

투사를 꿈꾸지 않았지만 투사가 되어버린 이들의 사연은 숙연하다.
 투사를 꿈꾸지 않았지만 투사가 되어버린 이들의 사연은 숙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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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영화인 <암살>은 이 지점에서 여운을 갖는다. 투사를 꿈꾸지 않았지만 투사가 되어 버린 이들의 사연은 숙연하다. 옥윤은 간도참변을 목격했다. 그녀는 엄마가 생매장 당하거나 삶아지지 않고 총에 찔려죽은 것이 다행이라고 한다. 간도참변에서 죽은 이는 3700여 명.

그녀는 독립을 위해 총을 쏜다. 변절자가 되어버린 이들도 변절자를 꿈꾼 것은 아니라 변명한다. 변명은 비겁할 뿐이다. 사업가 강인국(이경영 분)은 자신의 친일이 조선의 산업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아빠는 착한 사람"이라는 딸 미츠코마저 (제 꾀에 제가 넘어가) 죽이고 마는 비정한 아버지다. 독립운동과 친일의 대조는 그토록 뚜렷하다. <연평해전>과 비교되며 '애국주의'를 유포한다는 혐의도 여기서 생겨난다.

확실히 <암살>은 애국심을 불러일으킨다. 울컥하게도, 반성하게도 한다. "한두 놈 죽인다고 조선이 독립되느냐"는 하와이 피스톨에 말에 "모르지. 그렇지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라고 말하는 안옥윤과 "3천불, 우리 잊지 마"라는 영감(오달수)이 그러했다. 약산 김원봉(조승우 분)도 고량주잔에 불을 붙이며 독립운동을 하다 죽은 동지들을 추모한다. 그는 "너무 많이 죽었어요. 사람들에게서 잊히겠죠"라고 말한다. 이미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명백하고도 직접적인 메시지다.

<암살>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을 촉구한다고 해서 영화의 메시지가 <연평해전>과 동일한 것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차이는 뚜렷하다. <연평해전>과 <암살>을 다루는 한 언론의 태도가 단적이다.

미디어비평지 <미디어오늘>은 <연평해전> 개봉 당시 10일간 24건의 기사를 보도한 <조선일보>가 10일간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암살>에는 한 건의 기사도 보도하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연평해전' 띄우던 조선일보, '암살'은 개봉 이후 0건, 정철운, 미디어오늘)

<암살>의 메시지가 <연평해전>과 동일한 것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암살>의 메시지가 <연평해전>과 동일한 것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 로제타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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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은 꽃다운 젊은 생명들이 속절없이 스러져간 이유를 김대중 정부의 '선제사격금지 지침' 탓으로 돌렸다. 당시 젊은 부하 병사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시간에 지휘계선인 장관과 합참의장은 장군진급자 축하연에 갔다. (김종대의 서해교전 요약) <연평해전>은 애국심으로 책임 소지를 흐리고 은폐해낸다. <암살>이 불러일으키는 애국심은 현재의 기득권에 위험한 형태에 가깝다. 광산채굴권을 따 부를 축적한 친일사업가 강인국은 <조선일보> 전 사장인 방응모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방응모도 금광업에 뛰어들어 큰 부를 얻었고 이후 조선일보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현재 조선일보는 발행부수 1위이며 사장은 방응모의 아들이다.

그 때의 역사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영화의 여운이 배가 되는 지점이다. 반민특위에 회부된 밀정 염석진은 반역의 정체가 폭로될 위기의 상황에서조차 노련하다. "친일타도!"를 외치며 흥분한 민간인 참관인들 앞에서 그는 웃통을 깐다. 그리고 축 늘어진 젖가슴과 깡마른 팔뚝까지 내보이며 자신이 독립투사임을 강변한다. 민간 참관인들은 금세 감동받아 일동 박수를 치고, 염석진의 반민족행위를 증언할 증인은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염석진이 걷는 거리에선 "반민특위 해체하라!"는 피켓을 든 군중들이 쏟아진다. 동료를 배신하고 팔아먹었던 그는 경찰 고위간부의 직위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기억을 조작해내는 권력과 권력에 속아 기억을 배반하는 대중. 과연 지금의 모습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는 8월 15일, 광복 70주년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6일 국회에서 <암살> 특별 상영회를 개최하며 "대한독립 만세! 만세! 만세!"를 삼창했다. 친일이 의심되는 그의 아버지가 애국자로 조작되고 있다는 것이 최근의 보도였다. ('친일' 김무성 아버지가 애국자로 둔갑하고 있다, 김의겸, 한겨레) 법무부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의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를, 또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영화가 남기는 질문이다.


태그:#암살, #광복7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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