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하루하루 지쳐가는 몸을 느낀다. 하지만 따로 하소연할 곳도 그럴 대상도 없다.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기에 더 성실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채근할 뿐이다.

지난 3일에는 이미 연락된 세종학당을 찾아 한국 사람과 결혼해서 기초적인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는 결혼이민자들을 만나기로 했다. 전날 오후에 만든 빵을 준비하고 잔비가 내리는 카트만두 거리를 아내의 스쿠터에 의지해 빵 상자와 봉지를 안고 가로질러 갔다.

사전 약속된 곳이라 마음 편하게 갔는데 오늘도 부원장님은 바쁘다. 사무실 직원에게 이야기를 해서 통화를 하고 우리가 전하려는 빵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결혼이민자들과의 대화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세종학당이 있는 곳에 네팔주재 한국교민회 사무실이 함께 있고 교민회 대표이신 임종범(수안 스님)님이 주재하고 계셨다. 곧 안내를 받아 인사를 나누었다.

세정학당에 네팔교민회 대표 임종범(수안스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곧 안내를 받아 한국어 공부 중인 결혼이주민 여성들을 만나 빵을 전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 세종학당을 찾아 결혼이주민 여성들을 만나다. 세정학당에 네팔교민회 대표 임종범(수안스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곧 안내를 받아 한국어 공부 중인 결혼이주민 여성들을 만나 빵을 전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 김형효

관련사진보기


다시 수안 스님이 한국어수업이 막 시작되는 결혼이주민 한국어 반에 안내를 해주셔서 곧 결혼이민자들과 만났다. 아내는 같은 처지에 놓인 그들에게 자신이 몰라서 불편을 겪었던 일들을 설명하고 안내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특별히 시간을 허락받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는 14일 기초적인 한국어능력 시험을 치르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고 그냥 여유로운 마음 상태만은 아니다. 모든 시험에 응하는 사람들이 한 마음이리라. 우리는 두 개 반에 빵을 나눠주고 10분 정도 짧은 안내의 이야기를 전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틀 후인 8월 5일에는 검은 다리(kalropul)라는 이름의 다리 근처에 한 영·유아보육시설 겸 유치원을 찾았다. 독일인들이 후원하는 곳이라는데 특별히 좋은 시설은 아니었다. 카트만두에 저소득층 가정에 아이들을 돕는 시설이라는 데 매우 열악해보였고 급식도 빈약했다. 무엇보다도 어린 아이들이 잘 정돈된 물건처럼 서로 다리를 맞대고 누워서 웃음을 짓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웃음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화가 치밀었을 것 같은 광경이었다.

검은 다리라고 하는 지역 인근에 영 유아 보육시설을 찾아 빵을 전하다.
▲ 영 유아 보육시설을 찾아 검은 다리라고 하는 지역 인근에 영 유아 보육시설을 찾아 빵을 전하다.
ⓒ 김형효

관련사진보기


검은 다리 인근에 유아보육시설에 아이들은 매우 열악한 조건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 독일인들이 후원하는 유아보육시설을 찾아 검은 다리 인근에 유아보육시설에 아이들은 매우 열악한 조건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 김형효

관련사진보기


2주 전부터 해당시설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네팔화가 날 바하두르 비케이(Nar Bahadur B·K)에 처제의 요청이 있어 그곳을 찾아 빵을 전하기로 했으나 8월 5일에야 약속이 잡혔다. 아내는 모처럼 휴식을 취하며 빵 공장에 머물고 나는 날 바하두르 비케이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빵을 담은 박스를 끌어안고 앉았다.

정오가 막 지날 무렵 시설에 도착했다. 해당기관의 대표와 만나 빵 150여 개를 날 바하두르 비케이(Bk Nar Bahadur)와 함께 전달했다. 독일에 봉사단원들 3명도 그곳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학습을 하고 있었다. 막 식사시간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모였다. 나는 잠시 기관장의 권유로 어린 아이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시설을 두루 둘러본 후 돌아왔다.

그 어느 곳에도 도움을 기다리는 손길이 있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다음 날에도 강행군을 펼친다. 7일에 전해야 할 400명 분의 빵을 만들기 위해서다. 내가 전하는 빵 하나에 최소한 열 번이상의 손길이 미친다. 받아든 사람은 비록 빵 한 조각일지 모르나 나의 그런 정성은 내가 한국에서 네팔에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쏟아낸 나의 열정이다.

우리가 8월 7일 찾으려는 곳은 지난 4월 25일 네팔의 최초지진에 진앙지였던 신두팔촉(Sindupalchok) 사람들 400여 명을 대피시켜 카트만두 인근 사쿠에 임시수용시설을 만들어 생활하고 있는 현장. 이곳을 찾아 빵 400여 봉지를 전하기로 한 것이다.

네팔 지진의 최초 진앙지였던 신두팔촉 지진피해자들의 텐트촌을 찾아 빵 400봉지 700여개의 빵을 전하고 시설을 둘러보았다.
▲ 최초 진앙지 신두팔촉 이재민들을 만나다. 네팔 지진의 최초 진앙지였던 신두팔촉 지진피해자들의 텐트촌을 찾아 빵 400봉지 700여개의 빵을 전하고 시설을 둘러보았다.
ⓒ 김형효

관련사진보기


전날 우리 부부는 바쁘게 움직였다. 빵 400개만 만들면 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전, 오후로 하루 두 차례 정전이 되는 상태에서 보통 4시간 이내 빵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3시간 정도 전기가 공급되는 경우가 많다.

바쁘게 만들어낸 빵을 식히고 다시 포장하고 그렇게 하다보니 늦은 밤이다. 우리는 포장만 한 채 그대로 빵공장에 빵을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함께 가기로 한 네팔화가 날 바하두르 비케이(Bk Nar Bahadur)와 람 바하두르 타(Ram Bahadur Thada)와 함께 아내와 나는 스쿠터를 타고 두 화가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로 했다. 그러나 전날 밤부터 아침까지 거친 비가 쉬임없이 내렸다.

하는 수 없이 두 화가를 가게로 부르고 아내와 나는 먼저 가게에 가서 종이 박스에 빵을 담기 시작했다. 350여 명이라는데 모자라면 안되기에 여유롭게 담는다. 그렇게 준비된 400여 봉지에 빵을 가져갈 준비가 끝났다.

곧 날 바하두르 비케이(Bk Nar Bahadur)와 람 바하두르 타(Ram Bahadur Thada)가 가게 도착했다. 나는 그들에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고 커피를 전했다. 아침 식사 대용으로 급하게 먹은 후 람 바하두르 타다가 근처에 택시 정류장에 가서 택시를 불러왔고 우리는 곧 오늘 가기로 한 지진피해자들이 있는 곳을 소개한 지인을 만날 장소인 머우다 게이트를 향해 출발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했다. 머우다 게이트에는 사가르마타 텔레비전에서 근무하는 기자 로지나 라마(Rojina Lama)와 이번 우리가 방문하는 텐트촌을 세운 텐부 쉐르파 라마(40)씨가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그들이 타고온 택시로 빵을 옮겨 싣고 그들과 동행이 되었다.

신두팔촉 지진피해자들의 텐트촌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이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 텐트촌 아이들의 밝은 표정에 안타까움만 가득 신두팔촉 지진피해자들의 텐트촌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이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 김형효

관련사진보기


텐부 쉐르파 라마(40)씨와 람까지 쉬레스타(30)씨는 첫 지진의 진앙지였던 신두팔촉(Sindupalchok)에서 발생한 지진피해 이재민들을 위해 최초 현장을 임대하고 즉각적으로 구호텐트를 설치한 사람이다.

지금 텐부 쉐르파 라마 씨는 대외 업무를 맡고 또 한 사람인 람까지 쉬레스타(30)씨로 텐트촌에 직접적인 관리 감독을 하고 있었다. 해당 텐트촌에 거주하는 400여 명에 이재민들의 쉴 자리가 마련되었지만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현재도 한 텐트에서 15명에서 20명이 머물고 있었다. 텐트 안에서 자체적으로 음식을 해먹어야 하는 처지였으며 텐트 안은 비좁았다. 어서 그들이 안정되기를 소망하며 우리가 준비한 빵 한 조각을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시설을 살펴본 후 돌아왔다.

여전히 우리의 손길이 가닿아야 할 곳은 많다. 그리고 여전히 주거가 불안정한 이재민들에 대한 지원은 절실하다. 능력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들에 대한 기원은 멈출 수 없는 일이다. 내 몸이 지쳐가는 것을 느낀다. 하소연할 일이 늘어나는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힘내자. 저 좁은 텐트 속에서 일상을 살아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자. 그렇게 다짐하며 오늘 하루도 이겨내자.


태그:#최초 진앙지 신두팔촉, #신두팔촉 이재민들을 만나다., #검은 다리 유아시설을 찾아, #세종학당, 수안스님, #결혼이주민 여성들을 만나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