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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을 시작한 지 5일째 되던 지난 17일 아침, 담당 선배가 느닷없이 김중배 선생의 이름을 꺼냈다.

"김중배 선생, 다들 알지?"

안다. '언론인'을 꿈꾸며 <오마이뉴스>에서 인턴 실습을 하고 있다. 모를 리가 없다. 김중배 선생은 송건호, 리영희 선생과 함께 한국 언론계의 '큰 산'으로 불리는 분 아닌가! 그런 분을 실제로 만난다니, 이름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우리는 아직 기사 한 편 조차 제대로 출고하지 못한 '햇병아리' 인턴 기자가 아닌가.

우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선배가 설명을 이어갔다.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중 하나인 '장윤선의 팟짱' 녹음을 위해 김중배 선생이 회사로 온다는 것이었다. 선배는 '팟짱' 녹음이 끝나면 김중배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동네 할아버지' 모습, 그런데...

김중배 선생
 김중배 선생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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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꺼내 포털사이트에서 '김중배'를 검색했다. 1934년생이라는 정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국 나이로 82세. 우리 네 명의 나이는 각각 22, 24, 25, 26세. 그야말로 '헉'.

<동아일보> 편집국장, <한겨레신문> 사장, <문화방송> 사장 등 언론인으로서의 이력도 화려했다. 주위 후배 기자들이 쩔쩔 매는 '원로'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한평생 강직한 언론인의 길을 걸어온 꼬장꼬장한 노인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우리가 김중배 선생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설레기보다 긴장이 앞섰다.

그런데 '책을 찢고 나온' 김중배 선생의 모습은 우리의 상상과 거리가 멀었다. 어두운 색의 등산복, 등산화, 등산 가방. 전형적인 '동네 할아버지' 모습이었다. 김중배 선생은 동행인도 없이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회사로 왔다고 한다. 녹음실에 들어서는 선생에게 우리를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요즘엔 인턴만 하고 끝이 아니냐"며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유쾌하지만, 힘이 느껴졌다. '화석' 같은 80대 노인을 상상하던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평범한 80대 노인의 모습을 생각했을 때, 그는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팟짱' 녹음이 끝난 뒤, 우리는 김중배 선생과 사무실 한 편에 마주앉았다. 20여 분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화 내용은 묵직하게 다가왔다. 세월호 참사, 통합진보당 해산 등 지난해 한국 사회가 마주한 일련의 사건도 언급됐다. 그런데 김중배 선생과의 대화에서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유연한 사고와 기자로서의 겸손함이었다.

'어버이연합' 취재 위해 도봉산을 찾는 '괴짜'

지난 17일 '팟짱' 녹음을 위해 <오마이뉴스> 사무실을 방문한 김중배 선생이 대학생 인턴기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지난 17일 '팟짱' 녹음을 위해 <오마이뉴스> 사무실을 방문한 김중배 선생이 대학생 인턴기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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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배 선생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궁금한 '사람'에는 '일베'나 '어버이연합'도 포함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어버이연합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고. 도봉산에 가면 특히 많아. 노인들이 술 인심이 좋거든. '술 한 잔 합시다' 그럼 '그럽시다' 그래. 그렇게 그 사람들이랑 이야기해보면 참 재밌어. 싸우면 안 되지. 그럼 이야기를 안 하잖아"

선생은 술자리에 껴서 자신과 정치 성향이 다른 노인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재밌다고 말했다. 그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싸우기보다 가만히 듣고, 넌지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중 선생의 말에 수긍하는 하는 사람이 생긴단다. 물론 "그래도 난 박근혜가 좋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 김중배 선생은 여전히 세상을 관찰하고 있었다. 인턴 중 한 명은 김중배 선생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솔직히 꼰대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김중배 선생에게 질문을 던지는 내가 꼰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김중배 선생은 진화심리학, 후생유전학, 뇌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학 분야의 책을 읽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자는 평생 공부를 놓지 않아야 한다'는 명제를 몸소 실천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역시 인턴 소감.

"선생님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단순히 물음표를 던지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공부하신 거다. 기자니까. 저널리스트니까. 나는 세월호를 보면서 안타까워만 했지 사회를, 사람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기자는 단순한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된다.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김중배 선생처럼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과연 선생처럼 훌륭한 언론인이 될 만한 놈인가?'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특종이 부끄러운 기자

김중배 선생
 김중배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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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배 선생은 1957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 후 반 백년이 넘는 시간을 언론인으로 살았다. 그런 그가 언론인으로 살아온 긴 시간 중 가장 '부끄러운 기억'을 우리 앞에 털어놨다. 그 부끄러운 기억은 '조봉암 사형'을 특종 보도한 것이다. <한국일보> 초년 기자 시절이었다.

"저는 그때 20대였어요. 어느 정치인이 사형을 당하는 것을 조금 일찍 알렸다고 상을 받고, 상금을 받고, 그걸로 술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서 사람을 치고. 이런 것이 기자라는 직업인가...(생각했지요)"

누군가는 '조봉암 사형' 보도를 '특종'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김중배 선생은 이 경험을 자랑하기보다 오히려 부끄럽게 여겼다. 또 부끄러움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부끄러운 글을 쓰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를 보며, 인턴 중 하나는 지난 겨울의 기억을 고백했다.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두고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찾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세월호 농성장의 모습을 기사에 담고 싶었다. 모두가 웃고, 떠들고, 즐기는 크리스마스에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농성장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내 기억 속 세월호 농성장의 마지막 모습은 여름에 멈춰있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40일이 넘게 곡기를 끊었던 유민 아빠,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이 있던 공간. 내 기억과 달리 그 날 마주한 농성장은 황량하고 차가운 느낌이 났다. 농성장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의 온기가 없었다.

그 풍경을 마주한 순간, 차마 농성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제야 다시 농성장을 찾은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할 자격이 있을까 생각했다. 농성장 주위를 뱅뱅 돌았다. 어렵사리 취재를 마치고 나서도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했다. 그것이 '부끄러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김중배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다."

제2의 민주화운동을 말하는 '청년'

김중배 선생
 김중배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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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김중배 선생을 만난 날은 제헌절이었다. 하루 전날, 대법원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유무죄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 그 사건을 파기환송 했다. 김중배 선생은 지난해 겨울,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공개변론을 직접 들으러 갔다고 말했다. 현안에 대한 관심이기도 했지만, 조봉암 사형 사건을 취재한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통합진보당 해산과 조봉암 사형이라는 굵직한 두 사건을 모두 목격한 소회를 말했다.

"반세기라는 시간이 지났잖아요. 역사라는 것이 이렇게 진보되지 않는 것인가..."

선생은 '팟짱' 녹음 중 한국 사회의 무기력함과 패배주의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이에 그치지 않고 "제2의 민주화운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중배 선생은 한국 사회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듯 했다. 

"민주주의는 장정이에요. 정착이 없지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 김중배 선생은 여전히 '청년'같은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스무 살의 중반으로 접어드는 우리는 김중배 선생에게 '젊음'을 배웠다. 한 인턴 기자의 소감이다.

"우리는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곤 한다. '대한민국은 틀렸어'라며. 24년 인생동안 대한민국은 변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피부로 느껴왔다. 아직까지는 가슴 한편에 남아있는 희망의 불씨를 갖고 있다. 언제 꺼질지 모르겠다.

백발 노인 김중배 선생의 가슴속 불씨는 나의 그것보다 훨씬 뜨거웠다. 80년이 넘는 세월동안 대한민국은 그 불씨에 물을 수 십 번, 아니 수 백 번 뿌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내 가슴속 불씨가 몹시 초라해 보였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나의 불씨에 김중배 선생은 꺼지지 말라고 공기를 불어 넣어줬다. 아니 어쩌면 시너를 내 손에 쥐어주고 갔을지 모른다."

○ 편집ㅣ이정환 기자

덧붙이는 글 | 김예지 기자와 박현광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 기자 입니다.



태그:#김중배, #인턴 기자, #팟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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