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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서 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꼽으라면, 단연코 '내 감정을 외면해야 했던 일'이다. 진상 고객도, 백화점 관리자들의 압박도, 밤새 잠 못 이루게 했던 근육통도 1순위는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정말 힘든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냥 힘든 게 아니라 정말 온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순간 말이다. 마음은 다 죽어 있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오늘도 살아있어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문을 나서는 그런 날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왔다. 하필이면 백화점에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많이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과 깊이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무척 견디기 힘들었다. 마음은 너덜너덜해진 종잇장 같았다.

배도 안 고팠다. 점심시간에 억지로 식당에 앉아 두세 숟갈을 겨우 목으로 넘기고 나면 거짓말처럼 배가 불렀다. 누가 바늘로 콕 찌르면 거기서 눈물이 분수처럼 솟아날 것만 같았다.

매장에서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 감정의 종류

지난 2011년 11월 29일 오전 서울 중구 무교동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여성감정노동자 인권개선 캠페인'에서 인권위 관계자들이 여성감정노동자의 현실에 관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무개념 손님 사절' 지난 2011년 11월 29일 오전 서울 중구 무교동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여성감정노동자 인권개선 캠페인'에서 인권위 관계자들이 여성감정노동자의 현실에 관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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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매장에서 이런 감정들은 조금도 허락되지 않았다. 고객들 앞에서 직원은 언제나 상냥하게 웃어야 했고, 우울한 표정은 절대 금지였다. 몇 번 만나 말을 섞으면서 친근해진 고객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마음은 울고 싶은데 애써 밝은 척을 하려니 나 자신을 외면하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힘든 상태의 나와 매장에서 웃고 있는 나를 분리시켜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아파하는 나는 내가 아니다'라고, 그렇게 감정을 외면하면 견딜만 했다.

그렇게 꾹꾹 감정을 눌러 담았다가 쉬는 시간에 휴게실에서, 상품을 찾으러 창고에 갔다가, 혹은 주문받은 상품을 택배 발송하러 가면서 갑자기 가슴의 통증과 함께 눈물이 줄줄 흘러넘쳤다.

명절이나 각종 기념일 즈음에는 더 했다. 온통 연인과 가족들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그 큰 백화점 안에 덩그러니 던져진 것 같았다. 

딱 한 번, 매장에서 눈물이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린 적이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나조차도 깜짝 놀라 당황했다. 급히 소매로 볼을 닦아내는데, 매니저가 정색을 하면서 화를 냈다. 그때 매니저가 다른 직원들을 가리키며 했던 말이 기억난다.

"여기 어느 누구도 자기감정 표현하면서 일 하는 사람 없어. 다들 자기 힘든 일 있어도 매장 나와서는 웃으면서 일 하는 거야. 너 힘들다고 고객이나 관리자가 알아줄 거 같니? 힘들다고 울 거면 여기서 나가. 어디 매장에서 울고 있어?!"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아마 백화점 안의 그 누구도 이 말에 반박할 사람은 없으리라. 이 많은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직원의 개인적인 사정이나 감정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지나가던 고객이 "기분 좋게 쇼핑하러 나왔는데 직원이 우울해서 불쾌해졌다"라며 불평하며 항의를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곳이다. 그저 직원이 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객을 불편하게 만든 죄인이 되는 곳.

어떤 사람들은 공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며, 사적인 감정을 직장에 끌고 들어오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누구나 일터에서는 참고 버티고 사는 거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일을 할 때에 개인적인 상황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일에 집중하는 게 프로답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고 칭찬한다. 그런데 우리는 꼭 그렇게 일터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외면한 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감정은 분리할 수 없는 그 사람의 일부이며, 인간성이다. 감정을 외면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도 나는 그 당시에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내 자신이 둘로 분리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당신이 내는 돈 중 감정노동의 대가는 '0원'

감정노동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인간성을 외면하게 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화나고 짜증나는데 웃어야 하고, 지쳤는데 지치지 않은 척 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자기감정을 눌러 가면서 일을 하지만, 고객을 대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독 그러한 감정노동이 심하게 강요되고 있다. 

그런데 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 사람이니까 힘들 수도 있다고, 짜증나거나 지칠 수도 있다고 생각해줄  수는 없는 걸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든 힘들어할 때가 있으면서, 내 눈앞의 노동자에게는 힘들어할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특히 서비스직 노동자라면 고객이 불쾌해지지 않도록 늘 웃는 모습일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백화점 매장에 들어섰을 때, 직원이 조금 빨개진 눈으로 기운 없이 인사를 한다고 해서 쇼핑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제가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라고 말하는 직원에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기운 내시라는 한 마디 건넬 수도 있지 않을까? 위로의 한 마디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무슨 일 있으신가보다' 정도로 생각할 수는 있지 않을까?

백화점 고객들이 이런 상황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내가 지불한 돈에 이 백화점 안에서 내가 받을 감정노동 서비스에 대한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상품가격에 포함된 백화점 수수료 중 일부는 당신에게 감정노동 서비스를 제공한 노동자에게 돌아갔어야 한다.

그러나 백화점 수수료는 한 푼도 입점업체 판매직원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 당신이 백화점에 낸 돈은 백화점을 이용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일 뿐, 판매직원들의 감정노동에 대한 대가는 아니라는 말이다.

비용의 문제를 떠나서, 과연 내 감정을 위해 타인의 감정을 죽이라고 요구할 수가 있는 걸까? 돈으로 다른 누군가의 감정도 살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들을 이대로 방치해두면 안 되는 게 아닐까? 아무리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감정노동,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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