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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학보> 화면 갈무리
 <이대학보> 화면 갈무리
ⓒ 이대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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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4년째 다니면서 학보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이렇게까지 클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것도 기자들이 공들여 기획하고 취재했을 기사가 아니라, 아마도 마감 날 기자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겨우 생각해냈을 칼럼 한 편이 논란을 일으켰다니.

좌파·친북 단체 유의하라는 학보사 칼럼

지난 5월 4일 발행된 이화여자대학교의 학보 <이대학보>에 실린 칼럼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갔다. 정확히 말하면 비판과 비난이 갔고 입장 표명이 돌아왔으며 더 거센 비판이 다시 가는 중이다. 문제가 된 칼럼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마음만큼 중요한 것'은 "폭력시위는 추모제에 참여한 좌파·친북 단체가 세월호 유가족을 앞세워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로 진격을 시도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좌파·친북 단체가 추모를 내세워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으니, "(집회의) 참가자들은 진정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참가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이 칼럼에 독자들이 날선 비판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이 글은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며 풍찬노숙을 감행한 부모를 보상금과 이념의 프레임 안에 가뒀다. 몰상식한 일부 언론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했다.

비판이 이어지자 이대학보사와 칼럼을 쓴 해당 기자의 입장표명이 나왔지만 그 역시 '세월호 집회를 자신들의 개인적인 목적에 이용하는 일부 단체'라는 시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경솔한 단어 사용, 부족한 현장 취재에 대한 이야기만 담고 있어 오히려 독자의 분노를 키울 뿐이었다.

학보사에서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냐고?

<이대학보>를 향하는 비판과 분노의 핵심 중 하나는 '학보사에서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가'다. 기성세대에 물들지 않은 참신하고 날카로운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볼 것이라 믿었던 대학 학보사의 기자가, 보수 언론의 논조를 그대로 따왔다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오는가 보다.

아마도 이들이 상상하는 학보사 기자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신문과 TV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동료들과는 시사 이슈에 대해서 의견을 나눈다. 학보에 실릴 기사를 구상할 때면 기자와 부장단이 갈등하고, 가끔은 주간 교수나 본교 당국의 비이성적 행태를 지적하다가 불이익을 받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고 학우들의 알 권리를 위해 노력한다.

1년 조금 넘는 짧은 시간 동안 학보사에 몸담았던(2012~2013년 <고대신문>) 나는 독자들의 이러한 '상상'이 낯설기만 하다. 나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내가 겪었고 봐왔던 학보사는 이미 힘든 동아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편집실에 일간지가 쌓여 있지만 스마트폰으로 네이버 연예 뉴스의 '베댓'을 더 자주 본다. 부장단과는 사실 "나만 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혹은 "내 기사를 왜 이렇게 늦게 첨삭해주냐"로 갈등하고, 학교 당국이 주는 불이익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어 하는 게 내가 본 학보사 기자의 모습이었다. 기성세대가 세상 돌아가는 소식 좀 알고 지내라며 젊은 세대를 싸잡아 욕할 때, 보통의 학보사 기자 역시 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들이 학보사에 지원하는 이유 역시 거창하지 않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단순히 '재밌어 보인다'는 이유로 지원한다. 언론에 대한 지원자들의 이해도는 평균을 웃돌기가 힘들다. 언론을 잘 아는 지원자만 선발하면 되지 않냐고? 많은 학보사가 고질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는 탓에 그런 이유로 지원자를 탈락시킬 수도 없다.

내가 아는 한 학보사는 신입 기자가 과거에 '일베'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인원이 부족했던 탓에 해당 기자를 잔류 시켰다. "역량이 부족해? 우리가 도와줄 테니까 제발 지원만 해줘"가 수습기자 모집 시즌 학보사 국장들의 마음일 것이다.

학내에서 학보사가 차지하는 위상 또한 과거와는 달라졌다. 먼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듣는 "학보사 지원자가 편집실에 다 들어올 수도 없을 만큼 많았어"라는 얘기는, 신나게 이야기하는 선배들께는 죄송하지만 너무 현실감이 떨어져 놀랍지도 않다.

당신이 낸 등록금으로 만드는 학보

만우절인 4월 1일, 고려대학교 학보사 <고대신문> 페이스북의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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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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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보사의 사정이 이렇게 열악하니, <이대학보>의 칼럼을 비난할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보사의 열악한 사정을 개선하기 위해서 학보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이대학보>의 칼럼과 입장표명을 두고 오가는 토론을 바라보며 나는 엉뚱하게도 아주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편협한 시각에서 쓰였고 비판 받아 마땅한 글이지만, 어쨌거나 대학사회에서 학보사의 글 하나가 이렇게나 심도 깊은 논의를 끌어내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당장 나부터 내가 쓴 40여 편의 기사의 외부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학보사 구성원들에게 피드백은 주로 '내부'에서 이뤄지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 사건이 사람들이 학보사를 한 번쯤 더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명백히 잘못된 칼럼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도 충분히 긍정적이지만, 평소에 학보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보내는 것이 평범한 학생들의 동아리가 되어 버린 학보사에도 생산적인 일이 될 것이다.

<이대학보>를 비판하는 의견 중 하나는 "우리가 낸 등록금으로 만드는 학보를 이렇게 막 써도 되느냐"였다. 맞는 말이다. 당신이 낸 등록금으로 만드는 학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매주 지켜봐 준다면 더 좋을 것이다. 비오는 날 우산 대용으로 쓰는 학보는, 바로 당신이 만든 것이니까.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이대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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