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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의 낙원 스웨덴

이제 우리는 오슬로를 떠나 스웨덴으로 향한다. 노르웨이 북방과는 달리 오슬로 동쪽을 달려 스웨덴 국경의 샤롯텐부르크로 가는 길은 지루하리만큼 끝없는 평야지다. 도로 옆으로 목초지와 조림지가 번갈아가면서 스크린처럼 펼쳐진다. 가끔씩 사슴과 말, 양떼들이 한가로이 목장을 거니는 모습이 보인다.

이 나라의 주요 자원인 수림이 구릉과 평야지에 빼곡하다. 우리가 머물 호텔 옆으로는 대형할인점이 붙어있어 저녁식사 전에 쇼핑을 즐길 수 있었다. 북유럽 그 어느 지역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즐거운 만찬을 위해 맥주와 보드카, 와인을 조금씩 준비했다.

다음날 숙소에서 스톡홀름까지는 4시간이 걸렸다. 한식당에서 깊은 맛이 우러나는 구수한 전라도식 육개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바사박물관으로 향했다. 바사함은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전함으로 바사왕가의 구스타브 2세가 재위했던 1625년에 건조되어 1628년 8월 10일 첫항해 때 침몰했다. 당시 스웨덴은 북유럽 발트해 주변 제국건설에 분주해 막강한 해군력을 절실히 필요로 했기 때문에 전함 건설에 총력을 기울였다.

스톡홀름 시내의 박사박물관은 바다위에 세워졌으며, 돛대는 천장으로 나와있는 독특한 형태다.
▲ 바사박물관 내의 모형 바사함대 스톡홀름 시내의 박사박물관은 바다위에 세워졌으며, 돛대는 천장으로 나와있는 독특한 형태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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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사호는 그 당시 건설된 전함 중의 하나인데, 길이 69m, 높이 48.8m, 탑승가능 인원 450명, 탑재가능 대포수량 64개에 이르는 거대한 배로 제작되었으며, 동시에 300㎏ 이상의 포탄을 발사할 수 있는 강력한 화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진수식을 하자마자 열린 포문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수분 만에 침몰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배에 승선하고 있던 150여 명 중 30여 명이 익사했다.

침몰한 바사호는 1956년 해양고고학자인 안데스 프란첸에 의해 발견되어 333년 만인 1961년에 인양되었는데, 인양된 배에서 25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바사호는 1962년부터 임시박물관에 있다가 1988년에 새로운 박물관으로 이전하여 1990년 바사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이곳은 스칸디나비아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박물관으로, 바사호에 관련된 자료와 수장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배의 선박 바닥을 받치는 재목인 용골에서부터 꼭대기까지 6곳의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바사를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은 총 4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층에서는 바사의 준공, 취항, 침몰, 인양의 각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스웨덴의 옛 모습과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감라스탄 구시가지는 하나의 거대한 옥외 박물관 같다. 작은 섬이지만 고딕, 바로크, 로코코 등 다양한 양식으로 건축된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하다. 옛 건물을 개조한 레스토랑과 카페들도 이색적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은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중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를 걷다 보면 16세기 유럽의 어느 마을 속에 와 있는 듯하다.

실제로 감라스탄은 13세기에 형성되어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 온 곳으로 건물 외벽에서 묻어나는 세월의 흔적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역사다. 지금은 스톡홀름의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고급 주택가로 거듭났지만 그리 부담스러운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저렴하게 스웨덴 전통요리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 많아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들이 선호한단다.

감라스탄 구시가의 중심은 중세분위기가 남아 있는 대광장이다. 노벨박물관, 노벨도서관, 증권거래소 등 명소들이 작은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도 늘어서 있다. 여름에는 수많은 관광객과 거리로 나온 예술가들로 활기가 넘치고 겨울에는 광장 주변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선다. 지금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광장이지만 1520년 '스웨덴 대학살 사건'이 발생한 비극의 현장이기도 했다.
 
선상에서 바라본 시가지가 바다 위에 떠있는 듯 아름답다.
▲ 바이킹라인에서 바라본 스톡홀름 시내 선상에서 바라본 시가지가 바다 위에 떠있는 듯 아름답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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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항구로 이동해 오후 4시30분에 출항하는 바이킹라인에 탑승했다. 북유럽의 발틱해를 따라 스톡홀름에서 헬싱키를 운항하는 바이킹라인은 길이 190m, 폭 29m, 2500명의 승객과 400여대의 차량을 탑재시킬 수 있다. 초호화 유람선답게 선내에는 나이트클럽, 카지노, 사우나, 오락실, 면세점, 카페 등을 갖추고 관광객을 유인하고 있다. 승객들은 면세점에서 한가로이 쇼핑을 즐기거나 삼삼오오 펍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봄빛에 출렁이는 발트해를 만끽하고 있다.

바이킹 뷔페식으로 준비된 만찬은 이들의 식문화가 우리와 다른 매력이 있다. 각자 좋아하는 음식의 취향에 따라 적당량을 오래 시간동안 음미하면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매력이다. 이용객이 많지 않아 우리는 가능한 천천히 무료로 제공되는 맥주와 와인까지 곁들어 가며 그들처럼 식문화를 즐겼다.

발틱의 아가씨 헬싱키

다음날 마지막 기착지 헬싱키에서는 먼저 원로원광장을 찾았다. 알렉산드로 2세 동상을 중심으로 19세기에 지어진 헬싱키 대성당과 정부청사 등이 광장을 멋스럽게 둘러싸고 있다. 광장의 넓은 바닥에는 약 40만 개의 화강암 포석이 깔려 있단다. 루터란대성당은 1852년 건축가 카를 앵겔(Carl Engel)이 지은 곳으로 루터파 교회의 총본산이기도 하다. 네오클래식 양식의 웅장한 건물과 푸른색 돔이 눈에 띄고, 햇빛이 밝은 날에는 눈부실 정도로 빛나는 상아색 외벽이 인상적이다. 외관은 성당지붕에 있는 예수와 12사자상, 화려한 돔, 내부는 대형오르간, 제단 위의 그림, 루터의 동상 등이 볼 만하다.
  
광장을 중심으로 알렉산드로2세 동상과 헬싱키 대성당, 정부청사 등이 둘러싸고 있다.
▲ 헬싱키 원로원 광장 옆의 정부종합청사 광장을 중심으로 알렉산드로2세 동상과 헬싱키 대성당, 정부청사 등이 둘러싸고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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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석교회'로 잘 알려져 있는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는 루터교 교리와 핀란드 자연환경의 조화를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건축가 티모와 투오모 수오말라이넨 형제가 1961년 공모를 통해 이 교회 건축의 설계를 맡게 됐다. 형제는 암석을 쪼아내 공간을 만들고 그 위를 원형 유리로 덮어서 자연광이 잘 들어 올 수 있는 교회 건축물을 설계했다. 내부 좌석도 제단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배치했다.

암석을 파내어 내부를 만들면서 자연상태 그대로 남겨 두었던 암석 일부가 교회 건축 내부를 장식하고 있다. 그들은 실내의 의자도 최대한 단순하게 제작했고, 불규칙한 돌 표면의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이도록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장식도 모두 생략했다. 음향 전문가와 지휘자가 처음부터 건축의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 음악회가 자주 열릴 정도로 뛰어난 음향시설을 갖추게 되었단다.
 
천장을 나무로 받쳐 원형창을 만들어 최대한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설계되었고, 천연 암석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건물 내부가 인상적이다.
▲ 암석교회(템펠리아우키오) 천장을 나무로 받쳐 원형창을 만들어 최대한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설계되었고, 천연 암석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건물 내부가 인상적이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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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최대의 러시아정교회 건물인 우스펜스키 사원과 해안가에 늘어선 마켓광장을 들러보는 것으로 우리의 공식일정은 끝이 났다. 이제 공항으로 이동해 출국수속을 밟고 헬싱키와 인천 간 핀에어 직항로를 이용해 귀국하면 끝이다. 길지 않은 여행이지만 집 떠나온 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지나온 여정을 되짚어 봐도 순서대로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여행은 내 인생에 무상으로 주어진 것들, 이를테면 아련한 불빛이나 저녁의 따스한 바람, 기대하지 않았던 배려,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한 맥주, 취기가 오를수록 가까워지는 사람과 그 사람들의 목소리에 대해 집중하는 법을 늘 가르쳐준다. 여행은 다리 떨릴 때 하지 말고 가슴 떨릴 때 하라는 가이드의 말이 새삼 실감난다.


태그:#스웨덴, #핀란드, #스톡홀름, #헬싱키, #북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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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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