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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꿈에 그렸던 네팔 포카라에 도착했다. 10여 년 전 혼자 배낭여행을 왔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곳에 같이 여행 와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이제서야 그 꿈이 이루어졌다.

포카라에서 1주일 동안 오픈한지 얼마 안 되는 '일레븐인(Eleven Inn)'에 숙소를 잡고, 우리는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서 5개월 동안 지낼 집을 찾으러 나섰다. 숙소 주인장에게도 우리가 장기간 지낼 집을 얻는다고 하니 선뜻 도와준다고 하여 하루에 한 집씩 소개해준 곳을 가보기도 하고, 신비로운 안나푸르나와 페와 호수가 보이는 곳을 중심으로 돌아다니면서 알아보았다.

한 공간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유모차에 데리고 다니면서 집을 알아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한비 덕분에 현지인들이 우리에 대해 경계심 없이 편하게 만날 수 있었다.

포카라에서 집 구하기
 포카라에서 집 구하기
ⓒ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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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모든 정보들은 가게에서 공유가 되기에, 보이는 가게들마다 빈 방이나 빈집을 물어보았는데, 한 상점의 15살 정도 되어보이는 소녀가 외할머니 집이 비어 있어서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그 집은 신축한 지 1년도 안 되었고 주변에 대가족이 살고 있어 치안에 대해 신경쓰지 않아도 됐다. 풀옵션에 공과금 포함하여 월 25만 원이던 것을 기나긴 협상 끝에 20만 원으로 낙찰하고 월세를 내려고 숙소로 돌아갔다.

환전하기 위해 복대에 있는 달러를 세는 순간 $1000(약 110만 원)가 없어졌다. 혹시 우리나라에서 환전한 것을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잘못 센 것인지 여러 번 세어보아도 $100짜리 10장이 없다. 남편은 며칠 전 지갑에 돈이 약간 흐트러져 있어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말았는데 남편의 지갑에도 $200(약 22만 원)가 비었다.

며칠 전 거리에서 지인을 우연히 만나 1시간여 우리의 복대와 지갑을 방에 둔 적이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 들어와 돈을 훔쳐간 것이다. 빨리 탄로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돈이 그대로 있는 것같이 해놓고 말이다. 말로만 듣던 사기수법을 우리가 당하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숙소 주인장에게 얘기하고 경찰서에 신고했지만 현금이 없어진 것이기 때문에 해결 방안이 없다고 한다. 오전 시간대에 열쇠를 갖고 있는 것은 주인장밖에 없고, 우리가 장기간 지낼 집을 찾고 있고 있기에 현금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주인장밖에 없다. 주인장이 범인인 것이 확실하나 물증이 없기에 돈을 받아낼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숙소를 떠나는 게 아까워 우리는 숙소의 새 침대시트를 갖고 떠났다.

133만 원짜리가 되어버린 침대시트로 우린 무엇을 할 것인가? 꿈에 그렸던 포카라에서의 생활을 속앓이로 지내지 않으려면 이 침대시트로 133만 원 이상의 가치를 생산해내야 했다.

타지에서 '유목민가게' 창업하기

하루는 포카라에 있는 타쉴링 티베트 난민촌에 방문하여 기거하면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러 갔다. 올해가 티베트인들이 티베트에서 네팔로 떠나온 지 50년이 되는 해였다. 거리에서 수공예품을 팔고 계시는 한 아주머니는 남편은 돈 벌러 카트만두에 있고 자식들은 인도로 공부하러 가서 방이 비었으니 한번 보러 가지 않겠냐고 하셨다. 대부분 티베트인들이 이곳에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이 제한되어 있기에 청년들은 수도나 다른 나라로 가서 일하게 되고 노인, 여성, 아이들이 주로 남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우리가 머물 수 있는 방과 기도방을 보여주시며 사과와 찌야(블랙티)를 대접해주셨다. 기도방은 매일 아침 이곳에서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신다고 한다. 마음의 방을 두어 이곳에서 50여 년 동안 매일같이 기도하면서 난민의 삶을 이겨내신 것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우리는 난민촌 커뮤니티센터에 가서 봉사활동을 알아보았으나 정착촌이 되어 긴급하게 필요한 일이 없었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카페트를 만드는 기술을 통해 카페트를 팔아서 나온 수익금으로 커뮤니티가 운영되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서 잘 쓰이는 일은 티베트인들의 전통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카페트를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33만원 침대 시트로 수공예품 사진찍기
 133만원 침대 시트로 수공예품 사진찍기
ⓒ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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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방을 보여주신 아주머니에게 다시 가서 갖고 계신 수공예품 중 팅샤(티베트 전통 종)를 한 개 구매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수공예로 만든 종과 카페트를 전 세계 수공예품 공유 사이트에 공유해보면 어떨까? 우린 오프라인으로 가게를 만들면 재고와 공간, 시간에 메여있게 되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가게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우리의 하얀 침대시트에게 할 일이 생겼다. 사진 찍을 때 수공예품의 배경이 되어 수공예품의 특징이 잘 살릴 수 있도록하는 것이다.

첫 개시로 팅샤를 공유한 후 며칠 있다 메일이 왔다. 미국 뉴욕에서 어떤 사람이 구매했다는 것이다. 배송비가 물품 값보다 비싸기에 과연 사는 사람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희망의 가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혼이 담긴 물건을 탄생시키고, 세상 어딘가에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것을 우리가 매칭시켜준다는 게 참 신기했다. 이렇게 우리는 133만 원의 침대시트 덕분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태그:#네팔, #포카라, #창업, #공유, #디지털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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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탐험을 좋아하고 현재 덴마크 교사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기발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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