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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초청강연회 참석 도중 오전 7시 35분께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가 휘두른 흉기에 의해 얼굴과 손에 큰 부상을 입었다. 사진은 주한미국대사에 대한 피습이 발생한 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광장을 사이에 두고 있는 미국대사관의 모습.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초청강연회 참석 도중 오전 7시 35분께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가 휘두른 흉기에 의해 얼굴과 손에 큰 부상을 입었다. 사진은 주한미국대사에 대한 피습이 발생한 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광장을 사이에 두고 있는 미국대사관의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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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어떤 법에 나오는 규정인지 아는가?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1991년에 개정될 때 제1조 제2항으로 들어간 대목이다. 준엄한 명언인 것 같지만, 실상은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를 빙자하여 국민의 인권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한 자백 같은 조항이 바로 위 조항이다. 과거 국가보안법의 온갖 악행을 국가보안법 스스로가 성찰하면서 다시는 그런 악행을 저지르지 않겠노라 다짐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국가보안법의 다짐과 약속을 비웃는 수사가 지금 노골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이렇게 한번 물어보자.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칼로 찌른 김기종씨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지 않으면 (혹은 못하면),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것인가? 지금 김씨를 수사하는 서울 종로경찰서의 100여 명 가까운 경찰들과 서울중앙지검의 공안부 검사들은 정녕 그렇게 생각하나?

미리 준비한 과도로 무방비 상태의 리퍼트 대사 얼굴을 찔렀으니 살인미수를 적용하는 건 법리상 당연하다. 그러면 살인미수로 처벌하면 된다. 김씨의 황당무계한 행위에 대하여 누구든 비난하라. 그렇다고 하여 국가보안법 적용이 올바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지 못하면 마치 김씨의 행위가 무죄라도 되는 듯한 자못 흉흉한 분위기다.

수사당국이 문제 삼는 김씨의 개별행적도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정확한 사실관계와 증거를 살펴보아야 할 터이나 대략 정부의 승인을 받아 방북한 것이나, 김정일 사망 시 분향소 설치 시도를 하였다거나, 김정일의 예술론에 관한 책자를 소지하고 있었다거나,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발간한 <민족의 진로>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문제 삼는 모양이다. 현행 국가보안법의 해석론으로 이러한 항목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라고 단정짓기 어렵다.

국보법 처벌 의지가 만들어낸 엉터리 근거들 

먼저 정부의 승인 아래 북한을 방북한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 자체를 따지기 어렵다. 국가보안법 제6조의 탈출죄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지만, 그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탈출이란 대한민국 체제를 피하여 북한으로 가는 것이다. 정부의 승인 아래 방북한 것을 탈출이라 한다면 정부의 승인은 논리적으로 탈출을 방조한 행위에 해당하는 것인데, 이 결론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는가?

아울러 정부의 승인을 받아 합법적으로 방북하는 행위를 나중에 불법시 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의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그런 논리이면, 그때 같이 방북했던 사람들, 그때 방북을 승인한 정부 관계자들도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이 된다. 실로 웃기는 일이다.

다음, 분향소 설치의 점. 김정일의 사망으로 분향소를 설치한 데 대하여 사회적 논란은 있지만, 이에 대하여도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실제 대법원 판례(2012.05.09. 선고 2012도635)를 보자. 사건의 피고인 A는 방북자들의 개성시 관광을 안내하면서 김일성 동상 앞에서 참배하도록 주선하거나 함께 참배함으로써 반국가단체 등 활동을 '동조'하였다고 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판결하였다.

또한 피고인 B가 북한의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하여 그곳에 참배함으로써 반국가단체 활동에 동조하였다고 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다른 사건(대법원 2014.01.29. 선고 2013도12276 판결)의 경우,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판단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 피고인은 독일 베를린에 있는 범민련 유럽본부에서 5개월간 체류하면서 북한공작원과 회합하는 등 그 참배행위의 전후 상황이 김씨의 단순 분향소 설치 시도와는 달랐다.

더구나 이 대법원 판결의 원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피고인 B의 참배에 대하여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서 평소 이념적 편향성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의 단순한 참배 행위는 망인의 명복을 비는 의례적인 표현(예식)으로 애써 선해될 여지도 있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미 대사 피습' 김기종, 영장실질심사 출석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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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사망에 임하여 분향소를 설치하면서 그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망자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의 것이고, 우리의 고유한 정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록 남과 북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대치하여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김정일의 죽음에 대하여 조의의 표시로 분향소를 설치한 것만 가지고 이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일 이 조의의 표시를 국가보안법으로 단죄한다면, 당시 조문을 위하여 방북한 이희호 여사는 어떻게 되며, 김정일의 죽음을 애도한 내외의 단체, 인사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시 공안당국이 조문의사 표시나 분향소 설치 시도에 대하여 국가보안법 적용을 검토하였다가 이를 거둬들인 이유도 이러한 난점을 공안당국도 인정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자 소지의 점. 김씨가 소지한 책자의 내용을 보아야만 이적성이 있는지를 알 수 있으나, 알려진 제목만으로는 이적표현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대법원 판례는 이적표현물 여부는 그 표현물의 내용이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북한에서 발간된 자료라고 하여, 이적단체로 판명난 범민련이 발간한 것이라고 하여 무작정 이적표현물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책자 몇 개 찾아내서 김씨가 종북이네 하는 것은 정말이지 황당하다. 지금 같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 유튜브만 들어가도 북한의 노래,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마음만 먹으면 북한의 '구국전선' 같은 사이트에 우회접속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가. 수많은 책 중에 단지 몇 권에 불과한 책을 가지고 김씨를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게 가당한가?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코미디'

지금 김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수사는 단언컨대, 잘못되고 있다. 김씨가 받고 있는 의혹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이 명백하다고 하기 어렵다. 물론 개별적인 사안에서 법원이 유죄를 인정할 가능성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 또한 지금의 광란적인 분위기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더구나 국가보안법 위반행위자들에 대하여는 공안당국이 2~3년간 추적관찰하는 흐름을 감안할 때, 김씨가 경찰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공안경찰의 감시망 안에 있지도 않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김씨가 그런 감시망 안에 있었다면 사건이 벌어진 날 아침 김씨는 아예 행사장 입장이 안 되었을 것이다. 이는 역으로 김씨가 그간 특별하게 국가보안법 위반이 문제 될 만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공안당국은 어떤 범죄사실이 밝혀져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정상적인 수순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집념 아래 먼지털이식 수사를 하고 있다. 이건 그냥 수사가 아니라 "표적" 수사다. 표적수사는 그 자체로도 잘못된 것이지만, 국가보안법 제1조 제2항에도 위반되는 불법적인 수사다. 국가보안법 위반을 조사하는 수사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리퍼트 대사에 대한 김씨의 공격행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왕조시대도 아니고 엄연히 법치국가를 자임하는 대한민국에서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침에 따라 미리부터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단정짓고 '조중동' 종편의 나팔소리에 맞춰 대대적인 수사를 전개하는 것은 그 자체로 법치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지금 이 사건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 검사는 물론, 이 사안에 턱도 없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대통령, 청와대 비서실장, 새누리당 대표 그리고 지금 리퍼트 대사의 무사를 기원하면서 부채춤과 난타공연을 벌이며 통성기도를 올리시는 애국시민 여러분들에게 국가보안법 제1조 제2항을 정독하시기를 권해드린다.

"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법무법인 동안 소속 변호사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가보안법 연구모임 팀장입니다.



태그:#김기종, #국가보안법, #리퍼트 미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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