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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생>의 '워킹맘' 선차장(신은정 분).
 드라마 <미생>의 '워킹맘' 선차장(신은정 분).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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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땅콩 회항' 사건으로 대표되는 가진 자의 '갑질'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져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런데 이런 갑질이 학교에서, 그것도 출산한 여교사들을 상대로 벌어지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나마 학교는 다른 직장에 비하여 여성이 덜 차별받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학교, 특히 사립학교에서 이사장과 교장으로 대변되는 '갑'들이 여교사들의 육아휴직도 허용하지 않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장면①] "이사장 찾아가 백배사죄하면 육아휴직 해줄 수도"

서울 A여고 여교사 B씨는 출산 후 육아를 위하여 학교에 휴직 연장을 신청했다. 법적으로 만 8세 이하(초등학교 2학년) 자녀가 있는 경우 여교사는 3년, 남교사는 1년의 범위 내에서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있어 당연히 허가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사장이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황한 B 교사는 지도감독청인 서울교육청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의했다. 그랬더니 "사립학교 교사의 휴직은 사학재단의 권한이므로 교육청이 강제할 수는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더 황당한 사건이 이어졌다. 재단에서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다는 이유로 B 교사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사장이 "지금까지 우리 재단에서는 여교사의 육아휴직을 연장해준 적이 없다, 휴직을 허가받으려면 직접 찾아와서 해야 하는데 서류와 전화로 신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이유를 내세웠다는 것이다.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근로기준법, 법인 정관 등 관련 법령을 보면 학교와 재단이 B 교사의 육아휴직 연장을 막을 근거는 없다. B 교사는 이사장의 아들로부터 "직접 이사장을 찾아가 백배사죄하고 선처를 요청하면 육아휴직 연장을 해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당장 육아휴직을 연장해야 하는 B 교사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도 못하지만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육아휴직을 연장할 수 있었다.

[장면②] 육아휴직 신청 묵살하고 도리어 담임 배정

서울 C고교 여교사 D씨는 육아휴직을 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가 퇴짜를 맞았다. 학교는 갑자기 인사규칙을 바꾸어 담임 배정을 발표하였는데, 예상치 못하게 D 교사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역시 C고교 교사인 인사위원장의 부인을 담임에서 빼주기 위해서 인사규칙을 바꾸었다는 뒷말이 무성했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D 교사는 다시 논의해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거부되었다. D 교사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피해가 걱정되고, 자기 아이 육아에도 문제가 될 것 같아 다시 한번 육아휴직을 하고 싶다고 학교에 말했다.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이지만, D 교사에게 돌아온 것은 핀잔뿐이었다. 학교에 대들 수도 없고, 혹시 대들어서 휴직이 받아들여지더라도 복직 후에 돌아올 보복이 두려워 육아휴직 이야기를 다시는 꺼내지 못했다.

[장면③] "우리 학교 70년 역사에 육아휴직 한 여교사 한 명도 없어"

서울 E여중 남교사 F씨는 작년에 둘째 아이를 얻었다. 아내도 직장을 다녀서 두 아이의 육아를 책임지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 같아 조만간 육아휴직을 할 예정이다. 아직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라 휴직을 신청하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F 교사의 마음은 편하지 않은 듯했다. 그는 "우리 학교에는 지금까지 육아휴직을 한 여교사가 한 명도 없어요"라며 "아마 남교사인 제가 70년 우리 학교 역사를 통틀어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최초의 교사가 될 걸요?"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근무하는 학교가 여학교라서 제자들도 대부분 엄마가 될 아이들이다. 그런데 그 학교의 여교사들이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 F 교사는 너무도 안타까웠다고 한다. 이건 제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제대로 된 교육도 아니라는 생각에 남교사인 자신이라도 꼭 육아휴직을 신청하여 선례를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환영받지 못하는 사립학교 여교사들의 출산과 육아
 환영받지 못하는 사립학교 여교사들의 출산과 육아
ⓒ 최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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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④] 육아휴직 중에 근무지 바꿔버려... 일방적 '뺑뺑이'

사학재단의 이사장이나 사립학교 교장들이 출산한 여교사를 괴롭히는 방법은 육아휴직을 불허하는 것 외에 또 있었다. 바로 일방적 전보 발령, 즉 육아휴직 중에 근무학교를 바꾸어버리는 것이다. 국가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 등 현행 법령은 육아휴직을 이유로 어떤 인사상의 불이익도 줄 수 없도록 되어 있지만, 현실은 달랐다.

서울 G고교의 교사 H씨는 육아휴직 중이었다. 산하에 여러 개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이 사학법인은 해마다 교사들의 전보(일명 '뺑뺑이')를 일방적으로 해오고 있었다. H씨도 휴직중에 전보 발령을 받았다. H씨가 휴직중이라 근무를 할 수 없자, 재단은 H 교사를 발령낸 그 자리에 기간제 교사를 채용해 채우고, G고교에는 다른 교사를 발령 냈다. H 교사는 복직을 하면 휴직중 이뤄진, 자신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전보조치에 따라 다른 학교로 출근해야 한다.

[장면⑤] "미래 어머니들을 교육하는 학교에서... 밖에 알려지면 망신"

몇 년 전, 유명 여자대학에서 운영하는 I고교의 여교사 J씨가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여자 교장과 선배 여교사들로부터 "우리 때는 육아휴직 생각도 못했다. 출산 후 바로 학교 나와 근무했다"는 식의 핀잔만 들었다. 개인적으로 그 대학 총장을 잘 알고 있던 다른 교사K씨가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다가 총장에게 전화를 했다.

K교사는 총장에게 "대한민국 최고의 여성 인재를 육성하고 미래 어머니들을 교육하는 우리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 일이 밖에 알려지면 학교 망신이다"라는 식으로 항의 아닌 항의를 했다. 그러자 총장이 바로 I고교 교장에게 전화를 하여 J교사의 육아휴직을 허락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 I고교에서는 다른 여교사들도 육아휴직을 제약 없이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교사들 눈물의 항변에 사학재단·교육당국 귀 기울일 때

물론 사립학교 중에도 법에 보장된 대로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고 임신 때문에 힘들어 하는 여교사에게 60일의 병가(病暇)까지 허용하는 학교도 있다. 그러나 법에 규정된 육아휴직 같은 초보적인 권리도 보장하지 않는 사립학교가 아직도 태반인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는 저출산고령화라는 시대적 난제 앞에 고민하고 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 역시 커다란 사회적 낭비임이 틀림없다. 현행 공무원법, 사립학교법, 근로기준법 등은 출산(임신)휴가, 육아휴직을 반드시 허가하도록 하고 있으며, 하루 한 시간의 수유시간, 근로시간 단축 등도 규정하고 있다. 연장근로와 야간근로는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사립학교 여교사들은 수유시간 보장, 근무시간 단축, 연장근로나 야간근로 제한은 대부분 꿈도 못 꾸고 있는 상황이다. 법적 강행 규정인 육아휴직은 신청조차 못하거나 죄인처럼 눈치를 보며 겨우 신청하고 있다. 어렵게 육아휴직을 하더라도 복직 후에는 자기도 모르게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나 있는 황당한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높다는 교직이 이러니 다른 직장의 상황은 더할 것이다. 물론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에 여교사가 육아휴직 불허나 육아휴직으로 인사 불이익에 대해서 소송을 하면 이길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같은 학교에서 계속 근무해야 하는 여교사들은 소송 이후에 벌어질지 모르는 인사상의 불이익과 따돌림 등 때문에 소송은 고사하고 항의도 하기 힘든 상황이다. 과연 이게 제대로 된 교육인지, "엄마가 된 것이 무슨 죄냐"라는 눈물의 항변에 사학재단도 교육당국도 귀를 기울일 때다.


태그:#육아휴직, #사립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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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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