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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8일~1월 29일까지 취업준비생 딸, 대학생 아들과 함께 셋이 이탈리아와 체코 여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남매의 성격이 많이 달라 우려하며 떠난 여행이었으나 여행하는 동안 의견을 조율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터득하여 가족을 재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를 펼쳐보려 합니다. -기자말

파시테아 거리에서 바라본 포지타노
▲ 포지타노 파시테아 거리에서 바라본 포지타노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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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을 손꼽아 본다면 어느 곳을 고를 수 있을까? 영국 BBC 방송에서 1위로 선정한 곳,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여행자들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명소 50곳' 중 지상낙원 부문 1위를 차지한 곳, 국내 항공사에서 '달리고 싶은 유럽' 1위에 빛나는 곳. 바로 아말피 해안이다.

얼마나 아름답기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는 것일까. 이탈리아 여행 코스를 계획하며 알게 된 곳이었지만 '죽기 전에 가 봐야 한다'라는 수식어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아말피 해안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하니 이번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었다.

여행 전 정보를 수집하던 중, 먼저 아말피에 다녀온 지인은 겨울에 이탈리아 남부 해안을 가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소렌토에서 아말피로 이어지는 해안가는 햇빛이 쨍한 여름에 가는 게 좋아, 겨울에는 흐린 날이 많아서 바다색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울 거야"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지인의 말을 듣고 여행을 떠나는 날까지 고민했으나 이왕 이탈리아에 왔으니 한 번 가 보자며 소렌토역으로 향했다. 소렌토에서 아말피 해안으로 가는 SITA 버스는 소렌토역 바로 앞에서 출발한다. 아말피와 포지타노를 둘 다 들를 계획이기에 더 멀리 있는 아말피부터 다녀온 후 포지타노에 들리기로 했다. 아말피행 버스표를 끊고 설레는 마음으로 오른쪽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아말피 여행 정보에 따르면 소렌토에서 아말피로 갈 때는 오른쪽 창가의 경치가 더 아름답단다.

"흐리면 흐린대로 멋있을 거야"

포지타노의 오후. 포지타노의 언덕 위로 내려앉은 노을이 아련하다.
▲ 포지타노 포지타노의 오후. 포지타노의 언덕 위로 내려앉은 노을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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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보는 바깥 날씨가 좀 흐리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지 못할까봐 내심 걱정이 되었으나 일단 버스를 탔으니 햇빛이 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아들은 오히려 "흐리면 흐린대로 멋이 있을 거야"라며 마치 여행의 고수같은 멘트를 한다. 아들에게 사진을 찍으라며 카메라를 건넸지만 휴대폰으로 찍겠다며 여유로운 모습이다.

소렌토 시내를 벗어나자 굽이굽이 구부러진 절벽길이 펼쳐진다. 해안가를 따라 난 길은 구절양장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험하지만 장관이다. 곡예하듯 절벽을 타고 달리는 버스는 구불구불 돌아가면서 멋진 경치를 보여준다. 창밖을 보고 있노라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들은 갑자기 내 손에 있는 카메라를 달라 하더니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 댄다.

아말피 해변으로 가는 중에 구름이 끼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하늘에서 구원의 빛처럼 빛내림이 보인다.
▲ 아말피 해변 아말피 해변으로 가는 중에 구름이 끼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하늘에서 구원의 빛처럼 빛내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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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빛내림이 신비로움을 더해 준다. 구름으로 가득했던 하늘이 점점 밝아지는 것 같아 덩달아 마음도 점점 가벼워진다. 경치를 감상하는 사이 버스는 어느덧 포지타노에 도착했다. 버스 승객들은 모두 포지타노에서 내리고 버스 안에는 우리 셋만 남았다. 텅 빈 버스에서 우리는 왼쪽, 오른쪽 자리를 번갈아 앉아가며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포지타노를 지나자 버스는 점점 덜컹거린다. 코너를 돌 때마다 휘청거림이 너무 심해 마치 바다속으로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그동안은 그럭저럭 버틸 만했는데 굽이길이 더 심해지는지 멀미가 나고 메스꺼워졌다. 울렁거림이 점점 심해져 먹은 것들이 막고 있는 손바닥 사이로 나올 것만 같은데 마음대로 내릴 수도 없다. 왕래하는 버스편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무슨 수단이라도 써야 하겠다고 결심할 즈음 버스가 멈춘다. 드디어 아말피 항구에 도착했다. 튕겨져 나가듯이 버스에서 내렸다. 어지럼증이 나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잠시 멈춰서서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물이 보인다. 물은 유리처럼 투명했고 흔히 바닷가에서 나는 물비린내조차 나지 않는다. 차가운 바닷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오니 머리가 맑아진다. 아말피 시내로 나섰다. 아말피를 감싸고 있는 야트막한 산 사이로 노란 레몬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상큼하다. '레몬트리' 노래가 잘 어울릴 것 같은 풍경이다.

아말피 항구의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해안. 언덕 위에는 레몬 농장이 곳곳에 있어 싱그럽다.
▲ 아말피 항구 아말피 항구의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해안. 언덕 위에는 레몬 농장이 곳곳에 있어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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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아말피는 이탈리아의 제노바, 베네치아, 피사를 비롯한 4대 항구에 속할 만큼 번성한 항구였단다. 그러나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바뀜에 따라 지금은 쇠락하여 인구 5천여 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어촌 마을로 아담하다. 그러나 아말피가 지닌 아름다움은 그대로이기 때문일까 비수기인 겨울인데도 관광객들로 붐빈다.

동네를 돌아볼 겸 성 안드레아 성당이 있는 광장으로 올라갔다. 이탈리아의 도시마다 있는 대성당을 두오모라 하는데, 아말피에서 가장 큰 두오모인 성 안드레아 성당은 아치형의 창문과 소박한 외관이 어우러진 모습으로 이슬람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재되어 보인다.

이탈리아 남부에 이슬람 교도가 많이 살았다더니 성당의 양식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청동부조문 위의 십자가를 진 안드레아는 황금색으로 치장되어 있어 화려한 느낌의 비잔틴 양식을 느끼게 한다. 검은빛 도는 회색돌과 붉은 빛깔의 돌을 교대로 겹겹이 쌓은 것이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봤던 메스퀴타 사원과 비슷해보인다. 사원 내부는 소박했지만 천정의 그림이나 장식들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소박하지만 오래된 아름다움을 지닌 두오모의 모습을 눈에 가득 담았다.

지중해 푸른 물빛과 검은 모래의 '색다른 조합'

아말피에 있는 두오모인 성 안드레아 성당에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어우러져 있다.
▲ 성 안드레아 성당 아말피에 있는 두오모인 성 안드레아 성당에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어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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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를 나와서 어디를 돌아볼까 하다가 작은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아담한 마을인 아말피를 제대로 보려면 골목골목을 다녀보는 것이 좋을 거 같아 성당 옆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인지 계단 폭도 좁고 계단 하나하나의 높이도 높아서 조금 올라갔는데도 숨이 차다. 길도 모른 채 무작정 올라가다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때쯤 앞이 탁 트인다. 저 멀리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가 보인다. 높은 곳으로 올라와 지중해를 바라보니 밑에 있던 버스 정류소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또 다른 골목으로 올라갔더니 이번에는 레몬이 주렁주렁 달린 레몬농장이 나온다. 이 골목 저 골목 좁은 골목을 누비는 사이 더 많은 골목을 다녀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골목길 경사가 가파라서 숨은 찼지만 기분은 상쾌해졌다.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흐른다.

아말피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성 안드레아 성당
▲ 아말피 아말피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성 안드레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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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돌아보고 조이아 광장으로 내려온다. 광장 양편으로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한 가게 앞에서 레몬사탕을 하나씩 나눠준다. 사탕을 받아서 입에 넣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입안으로는 새콤하면서도 달달하고 상큼한 기운이 퍼진다. 덥고 배고프던 차에 사탕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기념품 가게 안에는 레몬사탕 외에도 레몬 비누, 레몬 모양의 그릇과 장식품, 레몬으로 만든 술인 레몬첼로 등이 있었다.

레몬소주와 비슷하다는 레몬첼로는 각양각색의 병에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이탈리아 반도의 모양, 장화 모양, 첼로 모양, 달과 별 모양의 독특한 병에 담긴 레몬첼로에 정신을 빼앗겼다. 딸은 꼼꼼하게 가격을 살펴 10개를 집어든다. 아들도 다양한 모양과 색의 레몬첼로 5개를 골라 들었다. 아직 여행을 시작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짐을 늘려도 되나 싶다.

레몬첼로는 레몬으로 만든 술로 이탈리아 남부의 특산품이다. 색깔도 예쁘고 병의 모양과 크기도 다양해서 선물하거나 소장하기에 좋다.
▲ 레몬첼로 레몬첼로는 레몬으로 만든 술로 이탈리아 남부의 특산품이다. 색깔도 예쁘고 병의 모양과 크기도 다양해서 선물하거나 소장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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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초기인데 지금부터 쟁이기 시작하면 여행 끝날 땐 어쩌려고?"
"소렌토랑 아말피 가게를 몇 군데 훑어봤는데 여기가 제일 저렴해요. 공장이 같은지 물건도 똑같고. 난 여기서 친구들 선물 다 샀으니 이제 안 살 거예요."

하나에 1.5 유로라 10개를 사도 15유로니 유럽 물가로는 정말 저렴한 편이다. 각자 레몬첼로를 챙겨서 나오니 콧노래가 절로 나고 발걸음이 가볍다.

다시 버스를 타고 포지타노로 향한다. 버스 창문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가 쏟아지면 제대로 볼 수 없을텐데... 다행히 포지타노에 도착하니 비가 그친다. 키에사 누오바라는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정류소에 내려 바닷가를 향해 내려갔다. 물리니 광장을 거쳐 검은 모래 해변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매우 심하다. 가파르고 좁은 언덕 길을 S자로 구불구불 휘어지며 다니는 차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포지타노의 파시테아 거리. 포지타노의 서쪽으로 풍경이 아름다우며 전망좋은 호텔이나 레스토랑 등이 많다.
▲ 포지타노 포지타노의 파시테아 거리. 포지타노의 서쪽으로 풍경이 아름다우며 전망좋은 호텔이나 레스토랑 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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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절벽 곳곳에도 집들이 있고 가게가 있다. 도대체 이런 절벽 위에 어떻게 집을 지었을까? 절벽 위의 마을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이 아름답다. 내려올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보며 열심히 포토타임을 가졌다. 우리가 적절한 장소를 골라 사진을 찍는 것이 좋아 보였는지 지나가는 외국인들도 그 자리에서 자기들을 찍어 달란다. 파시테아 거리에는 자그마한 가게들이 줄줄이 있는데 화려하진 않지만 예쁘고 정겹다. 창가에 걸린 화분과 담벼락 위에 핀 꽃들이 소박한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왼편으로는 아기자기한 집들을 구경하고 오른편으로는 바다를 감상하며 힘든 줄도 모르고 내려왔다.

포지타노 해변의 푸른 물빛. 스피아자 그란데라 불리는 검은 자갈 해변.
▲ 포지타노 포지타노 해변의 푸른 물빛. 스피아자 그란데라 불리는 검은 자갈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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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해변에 도착했다. 지중해의 푸른 물빛과 검은 모래의 조합이 신기하기만 하다. 석양을 받은 해변의 조약돌들은 파도에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며 얼마나 닳았는지 반질반질 윤이 난다. 물기 먹은 조약돌은 얼굴이 비칠 것처럼 매끄럽고 사랑스럽다. 반짝이는 까만 돌 하나를 손에 가만히 쥐었다.

신비로운 푸른 물빛의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 속이 다 시원해진다. 시계를 보니 5시.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차를 놓칠까봐 서둘러 석양이 비치는 바다를 뒤로 하고 돌아섰다.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한다는 아말피 해안. 절벽에 지은 예쁜 집들, 고운 물빛, 탱탱하고 싱그러운 레몬, 하늘빛, 바닷가의 조약돌 하나까지 어느 것 하나도 사랑스럽지 않은 게 없다.


태그:#아말피, #포지타노, #소렌토, #이탈리아,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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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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