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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본 아오모리현 오이라세 계류를 가로지른 고사목(2003. 2.)
 일본 아오모리현 오이라세 계류를 가로지른 고사목(2003. 2.)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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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곧 설날이 다가온다. 설날이 지나면 꼼짝없이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 흔히들 세대에 따라 세월이 빠르다고 한다. 30대는 30킬로, 40대는 40킬로, 60대는 60킬로로 나이가 들수록 그에 비례한단다.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10대 때는 빨리 어른이 되어 담배도 마음대로 피우고, 청소년 출입금지 극장도 마음대로 가고, 머리도 마음껏 길러 포마드를 바르고 와이셔츠에 넥타이도 매고…. 그래서 아버지의 옷을 몰래 입고 어른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 언제부터인가 나이를 세기도, 누군가 나이를 물으면 대답하기 싫게 되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을 그 누가 막으랴. 나는 1945년생이니까 2015년 올해부터는 어쩔 수 없이 70대로 들어섰다. 일찍이 두보는 그의 시 곡강(曲江)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酒債尋常行處有 (주채심상항처유)
人生七十古來稀 (인생칠십고래희)

몇 푼 안 되는 술빚은 가는 곳마다 있기 마련이지만
인생 칠십 살기는 예부터 드문 일이라네

퇴임 전해 어느 날 수업시간(2003. 12. 이대부고)
 퇴임 전해 어느 날 수업시간(2003. 12. 이대부고)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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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8234'

곧 70세는 예로부터 살기가 드문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즈음에는 생활수준 향상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생은 60부터니, 70은 아직 청춘이네, 심지어는 '9988234'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앓다가 죽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까지 유행어로 돌고 있는 세태다.

하지만 이건 과욕이다. 사람의 수명 연장은 그 사회조차 노화시키고, 활력을 잃게 할뿐더러 지구 환경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 적당한 나이가 언제인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즈음 세태로 보면 나는 70 전후가 적정기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 나이가 그 데드라인에 이르렀다. 나는 저승사자가 지금 불러도 억울해 하지 않고 얼른 대답하고 따라갈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야, 박도! 저승 행 열차에 승차!"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승사자님!"
"네가 승차해야 이 세상이 쾌적해 질 거야."
"알겠습니다. 그동안 불러주지 않을 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후딱 저승행 열차 승강대로 오를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큰 병이나 큰 수술 한 번 받지 않고 이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아온 것만 해도 부모님에게, 하늘에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나는 어릴 때 소원대로 교사로 32년 8개월 교단에 섰으며, 작가로 30여 권의 책을 썼으며, 시민기자로 일천여 꼭지의 기사를 썼다.

사랑하는 제자와 함께 일본지방정부 초청으로 일본을 다녀온 뒤 <일본기행>이라는 책도 썼으며, LA 국제공항에서 옛 제자를 만나 그는 나를 취재하고, 나는 그를 취재하는 일도 있었고(LA한국일보 진천규 기자), 뉴욕 허드슨 강변에서 메릴랜드 주 락빌 제자 집에서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린 대접을 받으며 나를 안내하는 분이 "박 선생은 어떻게 학생들을 지도하여 요즘 세상에 이런 대접을 다 받습니까?"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나는 고향 구미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고교에 진학한 뒤, 석 달 만에 휴학하는 아픔을 겪었다. 어린 나는 그것이 내 인생의 끝인 줄 알고 날마다 멋있게 죽는 방법을 골똘히 궁리하다가 탑골공원에서 두 다리가 절단된 한 장애인을 만나고 생명의 존엄성을 깨친 뒤 주머니 속의 자살용 약을 탑골공원 화장실에 버리고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시민기자로 고 권중희 선생 인터뷰를 취재하다(중앙 권중희, 우 재미동포 이재수, 좌 기자. 2004. 2.1. 미국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에서 워싱턴 한인기자 간담회장).
 시민기자로 고 권중희 선생 인터뷰를 취재하다(중앙 권중희, 우 재미동포 이재수, 좌 기자. 2004. 2.1. 미국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에서 워싱턴 한인기자 간담회장).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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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되고 싶다

나의 배달구역은 서울 북촌 가회동·계동·원서동 등지였는데, 그땐 웬 개들이 그렇게 많았는지 신문을 넣고 돌아서면 그놈들이 뛰쳐나와 바짓가랑이를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워커 발로 그들 주둥이를 차면서 큰소리쳤다.

"쌍놈의 개새끼! 너희들은 장래 대문호도 몰라보느냐!"

그 다음부터 그 개들을 내 눈길을 외면하고 제 놈들이 먼저 꼬리를 내렸다. 그 무렵은 박정희·윤보선 후보가 연일 열띤 대통령선거 유세전으로 신문 발행이 늦었다. 그런 날은 본사 윤전기 옆으로 가서 방금 쏟아지는 신문을 받아 어깨에 메고 보급소로 달렸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장차 대기자가 될 거야."

그런 꿈이 정말 뜻밖에도 쉰 세대에 이루어져 2004년 1월 31일에는 "화장실이 어디입니까?"라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 이가 미국 수도 워싱턴 근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특파되어 "미국이여! 결자해지로 이제 한반도를 풀어주라"는 기사까지 송고하기도 했다.

평생 평교사로, 별 볼 일없는 작가로, 시민기자로 살아왔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오늘까지 살 수 있었음에 하늘과 조상님과 세상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이제 70대에 이른 나는 설 이후의 삶은 덤으로 생각하면서 건강하게 살아 있는 한 이제까지 경험하고 깨달은 모든 진리와 진실과 지혜들을 다음 세대에 남기고자 한다.

몇 해 전 여행길에서 제 명을 다한 고사목(枯死木)을 보았다. 죽은 고사목은 시내를 가로질러 쓰러져 뭇 생명들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제 나도 그런 고사목으로 내 마지막 임무를 다하고 싶다. 세대와 세대를 잇고,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고, 나라와 나라를 이어주는 그런 다리로.  

덧붙이는 글 | 박도의 신작장편소설 <약속>이 지금 막 출시되었습니다.



태그:#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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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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