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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기기를 구매하려고 사람들이 찾는 곳. 우리에겐 일터다. 아침부터 저녁을 용산전자상가와 더불어 산다.
 전자기기를 구매하려고 사람들이 찾는 곳. 우리에겐 일터다. 아침부터 저녁을 용산전자상가와 더불어 산다.
ⓒ 성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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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서울 용산전자상가라면 삭막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편하게 일할 심산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전자상가에서 각종 기기를 배달하는 일이다. 면접관은 의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얼마 동안 일할 수 있어요?"
"6개월 정도 할 수 있습니다."
"6개월? 정말이죠?"
"...네"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복장은 편하게 입으면 돼요."

다소 충격과 안도감을 느끼면서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는 다시 확인했다.

"정말 6개월은 하는 거죠? 내일 꼭 와야 해요!"

다음 날 아침 9시, 내 직속상관(문 대리)은 전표를 보고 제품을 챙겼다. 이곳은 컴퓨터 부품을 취급한다. 그는 수레를 끌고 길을 나섰다. 나도 따라갔다. 어느 소매점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그는 제품을 내려놓고 전표를 건넸다. 소매점 직원이 전표에 사인해서 다시 줬다. 그쪽 사람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새로 왔나 보네?" "네, 막내가 바뀌었어요." 문 대리가 답했다. 그쪽 사람이 나지막이 말했다. "얼마나 버티려나..."

문 대리는 전표를 재차 강조했다. "전표 잃어버리면 큰일 나요. 잘 챙겨요." 전표에는 거래 업체 상호와 제품 모델명이 적혀 있다. 수량과 가격도 표시돼 있다. 전표는 거래 매출의 '물증'이어서 모두 꼼꼼하게 챙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거래 업체별로 제공하는 제품 가격이 달라서 전표가 다른 곳에 노출되면 큰 사태가 벌어진다. 업체 간 다툼이 생긴다. 심하면 거래 중단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나도 제품과 수레를 다루기 시작했다. 이 상가에서 저 상가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걸었다. 수레를 밀면서 오르막길 앞에 서니 한숨이 나온다. 다리가 아파온다. 길가 벤치를 보면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2시간 동안 길바닥을 걸으니 몸은 늘어지고 눈에 힘이 풀린다.

점심시간이다. 돈가스가 와 있다. 시커멓기만 한데 크기는 피자만 하다. 밥 한 공기와 같이 먹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무척이나 맛있다. 허겁지겁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이전 몇 달 동안 그렇게 게걸스레 먹은 적은 없었다.

문 대리가 나를 불렀다. 부장(면접관)이 어떤 말을 했느냐고 나한테 물었다. 출근 안 할까 봐 부장이 안절부절했다는 것, 6개월 일한다고 했는데 합격한 것이 놀랍다고 나는 말했다. 그는 씩 웃었다. "요즘 두 달 사이에 배달 직원이 세 번이나 바뀌었거든. 어떤 놈은 첫날 배달 나갔다가 그냥 집에 가버렸어. 용산에서는 배달 직원 구하는 게 진짜 어려워." 충격적이었지만 나는 조용히 들었다. 그는 내게 물었다.

"너 진짜 6개월은 할 거지?"

배달 직원들이 이용하는 수레다. 이것을 끌고 하루에 수 킬로미터를 걷는다.
 배달 직원들이 이용하는 수레다. 이것을 끌고 하루에 수 킬로미터를 걷는다.
ⓒ 성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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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상가 주변에는 수레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무척 많다. 큰길에서는 30여 명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더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온라인 쇼핑몰 매입처다. 각종 컴퓨터와 부품, 전자기기들이 늘어서 있다. 그것들을 각 회사 배달 직원들이 납품한다. 쇼핑몰 앞에 줄을 서는데, 길이가 20미터 이상 될 때도 있다.

눈 내리는 날에 배달 직원들은 분주하다. 빈 종이상자를 구해야 한다. 수레에 제품을 싣고 종이상자로 덮는다. 제품에 눈이 쌓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눈을 맞으며 배달하지만 제품은 보호해야 한다. 새벽에 눈이 와서 빙판길이 되면 수레가 제멋대로 움직인다. 오르막길에서 자꾸 미끄러져 내려간다. 우리는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전자상가 주변을 하루에 10바퀴 이상 돌고 나면 해가 진다. 사무실 청소를 마치면 달이 떠 있다. 퇴근이다. 처음 일하는 사람은 보름에서 한 달간 통증을 느낀다. 몸을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늘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전자상가로 속속 모여든다.


태그:#노동, #전자상가, #내러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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