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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났지만 아직은 봄기운은 고사하고 이른 아침 찬바람이 매서웠던 지난 7일 토요일 아침, 간편한 복장으로 대구시청을 찾았다. 바로 아름다운가게가 마련한 나눔보따리 배달천사로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배달천사라는 말이 조금은 어색했지만 어쨌든 사전에 배달봉사 참가자를 모집해서 신청한 참이었다.

아름다운가게는 매년 나눔보따리 행사를 열어 전국의 홀몸어르신들과 조손가정에 생필품을 전달한다. 알다시피 아름다운가게는 각종 물품을 기증 받고 이를 재활용해 판매해 그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회적기업이다. 그런 아름다운가게에서 기업이나 단체의 후원까지 보태 설을 앞두고 나눔을 하는 것이다. 배달천사는 바로 이 물품을 각 가정에 전달하는 자원봉사자를 뜻한다. 조금의 시간과 차량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배달할 곳도 많지 않아 부담도 크지 않다.

대구시청앞에 쌓여있는 나눔보따리 배달 물품들
 대구시청앞에 쌓여있는 나눔보따리 배달 물품들
ⓒ 김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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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보니 시청 앞에는 이날 배달을 기다리는 각종 물품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고 사람들은 추위를 피해 시청 로비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나니 이날 배달할 곳이 적힌 안내장을 받을 수 있었다. 안내장에는 강북지역에 계신 네 분의 홀몸 어르신 집주소와 배달시 주의사항이 담겨 있었다. 약도까지 친절하게 함께 실려 있었고 모두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배달도 어렵지 않을 듯 보였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과 참여한 배달천사 많아

잠시 기다리는 동안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몇몇 참가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참가자들은 참 다양했다. 나이대도 다양하고 성별도 다양했다. 봉사활동단체에서 온 회원들이 있는가 하면 직장에서 이번 나눔 후원으로 참가하면서 배달까지 신청해 온 사람도 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참가한 배달천사도 적지 않았다. 한국쿄와하코기린에 다니고 있는 최봉균(38)씨는 직장이 이번 나눔에 참여하면서 동료들과 배달천사로 나선 경우다. 마침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참여하는 모습이 유난히 눈에 더 띄었다.

"직장을 통해 이런 봉사활동의 기회가 있다고 해서 동료들과 같이 왔다. 특히나 애기가 이제 다섯 살인데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가족 모두 함께 왔다. 이번이 처음인데 참 좋은 행사 인 것 같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대로 계속 참여하고 싶다."

이번 나눔보따리 행사를 통해 전달되는 물품은 크게 세 가지 였다. 나눔보따리 박스와 이불 한 채, 그리고 각티슈 한 세트다. 그중에서도 나눔보따리 박스에는 다양한 생활용품들이 들어있었다. 식용유, 설탕, 김, 라면, 각종 캔 등의 식품은 물론 세제, 비누, 수건, 칫솔, 면봉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필요한 갖가지 선물이 들어있었다. 마치 어린시절 종합선물 세트 같았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 박스안의 물품만 시중에서 구입할 경우 15만 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마침 박스 한 개를 개봉해 전시해 놓았는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꼼꼼한 구성이 솔직히 참 탐이 났다.

이날 하루 배달천사가 되기 위해 참석한 봉사자들
 이날 하루 배달천사가 되기 위해 참석한 봉사자들
ⓒ 김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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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배달에 앞서 간단한 기념행사가 진행됐다. 시청앞마당에서 진행된 행사는 차가운 날씨에다 배달을 앞둔 터라 관계자들의 간단한 인사와 배달관련 안내 등의 순서로 비교적 간소하게 진행됐다. 모두 봉사를 위해 참가한 사람들이지만 역시 추위에는 장사가 없었던 것 같다.

박동준 아름다운가게 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오늘 나눔보따리 행사는 대구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6천여 곳을 방문한다. 대구는 120가구에 나눔보따리가 전해질 예정이다. 차가운 날씨이지만 참여해준 배달천사들이게 감사를 전한다. 나눔보따리를 전하는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차량별로 조를 나누어 홀몸어르신 댁에 배달

오늘 배달할 곳으로 배정 받은 곳이 네 곳이어서 보따리 박스 네 개에 이불 네 채, 각티슈 세트 네 개를 차에 실으니 트렁크는 물론 뒷자리까지 가득했다. 앞자리에 앉은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짐으로 가득 찬 셈이다.

배달을 기다리는 나눔보따리 상자들
 배달을 기다리는 나눔보따리 상자들
ⓒ 김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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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배달지로 직행했다. 주최 측에서 각 가정에 미리 연락을 드려놓은 탓에 한 집 한 집 반갑게 맞아주셨다. 먼저 방문한 두 곳은 할머니들이, 뒤에 두 곳은 할아버지들 댁이었다. 공교롭게도 할머니들은 건강해보이시기도 했고 직접 맞아 주셨는데 할아버지 두 분은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었다. 집 안까지 물품을 놔 드리고 휴식에 방해가 될 것 같아 곧바로 일어났다.

평소 잘 느끼지 못했던 홀몸어르신들의 생활을 잠시나마 들여다본 듯해서인지 마음이 조금 짠해졌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저소득층의 생활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현실이 새삼 떠올랐다. 최근 높은 자리에 계신 누군가는 복지재정 확대에 대해 나라가 나태해진다고 걱정이던데 정치권이 책임지지 않는 수많은 그늘을 제대로 보고는 있는지 반문해보고 싶다.

배달을 마치고 나서 담당 지역 매니저에게 배달완료 문자를 보냈다. 배달천사가 해야 하는 마지막 미션이다. 수고했다는 답신이 오고 짧은 천사역할도 끝이 났다.

나눔보따리 상자에 들어있는 내용물들, 다양한 생필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눔보따리 상자에 들어있는 내용물들, 다양한 생필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 김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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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2번째 나눔보따리, 전국 누적 4만가구 방문

이날 열린 나눔보따리 행사는 올해로 12번째를 맞는다. 매년 설을 앞둔 이즈음에 열린다. 어르신들이 명절을 좀 더 풍성하게, 겨울을 좀 더 따뜻하게 보내시라는 취지다. 그동안 배달천사로 참여한 사람이 3만5천명, 누적 방문가구는 4만가구나 된다. 이렇게 전달된 물품은 시가로 26억원에 이른다.

나눔보따리 행사에는 아름다운가게는 물론 다양한 기업과 단체가 참여하는데 올해에는 공무원연금공단, 대구보훈병원, 대구환경공단, 희성전자 다솜봉사회, 상인고등학교 경제동아리, 대구마라톤협회, LH대구경북지역본부, 강북지역풀뿌리단체협의회, 대구중구청공무원자원봉사단, 한국쿄와하코기린, 대구도시철도공사 등이 후원과 배달에 참여했다.

각자에게는 주말 여유시간을 쪼갠 작은 봉사활동이지만 이렇게 모이고모이면 크고 따뜻한 실천이 된다.

이런 활동을 두고 누군가는 넓은 바다에 물 한바가지 붓는다고 표시가 나겠냐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꼭 그 한바가지 만큼 더 바뀌는 법이라는 말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잠시뿐이라 쑥스럽기도 했지만 가끔 이런 천사 노릇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대구 강북지역 언론인 강북신문(www.kbinews.com)에 함께 실렸습니다.



태그:#아름다운가게, #나눔보따리, #대구, #홀몸어르신, #자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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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살고 있는 두아이의 아빠, 세상과 마을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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